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에서 만난 고려인 장 리마 할머니

[고려인의 길 ⑨] 카스피 해의 고려인

등록 2019.06.05 22:08수정 2019.06.05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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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김진석 사진작가가 지난 2월 26일 '고려인의 길' 취재에 나섰다. 우즈베키스탄을 시작으로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 카자흐스탄을 거쳐 고려인의 기차 이동 경로를 거꾸로 달려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예정이다. 이후 모스크바, 우크라이나, 조지아, 벨라루스를 거친 뒤 러시아 사할린과 캄차카의 고려인을 만날 예정이다. 김진석 작가의 '고려인의 길' 연재기사는 <오마이뉴스>에 단독으로 게재한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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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리마 할머니. 먼 곳에서 왔다며 반갑게 맞아준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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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리마 할머니가 나의 취재를 도와주겠다며 자신이 알고 있는 바쿠에 거주하는 고려인의 주소를 받고 있다. ⓒ 김진석

 
아제르바이잔(Azerbaijan)까지 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러시아 모스크바를 시작으로 조지아의 트빌리시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의 바쿠까지는 거칠고 낯선 시간이었다. 

카스피 해를 끼고 있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은 남으로는 이란, 북으로는 러시아와 맞닿아 있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독립했다. 

과거 아제르바이잔에는 100여 명의 고려인이 이주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주로 고려인 2세대들이 중심이었는데 군인과 전문직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과 언어 문제로 예닐곱 가족만 살고 있다.

카스피 해가 보이는 오래된 아파트. 고려인 2세 장 리마 할머니가 살고 있는 곳이다. 올해 74살인 장 할머니는 혼자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남편은 2006년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슬하에는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다. 아들들은 한국에서 일하고 있고, 딸은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 

장 리마 할머니의 부모님은 1937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강제 이주됐단다. 타슈켄트에서 태어난 장 할머니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카자흐스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농업경영 회계학을 전공했다. 

이후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고려인 해군 장교였다. 잠수함에서 근무한 남편은 군 생활 도중 잠수병으로 전역한다. 이후 바쿠의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발령받고 1974년 가족들과 함께 이곳 바쿠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 후반에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세 아이를 키우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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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리마 할머니. 카메라를 보며 '어떻게 웃냐'며 사진 찍는 내내 표정을 감춘다. 그래도 사진 찍으러 온다는 약속에 미리 고운 옷을 꺼내 입었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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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리마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 ⓒ 김진석


매우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장 할머니는 지나간 이야기를 천천히 되감듯이 회상한다. 그러면서 오래된 일들이지만 지나고 보니 바로 어제의 일 같이 느껴진다고 한다. 

몇 해 전 할머니는 무릎 수술을 위해 몇 개월 한국에 머물렀다. 큰 아들 집에 머물며 수술을 받았다. 아들 이야기를 꺼내는 할머니는 말을 아꼈다. 

아들은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좋은 대학을 나왔다. 부푼 꿈을 안고 한국으로 간 아들이 공장 노동자부터 안해본 일이 없이 힘들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지하에 살고 있는 아들, 그러면서도 어머니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모습이 미안하고 부담스러워 수술을 마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장 할머니는 스마트폰과 노트패드를 만지작 거린다. 아들이 집에 인터넷을 연결해주고 기기를 사줬단다. 자주 영상통화를 한다. 그때마다 아들은 장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 없나? 어려운 건 없나?" 물어본단다. 

"좋아. 모든게 다 좋아. 걱정 마."

장 할머니의 대답은 늘 한결 같다. 지금도 매달 적지 않은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는 아들에게 더 부담주기 싫다고 했다. 그러나 보내주는 돈은 생활비와 더불어 대부분 약값으로 사용한다. 

장 할머니는 매주 한두 차례 한국 교회에 나간다. 성경을 접하면서 독학으로 한글을 배웠단다. 장 할머니의 소망은 오로지 아이들이었다. 

"난 오직 아이들만 생각한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장 할머니의 아파트를 바라봤다. 장 할머니는 나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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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내내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하고 있는 장 리마 할머니.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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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해가 보이는 집에서.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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