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급 절반 내놓은 PD, 그가 방송가에 일으킨 변화

[인터뷰] 고 이한빛 PD동생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등록 2019.07.10 08:33수정 2019.07.1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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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한빛 PD의 생전 모습 ⓒ 김종훈

 
"형은 나쁜 말로 표현하면 지극히 예민한 사람이었지만, 바꿔말하면 공감 능력과 감수성이 그만큼 풍부한 사람이었다."

CJ E&M 채널 tvN에서 조연출로 일하다 2016년 10월 26일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 이사가 "형 이한빛 PD는 어떤 사람이었냐"라는 질문에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다.

고 이한빛 PD는 2016년 3월 CJ E&M 입사 후 처음으로 받은 월급의 절반을 416연대와 KTX 해고 승무원들을 위해 사용했다. 이한솔 이사는 "형은 원래부터 그랬던 사람이었다"면서 "용산참사 추모미사 마지막 날에 현장에서 형과 엄마를 우연히 만났다, 형은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 왔기에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형은 예민했다. 바라마지 않았던 드라마 PD가 됐지만 방송가에서 당연시되는 과도한 노동과 비정규직 계약 해지 업무에 괴로워했다. 특히 해고된 계약직 직원들의 월급과 선입금을 돌려받는 임무(계약 중도 해지 때 선입금을 돌려받는 일)는 예민했던 그를 더욱더 힘들게 했다. 더욱이 그는 조연출로 참여한 드라마 <혼술남녀>의 촬영 기간 55일 중 딱 2일만 쉬었을 뿐이다.

이한빛 PD가 입사 9개월 만에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하는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이유다.

형이 허망하게 떠난 뒤 남은 가족들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다. CJ E&M은 고인의 죽음이 개인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2016년 11월 청년유니온과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등 17개 시민사회단체로 꾸려진 '<혼술남녀>신입조연출사망사건대책위원회'가 꾸려진 뒤에야 CJ E&M은 이듬해 6월 '고 이한빛 피디 유가족과 대책위에 드리는 사과의 글'과 함께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남은 가족들은 위로금 대신 미디어 종사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목표로 하는 법인 설립 기금을 요청했다. 2017년 12월 그의 이름 '한빛'을 따 사단법인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한줄기의 빛, 한빛'이 대한민국 방송가의 심장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세워졌다. 이 PD의 동생 이한솔씨는 한빛센터에서 급여를 받지 않는 비상임 이사직을 맡고 있다.

한빛센터가 상암동에 세워진 이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간 무시돼 왔던 방송 제작 현장의 문제가 수면 위로 여실히 드러났고 증언이 쏟아졌다. 한빛센터는 제기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해결해나갔다.

특히 지난해에는 방송업을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끌어냈다. 또 지난해 9월에는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해 방송스태프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게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과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이러다 한빛센터에 신고 들어가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올 정도로 현직 PD와 방송사가 한빛센터를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이다.

4일 오후 한빛센터에서 이한솔 이사를 만났다. 앞서 이 이사는 지난달 30일 형의 사망 이후 한빛센터가 만들어지고 활동하는 과정을 모아 <가장 보통의 드라마>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아래는 이한솔 이사와 나눈 일문일답.

"한빛센터 존재를 현장에서 의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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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센터 입구에 선 이한솔 이사 ⓒ 김종훈

 
- 한빛센터 출범 1년 6개월이 지났다. 자평하면?
"그동안 방송가에서 계약직이나 프리랜서에게 장시간 노동이나 저임금 혹은 폭언은 문제라는 인식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빛센터가 출범하고 나서는 똑같은 상황에서 '이거 문제 있는 것 아니야'라는 말이 나온다. 딱 그 정도 변화가 일어났다. 고무적인 건 한빛센터의 존재를 제작 현장에서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한빛센터가 설립된 후 '미디어시티' 상암동 분위기가 변한 것인가?
"좋은 표현으로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CJ E&M이 사과하고 나서는 목표했던 것들이나 (형에 대한) 부채감이 해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몸은 엄청나게 피곤하다. 매번 나를 채찍질하며 달려 왔다. 하지만 지금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행복하다."

- 어떻게 가능했나? 
"시간이 지나면 형의 아픔에 공감했던 사람들도 자연스레 힘이 빠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동력도 잃을 것이고. 힘이 빠지기 전에 방송가에 변화된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게 1차 목표였다. 처음에는 현장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게 만드는 것도 어려웠지만, 이제는 시스템을 바꾼다는 목표에 집중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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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솔 이사가 쓴 <가장보통의드라마> ⓒ 김종훈

 
- <가장 보통의 드라마>라는 책을 지난달 30일에 출간했다. 여러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감이 없다. 출간된 지 얼마 안 됐다. 그래도 관심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한빛센터에서 활동했던 걸 종합적으로 <가장 보통의 드라마>에 담아내고 싶었다. 시민들에게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풀어써서 보여주고 싶었다. 현장 종사자가 보면, 누군가가 당신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고 문제를 함께 풀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현업종사자들이 더 많이 보고 연락하면 좋겠다."

- 미디어 종사자들이 <가장 보통의 드라마>를 더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인가?
"시선을 다르게 해서 미디어 현실을 말하고 싶었다. 방송가에서 상대적으로 을의 입장인 사람들이 보면 '이렇게도 말하고 바꿀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만 불이 붙었을 때 기름을 부어서 더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하는데, 아직 그 정도까지 이르지 못했다. 현재의 고민 지점이다."

- 그래서일까 현장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
"제보가 많이 들어왔다. 한빛PD의 이야기뿐 아니라 방송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그대로 그려냈다."

<가장 보통의 드라마>는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모티브로 삼아 책의 구성을 풀샷, 클로즈업, 컷으로 구분해 표현했다. 이 이사는 장마다 미디어 현장에서 일하는 촬영과 조명, 미술, 작가, 배우 등 스태프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녹여냈다.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아니냐'라는 지적에 직접 단역을 맡아 일해 보기도 했다. 

"딱 하루만 일했다. 다음 촬영을 위해 저녁에 다 모인 자리에서 조연출이 와 '한빛센터에서 감시하러 왔어요?'라고 묻더라.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이어 메인PD가 다음 촬영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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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센터 이한솔 이사. ⓒ 김종훈


- 정말로 감시하러 간 것 아닌가?
"결코 현장에 피해를 주려고 간 것이 아니었다. 그저 현장 이해도를 높이려고 간 건데 모두에게 신경 쓰이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루만 일한 이유다."

이한솔 이사의 <가장 보통의 드라마>를 보면 '형'이라는 표현 대신 '한빛PD'라고 명시돼 있다.

"형은 방송가에 만연한 구조적 문제로 죽음에 이르렀다. 그 부분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책을 썼다. 어쩌면 형이라는 표현 대신 한빛 PD라고 나도 모르게 쓴 이유인데 좀 더 객관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형은 내가 이렇게 쓴 걸 오히려 더 좋아했을 것이다."

고 이한빛 PD의 동생인 이한솔 한빛센터 이사가 쓴 <가장 보통의 드라마>는 형의 죽음에서부터 한빛센터 창립, 그 이후의 과정을 모아 드라마 제작과정에서의 '말도 안 되는' 현실을 고발한 에세이다. 책에는 이한솔 이사의 글뿐 아니라 고 이한빛 PD가 생전에 썼던 에세이, 두 사람의 어머니 김혜영씨의 글도 부록으로 포함돼 있다.

가장 보통의 드라마 - 드라마 제작의 슬픈 보고서

이한솔 (지은이),
필로소픽,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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