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 나고 여자들이 일하기 좋은 직업? 불쾌해요"

[생계에 성별은 없다 ⑨] 이러려고 강사했나 자괴감이...

등록 2019.06.07 10:49수정 2019.06.0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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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은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3회 '임금차별타파의 날'이었다. '임금차별타파의 날'은 남성 정규직 임금 대비 여성비정규직 임금을 1년으로 계산하여 그 날 이후부터 12월 말일까지 여성은 무급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리는 날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차별을 당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드러내고 해법을 찾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9년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가장'으로 상징되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를 위해 '남성생계부양자모델'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현장의 사례를 하나씩 짚어보고자 '생계에 성별은 없다' 기획을 통해 총 9개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한다. 이 글은 수원여성노동자회 유진이 썼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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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5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7월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강사 대량해고 대책 마련과 강사제도개선협의회 합의문 성실 이행 등을 촉구하고 있다. ⓒ 김시연

 
2010년 5월 한 시간강사가 자살하면서 2011년 시간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대량해고에 대한 우려로 7년 동안 4차례 시행이 유예되다가 2018년 11월 개정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해 오는 8월 1일 시행 예정이다.

그러나 오히려 시수제한이 생겨 초과하면 이후 법적다툼이 생기지 않도록 '제한된 시간만큼만 일했다'라는 본인의 사인을 받고 다니는 편법까지 쓰는 현실이다. 무급으로 1시간~2시간 정도의 일을 더 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학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선도해야하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믿고 싶지 않을 정도다. 

(기자 말: '주당 수업시간'을 일명 '시수'라고 줄여부르는데, 시수제한이란 바로 주당 최대수업시간을 제한한다는 의미이다. 올해 8월부터 강사는 주당 수업시간이 6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특별한 사유가 있을 시에만 9시간까지 허용된다.)

우리나라 고등교육기관의 비전임 교원은 2015년 89,242명에서 2016년 79,268, 2017년 76,164명으로 매년 감소추세에 있으며 현재 약 6만 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는 이들이 전임교원이 된 것이 아니라 해고의 영향으로 보인다. 여전히 2017년 고등교육기관의 시간강사 비율은 34.1%로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여전히 학교에서 시간강사는 많이 필요한데 왜 대우는 그 만큼 해주지 않는 것일까?

'메뚜기 강사'가 될 수밖에 없는 대학 시간강사들의 노동환경

20대 후반부터 대학 시간강사를 해 온 A는 요즘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요즘은 과연 이 직업으로 내가 계속 먹고 살 수 있을까? 정말 고민이 많아요.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죠. 제가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공부하고 열심히 하면 학교니까 그래도 다른 곳보다는 나아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학교는 보통 안정된 곳이라 생각하잖아요?"

사무직을 하다가 우연히 시간강사를 하게 된 A씨는 요즘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더욱 느껴진다고 했다. 처음 시간강사를 시작한 2008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보람되고 당시에는 시수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경력이 쌓이면 시수가 늘어나서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차가 쌓이면 나중엔 전임을 달 거고 그러면 많은 돈까진 아니어도 안정되고 자기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은 직업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이렇게 대우가 계속 안 좋아질 줄은 몰랐어요."

A씨가 수업하는 영역은 초반에 강사가 부족했다. 그래서 강사충원을 많이 했고 학교규모가 좀 더 크고 조금이라도 시간당 페이가 높은 곳으로 옮겼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상황이 나빠졌다. 10년이라는 경력이 생겼고 대학원에도 진학해 석사를 취득했지만 오히려 버는 돈은 더 적어진 것이다. 3만원대 시간당 급여로 주14시간의 시수제한이 걸리니 무급인 방학기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A의 주변에는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강사들이 늘었다.

"방학기간에 고생하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다른 학교에서의 강의를 알아봐야 해요. 주변학교는 항상 사람들이 많이 지원하기 때문에 일부러 조금 더 떨어진 학교를 알아보기도 하고요. 일단 이동이 최대한 빨리 가능한 순으로 지원해보고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회의에 대비해 약간의 여유는 둬야하는데 사실 그렇게 하다보면 지원 가능한 학교자체가 많진 않아요."

