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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없는 시간, '젊음'을 사는 친구들에게

[인터뷰] 전영배, 강환종 어르신

등록 2019.10.21 10:20수정 2019.10.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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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역문화진흥원이 주최하는 지역문화인력 지원사업의 일환인 '도봉구민청(도봉문화재단) 돋보기 프로젝트'를 통해 진행됐습니다. - 기자 말

"앵콜, 앵콜!"

도봉구의 한 작은 지하 공연장, 어르신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멋진 신사 복장의, 꿈 많은 가수 하나가 미소 지으며 두 번째 노래를 시작한다. 자신의 인생이 담긴 '그 노래'를 말이다.

이 기사는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였던 70대의 두 인생 선배가 들려주는 '응원'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인터뷰는 지난 10월 11일, 도봉구민청에서 진행되었다.

"노래를 배우는데 갑자기 가슴이 뛰더라고"  
 

(좌) 강환종 / (우) 전영배 ⓒ 황도연

 
 - 안녕하세요 선생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나는 도봉구 쌍문동에 살고 있는 강환종, 창1동에 사는 전영배입니다."

-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 나는 1945년 1월생, 소위 해방족이라 하죠. 일흔다섯 되었어요. 하는 일은, 놀고 있다고 해야 하나?(웃음)
: 나는 48년생이에요. 일흔둘이고, 나 역시 놀고 있어요. 노래를 좋아해 공연이나 있으면 하러 다니고, 그러고 있죠.

- 두 분은 오랜 동네 이웃이자 친구 사이라고 들었어요. 어떻게 노래를 좋아하게 되신 건가요?
: 우리 둘 다 40년 넘게 도봉구에 살았어요. 노래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이 친구(전영배)를 알게 되었고. 노래가 좋아진 건 내가 외로움이 있어서 흥얼흥얼 혼자 달래던 게 여기까지 온 거죠. 예전엔 그림을 좀 했었어요. 내 초상화 정도는 총각 때 쉽게 그렸는데, 나이 들어 다시 그림 하려니 어렵더라고. 그런데 노래는 할 수 있었어요. 내가 좋아하면 시작할 수 있었죠.

: 나도 비슷해요. 젊어서 시골 살 때는 농사 지으면서 혼자 노래 부르는 걸로 끝이었거든요, 예전엔 라디오도 없어 동네 스피커 통해서 노래를 접했어요. 노래가 좋아 공연까지 하게 된 건 3년 전부터예요. 먹고살다 보니 여유가 없어 노래가 좋으면서도 선뜻 해보진 못했는데, 3년 전에 노래교실에서 노래를 배우면서 갑자기 가슴이 뛰더라고. 잊고 있던 것들이 막 생각이 나.

그래도 신곡은 어려웠어요.(웃음) 그런데 노래 선생님이 자꾸 듣고 따라 하면 된다고 하더라고. 한 곡을 1년간 연습했더니, 남 앞에서 부를 정도의 수준이 됐어요. 목소리 톤도 올라가고. 지금은 노래 배우면서 거리축제 같은 곳에서 공연도 하고, 봉사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내 삶이 좀 트인 것 같아요. 앞으로 내 인생 어찌 될지 모르지만, 더 해보고 싶어요.

인생의 상처 없었다면 진심이 담긴 노래 부르지 못했을 것 

- 노래하기 전까지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 내 고향이 양주에요. 20년간 농사지었죠. 결혼도 하고 애들 낳으면서 공장, 자전거 배달 일도 했고 제빵사도 했었어요. 그리고 화물차 운전하면서 전국을 다니다가, 서울로 오면서 70년도 말에 버스 운전을 시작했어요. 40년간 버스 기사였지. 예순 아홉에 그걸 접고, 지금 5년 동안 쉬고 있는 거예요. 이 정도 했음 거의 평생 직업 아닌가?(웃음)

