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가을, 거대한 파도

9.28 서초동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서

등록 2019.09.30 15:49수정 2019.09.3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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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순천향대 객원교수인 박몽구 시인이 지난 28일 서초동에서 열린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와 관련한 시를 보내왔습니다. 이를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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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검찰청앞 시민들 분노 폭발 '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지난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도로에서 사법적폐청산연대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가을, 거대한 파도
- 9.28 서초동 검찰 개혁 문화제에서


누구도 몰랐던 거대한 민심의 강
가을 마른 땅 뚫고 드러나는
천심을 비로소 보았다
예술의 전당에서 굳게 닫힌 법원, 검찰청 지나
국립 중앙도서관에 이르는
깊고 넓은 강에 사는 이무기를 보았다
제 앞에 놓인 완장 하나 찬 채
아무리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침묵의 카르텔 깨뜨리기 위하여
가는 길, 아무리 걸어도 좁혀지지 않는다
이무기 꼬리 아무리 들쳐도 끝 보이지 않는다

족히 백만을 헤아리는 민심의 십자군
핏발 선 그리움으로 어깨에 어깨 걸고
발 제껴 딛을 틈 없는 민심의 숲 이루고
모자라면, 발걸음 멈추고 가로수 아래 서서
긴 세월 썪은 가슴 깊이 묻은 채
차마 꺼내지 못한 말 뱉는다

한 사람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르는 혀였다가
머리를 버린 손발이었다가,
친구들의 죽음을 딛은 채
잠들지 못한 채 돌아가는 공장
빈 껍데기만 거두는 땅
갈아엎어야 한다고 일어서는 주인들에게
눈을 가린 망나니 칼 휘두르는 너

저를 길러준 백성들에게 등 돌린 채
차갑고 거대한 벽 뒤에 숨어 있는
오만과 아집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가을 하늘에 맑은 한 송이씩 건다
작은 물방울들이 거대한 파도 이루듯
백만 개의 작은 촛불들 모여
마침내 가파르고 완고한 벽 무너뜨린다

태풍 지난 뒤 모처럼 깨끗한 하늘 펼쳐진 가을
낯선 얼굴들이 금세 친구가 되어
예술의 전당에서 성모병원 고개까지
길고 긴 오리 비탈길 즐겁게 오른다
기울어진 법의 칼을 지키기 위하여
누구 하나 부를 수 없는
감옥의 외롭고 어두운 공포를 들이밀고
11시간 동안 한 가족의 끈
매서운 칼로 갈기갈기 자르지만
작은 물방울들 모여 이룬 거대한 파도
함께 즐겁게 언덕을 넘어간다
검찰청 높고 가파른 벽 넘어
세성에는 차가운 법 눈을 가린 칼 넘어
넓고 환한 세상으로 가야 한다고
저 어둠 아무리 길고 깊어도
훤히 밝혀줄 백만 개의 촛불
넘어진 사람들 서로 일으키며 걷는다
완강하게 보호 본능만으로 쌓아올린
저 거대한 거탑을 쓰러뜨리기 위하여
함께 몸을 묶어 파도를 탄다

제 손아귀네 쥔 돈과 한줌의 힘밖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아니 돌아보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기 위하여
아아, 깨끗한 민주의 새벽을 열기 위하여
어둠 걷히기까지 꼬박 밤의 끝까지 간다

* 박몽구 시인 :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7년 월간 <대화>로 등단하여, <수종사 무료찻집> <칼국수 이어폰> <황학동 키드의 환생> 등의 시집을 상재했다. 한국크리스찬문학상 대상 수상. 계간 <시와문화> 주간.
#검찰개혁 #촛불문화제 #조국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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