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시원한 맛... 할머니가 타주던 마법의 냉수

잊지 못할 여름 간식, 그 시절 그 맛이 그립습니다

등록 2019.07.28 11:42수정 2019.07.2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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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모는 하얀 티코가 흙먼지를 날리며 외할머니네 마당에 들어섰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내 가방에는 여름방학 숙제인 탐구생활과 일기장, 여름내 입을 옷이 가득했다.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자줏빛 몸빼 바지에 앞코가 막힌 보라색 고무신을 신은 할머니가 달려 나왔다.

할머니가 "내 새끼들" 하며 나와 여동생을 꼭 안아줄 때면 눈물이 찔끔 났다. 이런 극진한 대접이 곧 끝날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목소리가 크고 성질이 급했다. "광에 가서 소쿠리 좀 가져오너라" 하면 난 광이 어딘지 몰라 헤매다가 "저 모자란 것!"이라며 방학 내내 구박 맞곤 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산 중턱에 있던 할머니 집은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려면 삼십 분은 걸어야 하는 산골이었다. 주위엔 밭과 산밖에 없었고, 벗이라고는 마당에 매인 메리 두 마리와 사촌 동생 둘이 전부였다.

할머니는 매일 김치와 나물 위주로 밥상을 차렸다. 여섯 살이던 사촌 동생은 국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고 고개를 젖혀 꺼이꺼이 울었다. 어느 날 할머니는 콩나물무침을 슬며시 빼더니 물을 붓고는 모른 척 그 애 앞에 놓았다. 말도 안 되는 수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동생이 눈물을 뚝 그쳤다.

그 여름 유일한 낙, 슈퍼 아이스크림

"하드 사 먹고 오거라" 하며 할머니가 돈을 주면 우리는 줄지어 슈퍼로 향했다. 그 여름 유일한 낙이었다. 산 중턱에 있던 할머니 집에서 나와 울퉁불퉁한 흙길을 따라 내려가면 똥냄새가 폴폴 나는 젖소 농장이 나왔다. 음매 소리를 들으며 한참 걷다 보면 우리 키보다 큰 옥수수밭이 나왔다. 그 땡볕에서 우리는 누가 더 높이 뛰나 점프하며 놀기도 했다. 시골은 지천이 놀이터였다.

슈퍼라고 해봤자 파는 아이스크림이 대여섯 종류나 될까? 흔한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하나 없어 우는 사촌 동생을 달래 색이 비슷한 커피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렸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심심한 나머지 길가에 보이는 풀이란 풀은 죄다 잡아 뜯으며 걸었다. 한 번은 가을에 필 코스모스 잎을 죄다 쥐어뜯어 할머니한테 욕 한 바가지 시원하게 얻어먹기도 했다. 

그러다 오고야 말 것이 오고 말았다. 바로 슈퍼의 휴가였다. 엄마, 아빠도 날 버리고 휴가를 떠난 판에 슈퍼 주인이라고 못 갈 것이 뭐 있겠는가. 멀쩡히 슈퍼 갔던 아이들이 땀 범벅, 눈물 범벅이 되어 돌아오자 할머니는 사정을 듣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양손에 스테인리스로 만든 냉면 사발을 들고나왔다.

땀에 흠뻑 젖은 나는 그것을 받자마자 꿀꺽꿀꺽 한 번에 마셨다. 그렇게 달고 시원한 것은 처음이었다. "할머니 이게 뭐야?" 기대에 찬 목소리로 내가 묻자 할머니가 답했다. "뭐긴 뭐여. 설탕물이지." 역시 무뚝뚝한 우리 할머니였다.  

할머니 밥상, 그 단순함이 그립다
 

그 시절 할머니의 냉수 한 그릇, 비슷하게 타 먹어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 우민정

 
그때부터 슈퍼 가기 귀찮을 때마다 "할머니, 그거, 그거" 하면 할머니는 바로 알아듣고 찬장에서 곱고 흰 설탕을 꺼내 물에 녹인 뒤 얼음을 한가득 넣어주었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엄마가 와 하룻밤을 같이 자고 돌아갔다. 잠자리에서 할머니가 엄마한테 말했다. "나는 아이가 말귀를 못 알아들어 구박했는데, 보니까 내가 사투리를 해서 못 알아듣는 거였어. 그걸 모르고 구박을 했으니 어찌나 미안한지." 나는 자는 척하며 그 소리를 또렷이 들었다. 그 말에 섭섭했던 내 마음이 풀렸다.

23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 냉수가 생각난다. 그 맛을 오래 잊고 지내다가 몇 년 전 초등학교 앞에서 옛날 냉차를 파는 아저씨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200원인가를 주고 사 먹었는데 그 맛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싶어 집에서 설탕물을 타 먹었는데도 영 그 맛이 안 났다. 아무리 화려한 애플망고빙수를 먹어도 그때 그 시원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세월이 갈수록 화려하고 자극적인 음식이 많아지며 할머니의 음식과도 멀어졌다. 갈 때마다 바리바리 싸주시는 반찬도 거절한 지 오래다. 그런데 요즘은 할머니가 해주던 꽈리고추볶음, 깻잎김치, 콩나물무침들이 가끔 떠오른다. 밭에서 바로 딴 배추, 고추, 상추와 된장 하나 올린 할머니 밥상. 그 단순함이 그립다. 온갖 값비싼 빙수의 홍수 속에서도 할머니가 타준 설탕물의 시원함을 잊지 못한다.

서운한 내 마음 달래주었듯 더위에 지친 나를 달래주던 그 시절 할머니의 냉수 한 그릇이 그립다. 올 여름 휴가 때는 할머니를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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