A와 친한 강사의 경우, 지방강의도 가는데 그러려면 학교에 양해를 구해 월, 화, 수요일을 현재 학교에서, 목, 금요일을 지방에 있는 다른 학교에 간다. 학교에서는 이러한 일명 '메뚜기 강사'를 위해 배려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A의 손에 들어오는 한 달 수업료는 평균 1,685,370원이다. 생활임금과 비교하면 턱없이 모자라고, 심지어 최저임금보다도 적은 임금이다. 이보다 더 들어오기도, 덜 들어오기도 하지만 4대 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고 방학에는 무급이라 전보다 생활이 어렵다. 그래서 관련 아르바이트가 들어오면 닥치는 대로 한다. 방학기간의 원치 않는 쉼과 무임금, 그리고 언제 더 나빠질지 모르는 상황 때문이다. 최소 석사이상의 학위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10년 가까이 일 해왔지만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는 노동환경으로 인한 무기력함과 점점 더 나빠지는 처우에 고민이 깊어진다고 했다.

'여자들이 일하기 좋은 직업'이란 말의 이면에 존재하는 성차별

안 그래도 학교에서 처우는 열악해지는데 남자강사들에게는 '한 집안의 가장이고 생계를 책임지고 있으니 더 벌어야 할 텐데', '남자가 결혼하려면 그래도 돈을 좀 벌어야 할 텐데', '남잔데 저 정도 벌어서 어떻게 생활해?'라는 등의 이유로 남성 강사들은 시수를 좀 더 많이 주려고 하거나 수업하기 좋은 시간에 몰아주었다.

"사실 학교 내에서조차 제 일은 '뭔가 폼 나고 여자들이 일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깔려있어요. 어째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남자라는 이유로 당연히 생계부양자이거나 될 것이라 생각하고 남자강사에게는 돈이 적어 안 좋은 직장이라면서 여자강사에게는 결혼하고 애 키울 때 많이 벌 필요 없고 적은 시간 일하고 편하고 폼 나는 직업이라 하는지 정말 불쾌해요. 나는 지금 내가 가장이고 일하는 만큼 벌고 싶고 공부도 할 만큼 하고 10년간 한 번도 쉰 적이 없는데."

생계부양의 문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A의 경력이 더 오래되고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말 못할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여기서조차 성차별이라니...' 시간강사라는 직업은 고용형태만 다를 뿐, 결국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다. 이들이 제대로 된 최소한의 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할 때 그 피해는 결국 누가 받게 되는 것인가?

임금명세서는 지난 1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달라고 했지만 아직 그런 걸 줘본 적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임금명세서를 달라고 요구 해볼까' 생각했지만 그랬다가 괜히 찍힐까봐 포기했다. 매달 시간이 다르니 시간을 체크해두고 총액을 계산하여 원천징수를 제하는 금액으로 받고 있다고 했다. 월급이 입금되면 본인이 생각한 금액과 동일한지만 체크한다는 것이다.
  
시간강사의 암울한 미래 … 성평등 노동이 필요한 현실

A씨의 주변에서는 '한국에서 살려면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말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 직업이 싫지 않고 40대에 10년 넘게 공부하고 가르쳐온 전공을 버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이 이민보다 더 어렵게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 때보다 이민을 고려하고 있어요. 다른 나라가서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몇몇 나라에서는 제가 가르치는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해주고 대우해주는 것을 알고 나서 더욱 우리나라에서 이 일을 지속하기 어렵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A에게 자세히 들으면 들을수록 시간강사의 미래는 암울했다. 아무것도 보장된 것 없이 학기단위 계약을 하고 회의시간에 한 자리에 불러 모아 계약서에 일률적으로 사인하게 하고 시수제한이 생기자 시간을 초과하게 되면 나머지 시간은 무급이었다. 그리고 여자니까 그 정도 벌고 집에서 시간을 많이 쓸 수 있으니 좋을 것이라는 인식까지 덧씌워진 상태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가 좁아 신고를 하거나 문제제기를 했다가는 이 업계를 떠날 생각을 해야 했기에 다들 입 다물고 묵묵히 수업을 한다고 한다.

쉬지 않고 공부하고 자기 영역에서 10년 넘게 전문성을 갖추고 근속한 여성노동자가 어째서 이렇게 이민까지 생각해야 할 상황에 처했을까? 그들의 10년 넘는 세월은 무엇을 남겼을까?

적게 벌어도 여자에겐 좋은 직업이라는 편견, 학교의 갑질, 한 번도 받지 못한 임금명세서, 더 좋은 시간을 배정받기 위한 동료 간의 눈치싸움, 아직 갚지 못한 대학원 학자금,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은 오롯이 여성 노동자 개인이 감당해야하는 현실이다. 정말 '이러려고 내가 지금까지 일을 했나' 싶은 요즘이다.

☞ [연재기사 보기] 생계에 성별은 없다 http://omn.kr/1jl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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