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움과 느림, 여유가 묻어나는 시골 풍경

[경비일지 14] 충북 옥천 대청호수 둘레길과 반딧불이 탐사

등록 2019.06.05 15:15수정 2019.06.05 15:20
0
원고료로 응원
 

보리수 열매. 석가모니는 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해탈했을까? ⓒ 임현철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담뱃대를 물고
  들에 나가시니,
  궂은 날도
  곱게 개이고,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가시니,
  가문 날도
  비가 오시네.


충북 옥천이 낳은 톱스타 정지용 시입니다. 그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궂은 날도 곱게 개이고, 가문 날도 비가 오"게 만드는 도인입니다. 그랬지요. 어릴 적 할아버지는 못하시는 게 없고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였습니다.

어쩔끄나! 제 할아버님 얼굴 한 번 못 뵈었지요. 대신 외할아버님께서 곰방대 피워 물으시고 화롯불에 밤이며 떡이며 구워 주셨지요.

삶은 곧 여행. 천하유람 중입니다. 지난 금요일, 충북 옥천 동이면 안터마을 행. 자연환경국민신탁 전재경 대표의 꼬드김 때문입니다. 늘 한결같은 모습에 '반딧불이 미팅'까지 주선하니, 못 이긴 척 마음 내었습니다.

안터마을에 가자마자 대청호 일원의 수변 구역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밤에는 반딧불이 찾아 나섰습니다. 여기서 마음 홀딱 뺏겼습니다. 대체 무엇에 홀렸을꼬.

정지용 시인이 눈을 감은 이유는? '생명 잉태'
 

충북 옥천 안터마을 대청호와 매실입니다. ⓒ 임현철

   

대청호 둘레길에는 많은 열매들이 유혹 중입니다. ⓒ 임현철

 
잔잔한 호수가 펼쳐집니다. 말로만 들었던 대청호입니다. 대청호에서 자연의 섭리를 봅니다. 이 물 또한 흐르고 흘러, 세상 가장 낮은 자리인 바다에 도착하겠지요. 그렇게 모인 물은 열에 데워져 기화되어 하늘로 승천하겠지요. 그리고 다시 비 혹은 눈이 되어 땅으로 되돌아오겠지요. 돌고 도는 게 세상 이치인 것을!

    호수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목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 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시가 선문답을 연상케 합니다. 시인 정지용은 대체 무엇이 보고 싶어, "보고 싶은 마음 호수 만 하니"라고 했을까?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어, "눈 감을 밖에"라며 한탄했을꼬?

그가 던져 준 화두의 답을 찾아 나섭니다. 답은 언제나 늘 그렇듯이 가까이, 내 안에 꼭꼭 숨어 있습니다. 단지 스스로 그러한 것을 모를 뿐!

걷습니다, 대청호 둘레길을. 함께 걷습니다, 주변에 있는 나무들이. 그렇게 하나 됩니다, 나무와 인간들이. 걷다가도 잠시잠깐 발걸음을 멈춥니다, 사람들이. 왜 멈췄을까, 그들은. 터집니다, 환호성이. 걸음을 재촉합니다, 원인을 살피러.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이. 아!

대청호 둘레길, 느릿느릿 여유롭고 정겨운 시골 풍경
 

뽕나무 열매 오디입니다. 제각각 색을 입은 오디에게서 우리네 삶을 봅니다. ⓒ 임현철

 
뽕나무 열매, 오디.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한 나무에서 열린 열매인데 모습과 색깔이 다양합니다. 막 자라나는 열매는 어린아이 마냥 보송보송합니다. 어떤 것은 붉은 색 물이 들어갑니다. 영글려면 아직 먼 것이 청소년기 같습니다. 어떤 열매는 장년기처럼 붉게 물든 모양입니다. 검게 익은 오디는 삶을 관조하는 노인인 듯 싶습니다. 매실, 하나 따 입에 넣습니다. 입 안에서 터지는 과즙이 행복을 안겨줍니다.

매화나무에도 열매가 토실토실 달렸습니다. 지난 초봄, 매화는 꽃으로 사람 마음 여럿 흔들었을 겁니다. 앞으로 매실은 매실청이 되어 인간과 하나 될 것입니다. 자연은 이렇듯 스스로 그러해 무엇과도 어울립니다.

청매실 보면 가만있질 못합니다. 기어코 하나 톡 따, 입에 넣고 씹어, 시디 신 맛을 봐야 직성이 풀립니다. 매실 하나 넣자 입안이 환해집니다.
 