: 이전에 전자업계에 있었어요. 뭘 하다가 실패를 본 적도 있고요. 그러던 중에 누가 방앗간을 권유하더라고요. 처음엔 방앗간을 공릉동에서 시작했어요. 고생 많이 했죠. 진짜 맨주먹으로 시작을 했거든. 일거리가 들어오면 주변에 전화해서 방법을 물어보기도 하고, 자본금은 지인들에게 다 얻어서 했어요. 그렇게 30년간 방앗간을 운영했어요. 지금은 따로 하는 일이 없으니 아쉬운 소리 안 하고, 그냥 아내랑 둘이 살아요. 원래 자식이 둘이었는데, 아들은 교통사고로 먼저 보냈고, 딸은 시집갔거든요. 내가 사연이 있다 보니, 서정적인 분위기의 노래. 그런 걸 좋아해요.

:  맞아. 이 친구는 옛날 노래 참 잘 불러요.
 

무대를 준비중인 전영배 어르신 ⓒ 황도연

 
- 다양한 삶의 경험이 있었기에, 깊은 노래가 나오는 것인가 봐요.
강·전: 그것도 맞는 이야기라 생각해요.

: 노래라는 게,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더만. 가수들은 보통 한 곡을 500번 이상 부른다던데, 나도 그래. 그래도 내 실력이 맘에 안 들 때 많아요. 그래도 관객들이 좋다고 박수쳐주니 그래, 좋은가보다 하고 스스로 응원하고 사는 거죠.

- 수십 년 동안 버스운전사로 일하셨는데, 기쁘거나 슬펐던 적은 언제인가요?
: 그 당시 버스 기사로 들어가기 힘들었어요. 면허증 따가지고 취업을 하려면, 다른 곳에서 버스 기사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없잖아요. 그럼 견습을 거쳐야 해요. 내가 안전히 손님을 모실 수 있는 걸 증명을 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지.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1년이고 견습을 해야 하죠, 근데 내가 운이 좋은 거는, 나는 화물차 운전을 좀 했으니까 운전 배우기도 수월했고.

견습 3일째에 한 버스를 운전하던 기사에게 접촉사고가 난 거에요. 그 기사 대신 제가 바로 투입이 됐어요. 그렇게 그날부터 쭉 운전 일을 할 수 있었어요. 3, 4일 만에 취업을 한 거죠. 버스를 책임지며 여러 승객을 모시는 게 즐거웠고, 내가 좌석에 앉아서 모자를 딱 쓰고, 넥타이를 매면 나는 그야말로 버스기사님이었어요. 승객들이 나한테 기사님, 기사님 하며 따뜻한 인사 한마디 건넬 때는 특히 좋았고.

반대로 슬펐던 적은 운전하며 안타까운 사고를 볼 때예요. 거의 20년 전 이야기인데. 겨울, 내 생일 즈음이었어요. 꼬마 하나가 교통사고가 크게 난 상태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도로에 있다가 내 버스에 또 한 번 부딪힌 적이 있었어요. 결국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요. 아무리 주변에서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막을 수 없었던 일이었다고 해도 고통스러웠어요. 내가 버스에 자부심을 갖고 살았는데, 그것이 누군가의 마지막 길을 조금이라도 아프게 했을 때 그 기분은... 지금도 내 생일이 다가오면 제대로 축하하지 못해요. 미안한 마음부터 듭니다.

- 그런 아픔과 상처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전: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 더 열심히, 더 최고로. 그런 마음으로 이겨냈어요. 보통 그런 일이 있고 나면 직업을 포기하기도 하는데, 나는 더 이를 악물고 했어요. 그 이후로 17년간 사고 없이 버스기사로 살았고, 멋지게 은퇴했습니다.

노래로 다른 사람 손 잡을 수 있을 때 큰 행복 느껴 

- 노래로 재능기부, 봉사활동도 많이 하신다고 들었어요. 느끼시는 점도 많겠네요.
: 네. 양로원에서 아프고 힘든 어르신들 만나서 공연도 합니다. 그 분(어르신)들이 내가 노래를 해가지고 즐거움, 만족함 그런 걸 느낄 때 보람을 느끼죠.

