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지 않은 촛불들을 생각한다

[주장] 우리는 그들이 '조국 정쟁'에 응답하지 않는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

등록 2019.09.29 20:05수정 2019.09.2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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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촛불이 피어난다. 광화문에서도 피어나고 서초동에서도 피어난다. 주장하는 바는 다르지만 저마다 2016~2017년 '미완의 촛불혁명'에서 그 정당성을 찾는다. 저마다 '촛불시민'을 자임한다. 모두 옳은 주장일 것이다. 그때 촛불을 들었던 시민은 광화문에도, 서초동에도 얼마간 있을 것이므로.

'촛불혁명'의 정당성은 어느 한쪽에 의해 독점될 수 없다. '촛불시민'은 광화문, 서초동에만 있지 않다. 맥도날드에 있고, 국밥집에도 있고, 도서관에도, 사무실에도, 작업장에도, 비닐하우스에도 있다. 지금 저마다의 자리에서 살아가려 애쓰는 모두가 '촛불시민'이었다.

'촛불혁명'은 2017년 이미 완수되었다. '촛불혁명'의 목표는 '원상태로의 복귀'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거창한 이념이나 분명한 대안을 공유하며 광장에 나온 게 아니다. 사람들을 광장으로 이끈 일치된 생각은 단 하나의 문제의식이었다. '이게 나라냐'라는 개탄이었다.

'촛불시민'은 '이게 나라냐'는 물음으로 정권을 교체했고, 박근혜와 그 부역자의 옷을 벗겨냈다. 민주주의의 '틀'을 지켜냈고 정치 게임의 '룰'을 되살렸다. 광장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촛불혁명'의 역할은 그것에 그쳤지만, 그것만으로 매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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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검찰청앞 시민들 분노 폭발 '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도로에서 사법적폐청산연대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다음은 정치의 시간이었다. 잠시 달달했으나 금세 답답해졌다. '조국 정국'에 이르러 정치는 정지되었다. 대안을 제시하고 여론을 이끌지 못한다. 여론에 끌려다니며 대책만 내놓기 급하다. 요사이 국회에서 '국회의원·고위공직자 자녀 입시비리 전수조사' 이야기가 오가는 데 정말 바람직하지 못하다.

전수조사가 이뤄질지 의문이지만 실행된다면 속이 잠깐 시원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개천에서 용 나고 용이 개천으로 떨어질' 확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전수조사 결과는 정시 확대로 이어질 것이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자리하는 이들 대부분은 변함없이 사교육 많이 받은 부잣집 자식들일 터다.

한국교원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석사과정 문정주씨와 같은 과 조교수 최율씨는 '한국사회학' 제53집 제3호에 <배제의 법칙으로서의 입시 제도>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사회적 상층일수록 정시전형을 선호'하며 '이러한 분석 결과는 학생부종합전형이 금수저 전형이라는 현재의 비판 담론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민 75%가 전수조사에 찬성한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안 봐도 비디오다'는 질타로, '깨끗한 척하지 마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경각심을 갖고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정지된 정치를 재생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는 여전히 온데간데없고 정쟁만 남았다. 정치의 빈자리에, 2017년 해산한 '촛불시민'이 이곳저곳 다시 소환되고 있다.

물론 정치는 갈등을 다루는 것이니 정쟁은 해야 하는 일이다. 문제는 정쟁'만' 남았다는 것이다. 조국을 지켜야만 한다는 사람들, 쳐내야만 한다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커졌다. 목소리는 커져만 가는데 무엇을 위해 싸움을 시작했던 것인지 그 이유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검찰개혁? 공정성? 누구를 위한 검찰개혁인가? 누구 좋으라고 입시 공정성을 제고하는가?

광화문과 서초동의 '촛불시민'에게는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촛불시민'을 생각해야 한다. 2017년 촛불을 들었지만 지금 들고 있지 않은 '촛불시민'들을 고민해야 한다. 그들이 '조국 정쟁'에 응답하지 않는 이유를 궁리해야 한다. 이들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도대체 누가 듣고 있는가?

대중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는 싸움은 무당층을 양산한다. 진보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과 진보를 실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중도를 끌어안아야 한다. 중도를 끌어안아 다수를 형성하고, 다수의 힘으로 현실을 손톱만큼이라도 개선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다. 개혁을 강하게 말할수록, 특히 그 개혁의 내용이 많은 이의 살림살이와 떨어진 것일수록, 오히려 진짜 개혁은 멀어지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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