'갑자기' 당신과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

등록 2019.05.24 15:51수정 2019.05.2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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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의 감정을 곧바로 드러내지 못한다.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나의 감정이지만 어떤 성격의 것인지 당장에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날뛰던 것을 마구잡이로 토막 내서 밖으로 꺼냈다간 나에게 실망하기 일쑤고 듣는 이에게도 괴롭다.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태버리면 더욱 혼란스럽기만 하다.

시뻘건 감정일수록 희석하려고 애쓴다. 한 방울의 물을 연이어 떨어트려 보면 된다. 우선 올바른 감정인지를 따진다. 배려 없는 욕망에 가깝다면 밖으로 내보내길 단념한다. 다음은 그게 왜 중요한지를 물어본다. 별것 아닐 때가 많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점차로 가라앉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활자를 쓰며 지었을 표정을 상상해본다. '여기서 잠시 막혔었나 보다, 그런데 저기서 풀려서 신이 났었나 보네' 하다 보면 잡생각이 없어진다. 잡히는 책이 없다면 영화를 보기도 하고 잠을 자도 좋다.

일련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말할 때 상당한 부담을 느끼지만 정당하다면 요구를 한다. 나에게 필요하다면 부탁을 한다. 올바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느낀 바를 있는 그대로 말한다. 그러나 발작되는 반복이거나 무리한 요구는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어려울 수도 있다. 오해가 커져 사이를 비틀지 않도록 반응을 미리 살펴보는 상상력도 풍부해야 한다. 대본이 있으면 좋고 연습은 필수다.

섬세하다는 말도 듣지만, 피곤하게 산다는 말도 듣는다. 이왕이면 전자가 듣기 좋지만, 후자도 결국 같은 말이다. 힘들더라도 감정에 충실한 것보다 감정을 존중하며 살고 싶다. 나의 기분이나 상태를 눈치챈 뒤 여러 방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천천히 공들여 고민한다. 무엇보다 이런 작업은 나를 해치지 않는다. 감수성의 폭을 넓히며 이해를 깊게 할 때도 있으니 의외의 소득이기도 하다.

관계를 깊이 고민하지만 결국 단절을 선택할 때도 있다. 지금은 만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저속한 욕망을 배설하던 사람들을 피했다. 고민 없는 송곳으로 온 마음을 쑤셔놓고 원래 자기 성격이 그러하다고, 예민 떨지 말라던 사람들로부터 도망쳤다.

별 뜻 담아두지 말라던 위로는 가벼웠고 소용이 없었다. 혼자가 되면 나는 쓸쓸하게 아파왔다. 아팠다. 신입생이었다가 선배가 되자 싫어하던 선배들의 모양을 닮아가던 사람들이 무서워서 숨었다. 증오나 실망, 경멸과는 거리가 멀다. 어쩌면 나도 그들과 똑같을 수도 있고, 똑같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냥 겁이 많아서 뒷걸음질 친다.

물러설 때마다 듣는 말은 '왜?' 혹은 '갑자기?'다. 관계의 개선을 위한 말이나 행동을 건네지 못한다는 점에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나를 보호하고 싶다. 의심 가기 시작한 타인의 내면에 파고들었다가 받을 상처가 두렵다. 차라리 혼자 참으면서 비틀거리는 쪽을 택한다.

한참을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다 더는 발을 내딛지 못하면 균형을 잃고 넘어진다. 그제야 나는 멍하니, 맨바닥에, 한참을, 앉아있다가 관계를 끝내야겠다고 일순간에 마음먹고는 엉거주춤 기어서 안식처를 찾아간다. 관계의 개선을 시도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의 최선이고 노력이다. 갑자기가 아니다. 내 무릎에는 멍이 가득하다.

계절 또한 갑자기 여름이 된 듯 보이지만 어제와 오늘의 나뭇잎 색은 달랐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햇살을 몇 시간이나 더 받았고, 어제와 다른 수십 갈래의 바람을 견뎌냈다. 그렇게 푸르러져서 여름이 도래했다고 조용히 알리고 있다. 가끔은 외롭다. 그러나 관계에 한해서, 기어코 벽을 넘는 담쟁이덩굴처럼 실천적인 사람이 있다면 조용한 나뭇잎 같은 사람도 있는 거라고 나를 다독인다.

당신들을 마주칠 때면 나는 지나치게 놀란다. 티 내기가 싫어서 철저히 마주치지 않을 시간대를 계산하고, 못 본 척을 하고, 우회로를 택할 때가 많다. 졸업을 기다렸고, 전역을 기다렸고, 다시 졸업을 기다린다. 그러니까 내가 만약 '갑자기' 당신을 피하거나,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우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충분히 비틀거렸고 더는 감정을 소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너무하다고 한다면, 나는 순순히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 사과하는 건 비틀거리는 것에 비하면 전혀 어렵지 않으니까.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도 업로드한 글입니다.
https://brunch.co.kr/@goodwriting/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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