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가 부모와 아들을 위해 만든 책

[서평]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등록 2019.08.28 15:44수정 2019.08.2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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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랬을 겁니다. 어느 나라나 한글처럼 다 자기들 나라 글자가 있고 자기들 나라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조금씩 자라며 한글은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우리말이고 우리나라만 사용하고 있는 글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조금 더 자라며 한글을 창제한 임금이 세종대왕이시고, 세계적으로 매우 뛰어난 글이라는 것까지 알게 됐습니다.

훌쩍 자라며 예나 지금이나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해 다 발전하며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어느 발명가나 중소기업에 의해 유익하고 이로운 뭔가가 발명되거나 만들어 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들어진 그것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거나 널리 팔리지 않으면 그 효용성을 인정받기도 전에 시장에서 밀려나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만들어 진다고 해서 저절로 알려지거나 발전 계승되지는 않습니다.

한글도 그랬을 겁니다. 한글이 아무리 우수한 글이라 해도 창제된 이후 널리 알려지지 않았거나 계승 발전되지 않았다면 오늘에 이르지 못하고 세종대왕의 업적으로 역사에 존재하는 그런 기록에 불과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들어진 한글을 널리 알리며 발전 계승시키는 데 기여한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지은이 정진원 / 펴낸곳 ㈜조계종출판사 / 2019년 8월 30일 / 값 17,000원) ⓒ ㈜조계종출판사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지은이 정진원, 펴낸곳 ㈜조계종출판사)는 국어학과 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고전으로 된 <월인석보>를 현대어로 번역하고 있음은 물론 글속에 스며있는 역사와 심리적 배경까지를 되새김질이라도 하듯 낱낱이 새겨가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쳐서 펴낸 책입니다. <석보상절>은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10개월 만인 1447년 7월 보름에 훗날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에 의해 24권의 대작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석보상절>은 석가모니의 '석釋', 족보나 일대기라는 뜻의 '보譜', 상세히 할 경전과 중요한 내용은 자세히 할 '상詳', 중요하지 않은 것은 과감히 절약하였음을 '절節'이라 하여 이름을 지은 한글 불경입니다.

아들 수양대군이 만들어낸 <석보상절>을 보고 아버지인 세종이 단숨에 600수에 가까운 노래로 지은 것이 <월인천강지곡>입니다. 이로부터 12년이 지난 1459년, 임금이 된 세조가 돌아가신 부모님과 요절한 아들 세경세자를 위하여 이 두 책,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에서 '월인'과 '석보'를 따 합해서 만든 게 <월인석보>입니다.

책에서는 <월인석보> 원본을 꽤나 여러 장의 이미지로 담고 있으며, 단순한 풀이나 해석을 넘어 이들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 글자 하나하나에 스미어 있을 심리적 상황까지를 장면으로 그려내듯 묘사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각별했을 아들이 어머니 소헌왕후를 보내야 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세조가 쓴 문장을 다시 한 글자씩 찬찬히 음미하노라면 지금이라도 <석보상절>을 세종과 함께 읽다가 슬픔을 가누지 못해 부둥켜안은 부자가 글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다. 이것이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 겉모습에 가려진 아들 세조의 슬픈 뒷모습의 첫 번째 장면이다.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60쪽-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이 둘을 합쳐 만든 <월인석보>는 지금은 생소해진 초기한글로 쓰인 고전이며 불경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학문적으로 제대로 연구하고 해석하려면 국어학자로의 전문성과 불교지식 또한 두루 박학해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국어학자인 저자가 <월인석보>를 들고 국어 학자를 찾아가면 불교 쪽에서 알아보라하고, 스님들을 찾아가면 국어학자들 영역으로 떠넘기기 일쑤니 <월인석보>를 현대어로 옮기고, 글속에 담겨있는 불교적 의미까지를 새기는 길은 지난했습니다.

책은 국어 학자였던 저자가 불교에 입문하고, 다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을 만큼 매진해 가며 30년 동안 <월인석보> 읊조리고 되새겨 낸 결과물로 <월인석보>가 막 창제된 훈민정음이 널리 알려지고 뿌리를 내리며 정착돼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승되며 발전되는 데 어떻게 기여했음을 손으로 더듬어 가듯 알려줍니다.

국어로 읽는 <월인석보>에서는 세종대왕의 업적과 세조의 인간적 모습이 역력하고, 불경으로 읽는 <월인석보>에는 상세할 것은 상세히 밝히고, 간추릴 것은 간추린 석가모니의 일대기가 담겨있음을 읽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정진원 (지은이),
조계종출판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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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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