충북 옥천 안터마을 대청호 둘레길에서 찔레와 수작하던 촌놈, 폼을 잡습니다. ⓒ 임현철

 
 

대청호 둘레길 위, 돌나물 꽃이 한창입니다. ⓒ 임현철

 
찔레. 지인이 아는 체 합니다. "어릴 때 찔레나무 새순 끝의 순한 부분을 꺾어 먹었다"고 폼을 잡습니다. 촌놈은 이렇듯 생명과의 살가운 추억이 많습니다. 이런 게 사는 맛이지요.

어쭈구리, 모양새를 잡고 유혹합니다. 에라~ 모르겠다. 사진 몇 방 눌렀습니다. 길 위에서 산딸기 꽃, 돌나물 꽃 등이 자기도 봐 달라 보챕니다.

아, 보리수! 제 어릴 적, 보리수 열매를 '뽈똥'이라 했었드랬습니다. 초등학교 가는 길에 열매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나뭇가지 축 늘어진 보리수가 있었드랬습니다. 누가 있나 살피고 서리 많이 했었드랬습니다. 아마 석가모니 부처님도 많이 따 드셨을 겁니다. 수많은 나무 중 보리수나무 밑에서 해탈하신 거 보면.

대청호 둘레길, 느릿느릿 여유롭고 정겨운 시골 풍경입니다.

아주 귀한 존재가 된 '반딧불이' 탐사에 나서다
 

열매는 생명이 품은 한 우주입니다. ⓒ 임현철

 

    밤
               정지용

  눈 머금은 구름 새로
  흰달이 흐르고,
  처마에 서린 탱자나무가 흐르고,
  외로운 촉불이, 물새의 보금자리가 흐르고...
  표범 껍질에 호젓하이 쌓이여
  나는 이밤, 「적막한홍수」를 누워 건늬다


어째야 쓰까. 깜깜한 밤이 되자 잠을 거부합니다. 하늘엔 별이 총총. 밤, 정지용 시인 말마따나 자면서 "적막한 홍수를 누워 건"너야 하는데, 하늘을 거슬립니다. 자연을 거슬리게 하는 힘 또한 자연에서 나옵니다.

개똥벌레. 반딧불이 종류며, 먹이며, 서식지며, 일대기며, 반딧불이와 환경의 연관성 등을 학습했는데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개똥벌레 탐사에 꽂힌 덕분입니다.

"저게 북두칠성입니다. 저것이 북극성이고요."

밤길을 나섭니다.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 나오는 대로 씨부렸습니다. 어~ 그대로 믿습니다. 다행입니다. 한 분이 "아니라"고 정정하며 제대로 알려줍니다.

어릴 적, 개똥벌레를 잡고 빙빙 돌렸던 추억이 스멀스멀 기어오릅니다. 예전엔 아주 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꼼짝 않고 죽은 채 하는 '개똥벌레'에 웃음이
 

반딧불이는 반딧불 또는 개똥벌레로 불립니다. 죽은 척 하는 모습에서 신형원의 애틋한 염원을 보았습지요. ⓒ 임현철

 
"핸드폰은 꺼주세요. 빛이 밝으면 반딧불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물 엉덩이 주변. 반딧불, 날아다닙니다. 애개개, 하납니다. 그럼에도 조용히 환호합니다. 그리고 침묵. 눈만 초롱초롱합니다. 시간,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하나가 나타납니다. 일행들이 몰려듭니다.

반딧불이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손바닥을 펴자 꼼짝 않고 죽은 체합니다. 웃음이 나옵니다. "나를 위해 한번만 노래 해주라"며 <개똥벌레>를 노래한 가수 신형원의 애틋함을 알 거 같습니다.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 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번만 노래를 해주렴
나-나 나나나나 쓰라린 가슴안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

 

반딧불입니다. 그 흔하던 게 귀해 아주 귀한 대접입니다. 왜 그리 되었을까? ⓒ 임현철

 
반딧불 유충이 많은 곳으로 이동합니다. 제법 많은 개똥벌레가 보입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땅을 묵혀 반딧불이가 살도록 배려한 노력이 엿보입니다. 그렇게 생명인 자연과 하나 됩니다. 이게 바로 하늘마음으로 살려는 양심(良心)의 행위이자 도(道)입니다. 여기에서 하늘의 명령을 듣고 닦을 것을 강조한 『중용(中庸)』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 하늘이 명령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性)에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고, 도(道)를 닦는 것을 '교(敎)'라 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검찰총장님, 이런 과거가 있습니다
  2. 2 수백채 다주택자 '0원'... 깜짝놀랄 종부세의 진실
  3. 3 '찐 트럼프들'의 반란? 코로나 사망 세계 1위 도시의 비극
  4. 4 판사 출신 이수진 "위헌적 사찰문건, 윤석열 탄핵해야"
  5. 5 참으로 옹색한 검찰, 항소 이유가 기가 막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