: 사실 거기 가면 나보다 나이 적은 사람도 여럿이에요. 첨엔 눈이 참 시큰했어. 나보다 나이도 적은데 아프고 힘드니까. 더 나이가 많은 내가 그 사람 손을 잡아줄 때 보람을 느껴요. 그러니 내 수명 다할 때까지 노래하자, 이런 마음이 생겼죠.

-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무대는?
: 내가 예전에 실버카페로 봉사 공연을 갔었는데, 그게 내 첫 데뷔 무대였어요. 반응이 참 좋았어요. 앵콜도 받고. 그런데 내가 노래를 배운 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배우는 사람이라고 1곡만 시켜주더라고. 그 아쉬우면서도 기뻤던 마음이 기억에 남아요. 노래하는 사람은 그래. 1곡 가지고 조금 아쉽거든.

: 앵콜 받는 게 쉬운 일 아니거든. 사람들의 심장을 울려야 박수가 나오지. 관객들의 심장을 안 때리면 박수도 안 나와요.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 노래가 인정을 받는구나 싶어.
 

무대 모습 ⓒ 황도연

  
- 두 분은 지금, 행복하세요?
강·전: 네, 그럼요. 더 바랄 게 없어요. 아직까지 건강하고, 아픈 데도 없고. 내가 노래해서 그런가? 그리고 이렇게 우리 둘이 누가 불러서 인터뷰도 하고 있잖아.

-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노하우가 있다면?
: 친구, 네가 좋은 것 좀 얘기해줘. (웃음)

: 각자 자기의 취미생활을 충실하게 해봐요. 거기서 자기의 보람도 느낄 수 있고, 건강도 마찬가지야. 내 좌우명이 그래요. 내가 행복해야 모든 것들이 행복하게 보인다. 그 말에 모든 것이 들어있죠.

: 난 운동도 많이 했어요. 내가 예순아홉에 암 수술도 했었거든. 그래서 일도 다 끊은 거였어. 이전엔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 타는 것도 좋아했거든요. 건강 때문에 포기한 것도 많지만, 마음가짐을 항상 나는 밝게 사니깐. 내가 어려서 살 때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요. 내가 남한테 부담 주는 행동을 하면은 나도 부담이 간다. 절대 남한테 부담 주지 말고 살면 너 역시 행복할 거라고. 지금도 나는 남한테 부담 주는 행동은 하지 않아요. 집에서도 부지런하게. 새벽에 일어나서 옆에 마당도 쓸고, 항시 움직여요. 내 몸이 아플 새도 없도록. 처음 암 선고받았을 때 의사가 영구적인 부작용이 올 수 있다 했는데, 아직 없습니다.
 

공연중인 강환종 어르신 ⓒ 황도연

 
- 인생선배로서 사람들에게 조언해줄 것이 있다면?
: 우리는 엄하게 자라왔던 세대잖아요. 야단도 많이 맞고. 우리는 그게 당연하다 느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무조건 자기 위주로 키우는 것이 답이 아니야. 내가 못 먹고 자랐기에 아쉬움이 있다면 내 아이들에게는 좋은 거 입히고 먹이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먼저 젊은 사람들에게 좋게 대하면 나이를 먹고 그게 전부 돌아와요. 내 딸내미, 손녀 손주들도 나와 자주 밥을 먹거든요. 엊그제에도 고기를 사서 같이 구워 먹기도 하고. 세상이 어떻게 바뀐다고 해도, 나이를 떠나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해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삶을 살고, 내가 사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하길 바라요. 베푸는 사람도, 받아들이는 사람도 서로 이해가 필요해. 내 삶으로 증명할 수 있어. 내가 베풀고 이해하면 젊은 사람도 따라주더라고. 이게 베스트 아니겠어(웃음).
 
일흔이 넘은 두 신사의 노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 삶에 상처와 아픔이 존재하는 이유와 그 가치를 증명하는 '삶'의 노래를 말이다.
덧붙이는 글 돋보기 프로젝트 인터뷰 기사 2편 수어통역사 기사(http://omn.kr/1l5e8)와 이어지는 3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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