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현수막으로 도배... 문제적 고등학교의 '도발'

[아이들은 나의 스승 170] 최상위권 학생 특혜 적발에 오히려 '폐교' '군사독재' 운운하며 반발

등록 2019.08.20 21:00수정 2019.08.2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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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지 유출 사건에 대한 시교육청의 특별 감사 발표 직후, 해당 학교에서 대응책으로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를 본 시민들은 하나같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 서부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명색이 아이들을 교육한다는 학교가 저렇게 뻔뻔해서야…"

광주 K고등학교의 건물 벽면에 내건 대형 현수막을 보고 지나가던 시민들이 혀를 끌끌 차며 내뱉은 말이다.

시험지 유출 사건으로 시교육청으로부터 특별 감사를 받아온 해당 학교가 되레 '광주 교육이 사망했다'며 지난 19일 현수막을 걸고 반발하고 있다. 최상위권 학생을 특별 관리해 왔으며, 평가 관리를 비롯한 교육과정 자체가 엉망이었다는 감사 결과가 나온 직후다.

시교육청의 감사 결과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의 제보가 넘쳐나고 관련 증거도 수두룩한데 학교는 모든 것을 부인한 셈이다. 시교육청으로부터 고발까지 당했으니 머지않아 수사가 시작될 테지만, 반성은커녕 전혀 괘념치 않겠다는 투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저들의 초대형 현수막은 대체 누구의 발상일까.

교사로서,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도 차마 그곳을 학교라고 할 수 없다. 차라리 '범죄 집단'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는 조롱마저 여기저기서 들린다. 주위에는 어디 가서 광주에 근무하는 교사라는 말도 못 꺼낸다면서, K고등학교로 인해 광주 교육 전체가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며 속상해하는 이들도 여럿이다.

변명 아닌 변명 "다 너희들을 위해서 한 일"

K고등학교 교사라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학교에 난무하는 불법과 편법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침묵했다면 공범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이든 저든 교육자로서의 기본적인 소양과 자질이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만약 수업시간 그들이 민주와 인권, 정의를 부르짖었다면, 그것은 표리부동이며 이율배반이다.

아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그런데도 몇몇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다 너희들을 위해서 한 일"이라거나 "재수 없이 걸려서 그렇지, 다른 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한다. 아이들을 명문대에 진학시키려면 편법과 불법조차도 용인될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교사로서 낯부끄러운 일이다.

학부모들도 공범이다. 특히 최상위권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죄가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 그들의 자녀가 학교에서 부당한 특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연시했다. 점수가 낮다는 이유로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도록 내모는 건 명백한 차별이자 인권 침해라는 걸 모를 리 없다. 역지사지의 기본적인 덕성조차 지니지 못한 부모로부터 자녀는 무엇을 배우게 될까.

아이들도 마냥 두둔할 수만은 없다. 10대 후반의 고등학생이라면 옳고 그름의 사리판단 정도는 할 수 있다. 과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한 축이었고, 2.28 의거와 4.19 혁명을 이끈 주인공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차마 말 꺼내기조차 민망하다. 공정함에 목맨다는 요즘 세대가 횡행하는 차별에 나 몰라라 한 건 비루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작년까지 선배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명문대에 합격했는데, 이번 일로 올해는 예년에 비해 내신등급이 더 높아도 합격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시험지 유출 사건이 전국적으로 이슈가 된 마당에 학교 이름이 발목을 잡을 게 분명해요. 친구들끼리 서로 올해 수시는 끝났다고 말해요. 하필이면 올해 일이 터질 게 뭐냐면서."

이웃에 사는 K고등학교 3학년 아이의 하소연 앞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런 '막돼먹은' 이야기를 태연하게 건넨다는 게 더 놀라웠다. 특혜를 누려왔다는 것엔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식이다.

K고등학교가 지금껏 그런 아이들을 길러낸 곳이라고 한다면 과연 억측일까. 그들의 적반하장 현수막 내용으로 미루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며 고개를 가로젓진 못할 듯하다. 옛말에 '교육은 교사의 질을 결코 넘을 수 없다'고 했다. 감사 결과, 이번 시험지 유출 사건에 K고등학교 전체 교사 중 무려 80%가 연루된 상황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지나가던 소도 웃을 K고등학교의 '해명'

현수막에 큼지막하게 적힌 K고등학교의 '해명'을 하나하나 따져보자. 시교육청은 지난 7월 8일부터 8월 7일까지 전문직 27명을 포함한 총 38명의 감사팀을 꾸려 K고등학교의 교무 학사 운영 전반에 대해 특별 감사를 벌였다. 언론에 공지된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현수막 내용의 진위를 가리고 꼼수를 들춰내는, 일종의 '팩트 체크'다.

