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이 했다? 우리가 몰랐던 6.10 만세운동의 의미

[현장] 제2회 6.10만세운동 기념사업회 학술심포지엄 '6.10만세운동과 민족통합'

등록 2019.06.11 15:46수정 2019.06.1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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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3대 민족운동 '6.10만세운동' 제조명'제2회 6.10만세운동 기념사업회 학술심포지움 - 6.10만세운동과 민족통합'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6.10만세운동기념사업회(회장 라종일)와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6월 10일은 1987년에 일어난 6.10민주항쟁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날로 기념되고 있다. 반면 같은 6월 10일에 일어난 1926년의 6.10만세운동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6.10만세운동은 3.1운동, 광주학생운동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 당시 3개 민족운동으로 일컬어지는 운동이다. 1926년 순종황제의 인산일(장례일)에 일어났던 6.10만세운동은 3.1운동과 1929년 광주학생운동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는 운동이기도 하다. 당시 6.10 만세운동으로 일제에 붙잡힌 학생은 서울에서만 210여 명이었고 전국적으로는 1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그 규모가 상당했다.

왜 3대 민족운동이라 불릴 정도로 해방 정국까지 주목받던 6.10만세운동이 오늘날에는 대중들에게 잊히게 된 것일까?

6.10만세운동 93주년을 맞아 10일 오후 2시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제2회 6.10만세운동 기념사업회 학술심포지엄 '6.10만세운동과 민족통합'이 열렸다. 학술심포지엄은 6.10만세운동 기념사업회와 서울시교육청이 공동으로 주관했다.

이날 학술심포지엄에는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과 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 6.10만세운동 참여자들의 후손들이 참석했다.

6.10만세운동, 왜 주목받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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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6월10일 순종 상례가 덕수궁 대한문을 출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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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국가보훈처 연구관이 '6.10만세운동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국가보훈처 김성민 연구관 이날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6.10만세운동 연구의 성과와 과제'에서 해방 정국에서 좌익과 우익은 6.10만세운동을 다르게 해석했다고 밝혔다. "좌익은 6.10만세운동에 대해 노동자, 농민 계층의 성장과 조선공산당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했고 반면 우익은 조선공산당의 지도성을 부인"했다는 것. "신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의 역사와 주체를 정립하는 문제와 관련"이 돼 있었기에 "좌우익은 역사해석에서 입장을 달리했다"는 분석이다.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6.10만세운동의 계승과 민족대당촉성운동' 발표를 통해 6.10만세운동이 학계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일제의 왜곡 선전에 따라 6.10만세운동을 학생시위 정도로 치부한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어 "(6.10 만세운동이) "학생을 비롯한 청년층이 만세운동의 전면에 나섰고, 이념적으로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연대하는 민족통일 전선을 이끌어 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장 교수는 6.10 만세운동의 계승이 "분파 및 정파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던 독립운동계의 숙원 과제를 해결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즉, 6.10만세운동은 좌우익이 모여 정치 이념을 초월한 채 만세를 했다는 의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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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흥 국민대교수가 '6.10만세운동의 계승과 민족대당촉성운동'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장 교수는 6.10만세운동의 특징을 '주체의 복합성과 다양성'으로 설명하면서 계획과 추진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참가했고, 이들이 정치 이념을 초월해 만세운동을 준비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그는 "한때 사상과 이념으로 독립운동계가 혼선을 빚거나 분립했고 그것이 독립운동의 걸림돌이 됐던 일도 있었으나 6.10만세운동은 그런 난관을 극복해 독립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1926년 국내에서 6.10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상해에서는 '정치 이념을 초월한 통일된 조직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하자'는 민족대당촉성운동이 주창됐다. 이후 이 여파는 다시 신간회의 성립으로 이어진다.

이날 6.10만세운동 학술 심포지엄의 축사 역시 좌우 분열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뤘다. 박수현 비서실장은 문희상 국회의장의 축사를 대독했다. 박수현 비서실장은 6.10만세운동의 의의를 두고 "분열을 보이던 독립운동 세력이 하나로 뭉쳐 만세 시위를 일으킨 것"이라며 "역사적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짚었다.

또 이런 6.10만세운동의 정신을 현대로 가져오며 "국익 앞에서는 여야, 좌우,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화합만이 나아갈 길이고 이번에 '민족 통합'이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학술 심포지엄을 뜻깊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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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 국사편찬위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조광 국사편찬위원장 또한 "6.10만세운동은 좌우 이념과 정파를 초월한 거족적인 만세운동"이라면서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만세 시위의 규모는 3.1운동만큼 크게 이뤄지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3.1운동 이후 일제의 잔인한 폭압에 다소 정체된 독립운동의 커다란 방향을 불러일으킨 운동"으로 평가했다.

라종일 6.10만세운동 기념사업회 회장은 이날 "6.10만세운동을 공산당이 했다는 오해가 있다"면서 "여러 사상과 이념을 가진 민족주의 운동가들이 함께 모여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6.10만세운동은 이념을 초월해 일으킨 독립운동"이라며 "오늘날 우리가 이념을 쫓아 국론이 분열됐는데 이번 심포지엄이 작은 이정표가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또 라 회장은 "100주년이 되는 해까지 학술 심포지엄을 열 생각"이라며 이날 참석자들에게 향후 기념사업회의 방향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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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일 6.10만세운동 기념사업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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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6.10만세운동 기념사업회 학술심포지움 - 6.10만세운동과 민족통합' 발표자와 유족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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