우선,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부터 털어내야겠다. '하위권 학생도 포기하지 않고, 모두 대학을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 오로지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을 '교육'이라고 여긴 곳이니 그렇다 해도, 교육과정을 왜곡해가며 최상위권 아이들을 특별 관리해온 학교가 하위권 학생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채점 실수한 교사 80%를 징계하는 교육청은 학생 인권을 말하면 안 된다'는 건, 당최 '말인지 막걸리인지' 헛갈릴 지경이다. 교사 징계와 학생 인권이 대체 무슨 관계인가. 공무상 잘못을 저질렀다면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게 옳다. 애꿎게 학생 인권을 끌어다 붙일 계재가 아니다. 외려 징계 받은 교사가 '홧김에' 학생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협박처럼 들린다.

단지 채점 과정에서 실수를 했다고 교육청까지 나서서 징계 운운하지는 않는다. 단순한 오기나 합산 과정에서의 오류가 아니라, 최상위권 아이들을 위한 다분히 의도적인 실수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교사가 결재 받은 채점기준 없이 시험이 끝난 뒤 자의적으로 배점을 부여한 것을 두고 단순 실수라고 한다면,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최근 3년간 실시된 수학시험 문제가 참고서나 문제집의 기출 문제와 76%나 일치했다는 건, 같은 교사로서, 해도 너무하다 싶다. 하지만 핵심은 해당 문항이 최상위권 아이들에게만 제공되었는지 여부다. 관련 의혹이 제기되고 증언은 나왔지만, 교육청 감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검찰의 수사로 밝혀질 부분이다.

시험지 유출과 관련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걸 두고 학습권과 수업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건 흡사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다. 최상위권 아이들에겐 별도의 방과 후 프로그램과 자율동아리, 토요 논술교실까지 제공하며 대다수 일반 학생들의 학습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터다. 더욱이 설문조사 과정에서 아이들을 겁박하고 조작했다는 주장은 실상 결과를 흠집 내기 위한 꼼수다.

K고등학교가 교육청이 실시한 교육만족도 최우수 학교였다는 건 '웃픈' 현실을 보여준다. 대체 선정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지만, 오로지 명문대 진학 실적만으로 학부모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왔으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지역사회에서는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K고등학교는 소풍과 체육대회, 진로체험활동 등을 거의 실시하지 않는, 대학입시에 '특화된' 학교다.

그러다 보니 여느 학교에 견줘 수능 점수가 높게 나오는 건 당연하다. 주지하다시피, 수능 대비를 위해서는 유형 분석을 위해 기출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다. 수능이 교실 수업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나온 이유다. K고등학교가 내신 5등급 학생을 지방의 거점 국립대에 합격시켰다고 딱히 자랑할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폐교하겠다? 애먼 학교를 볼모로 잡겠다는 발상

한편, 시교육청의 특별 감사를 두고 '군사정권을 능가하는 협박과 조작'이라고 단정하는 저들의 배짱이 부럽기만 하다. 5공 정권 말기인 1985년에 개교한 데다 추상같은 사립학교법이 버티고 있어 딱히 군사정권의 핍박을 겪었을 리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군사정권 운운하는 건 애먼 호남 지역의 정서에 기댄 전형적인 '피해자 코스프레'다.

'정의'와 '진보'를 들먹이는 것 또한 추레하기 이를 데 없다.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군사정권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하면서, 보수적이고 동정적인 여론의 주목을 끌려는 얄팍한 술수다. 감사로 인해 학교가 마비되어 아이들의 인생을 망쳤다는 주장은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

현수막 내용의 압권은 단연 '성적 조작과 비리가 사실이면 폐교하겠다'는 내용이다. 범죄를 저질렀으면 죄인을 가려 처벌해야 옳지, 애먼 학교를 볼모로 잡겠다는 발상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죄를 지었다고, 대한민국을 문 닫게 할 순 없지 않은가. 교육기관인 학교를 사기업처럼 여기는 천박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수막이 내걸리자 여기저기서 'K고등학교가 시교육청보다 더 힘이 세다'는 말이 돌고 있다. 과거에 시험지 유출 사건보다 훨씬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 때도 흐지부지됐다며,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이번 일을 두고 사립학교'법'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의 싸움이라며, 여론의 지지가 없다면 시교육청은 필패라는 주장도 있다.

같은 지역에 근무하는 현직 교사로서 충언하건대, 부디 적반하장의 현수막을 내리고 반성과 사죄의 뜻을 담아 고쳐 달기 바란다. 최상위권 아이들에게 특혜를 주고, 대학입시 중심의 부당한 교육과정을 운영해온 잘못된 관행에 교사로서 문제의식이 부족했음을 고백하는 것이 우선이다. 자신들로 인해 생채기가 났는데, 되레 '광주 교육 사망' 운운하는 건 뻔뻔한 짓이다.

K고등학교는 건학 이념으로 '선비 정신'을 내걸고 있다. '선비 정신'의 사전적 의미는 '세속적 이익보다 대의와 의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버리는 것'이다. 현수막의 내용이 과연 '선비 정신'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K고등학교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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