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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법사위는 지옥, 나도 그 모습 되는 게 괴로웠다"

[인터뷰①] 불출마 선언한 표창원 의원 "한국정치는 사회갈등 생성소... 후회는 없다"

등록 2019.10.30 15:39수정 2019.10.3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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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 남소연

 
"정치 하기 전에, 국회를 보면서 제가 아내한테 그랬어요. 국회엔 왠지 모르게 음산한 기운이 떠도는 것 같다고. 저 근처도 가기 싫다고. 그렇게 얘기했어요."

2015년, 국회의원이 아닌 인간 표창원의 눈에 비친 국회의 모습이다. 지난 28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그는 약 한 시간의 인터뷰가 끝난 후에 이 이야기를 꺼내놨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이 된 후 '국회의원 표창원' 눈에 비친 국회는 어땠을까. 

"그러다가 정치를 하고, 국회의원이 되면서는 저도 옛날 얘기를 까먹은 거죠. 아내한테 국회를 가리키면서 '이야, 저기 내 직장이야!'라고 했어요. 되게 밝은 표정으로 말했나 봐요. 아내가 절 쳐다보더니 어떻게 사람이 180도 바뀔 수가 있냐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비수로 꽂혔죠. 결국은 나도 변했구나 싶어서."

표창원 의원은 지난 24일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불출마에 대한 질문을 할 때마다, 멋쩍은 듯 크게 웃었다. '지금 심경이 어떠냐'는 물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좀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편안해요. (웃음) 속에 있는 이야기 다 했고. 눌러 참아왔던 것들도 말씀드렸고. 물론 여전히 말리는 분들도 계시지만 전 확고합니다."

그를 '음산한' 국회로 끌어당겼던 건 뭘까. 또 그를 '내 직장'이라던 곳에서 떠나게 만든 건 무엇일까. 먼저 그에게 정치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입당하기 2달 전까지만 해도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이 말을 꺼내자,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도와달라던 문재인 대표 한마디에 정치 시작했지만...


"여러 번 있었죠. 여러 번 있었습니다. (웃음) 2015년 10월 23일까지인가? 그때도 정치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당시 국정원 사건이 큰 문제였죠.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박근혜 정권은 도리어 검찰총장 쫓아내고,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도 그때 좌천당한 거 아닙니까. 와중에 야당은 문제를 제기하고 진실을 파헤치기는 커녕 내부 분열 일어나고 탈당하고, 난리가 아니었죠.

그때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께서 도와달라고 요청해주신 거고... 제가 들어가서 분열과 분당을 막을 수 있다면, 그래서 야당이 제 역할 할 수 있게 된다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국정원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 힘을 보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입당 후에는 "이 자리에 계속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입법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법 하나가 만들어지면 억울한 분들께 엄청난 보탬이 될 수 있고 사회를 바꿀 수도 있는 거니까. 이런 권한이 있다는 건 너무 감사한 일이죠. 그래서 한때는 이 자리에 계속 있어야 내가 더 중요한 일을 하고, 큰 일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돌연 뒤바뀐 감정. 계기가 있었을까? 질문을 건네자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 남소연

 
"특히 법사위가 (계기였죠). 그곳에 앉아있을 때마다 근본적인 질문이 끊임없이 들어요. 내가 왜 이곳에서 이러고 있냐는 거죠. 너무 유치한 (한숨) 말싸움 속에 있는 거예요. 정쟁 속에서는 어떠한 호소도, 진심도 통하지 않죠.

어렵게 만든 법안은 논의조차 되지 않아요. (법사위에서) 하는 것이라고는 어제 뭐가 보도됐는지 떠드는 거죠. 이런 걸 보면서 정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자리에 내가 있어야만 하나.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해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냥 어느 당의 옷을 입고 당파적인 색을 나타내면서 활동하면 같은 결과가 나는 것 아닌가... 이런 게 부질없다는 거죠."


"법사위는 지옥이었다"

이어, 그가 몸담고 있었던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전형적인 지옥'이라고 했다.

"법사위는 지옥이었죠. 지옥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투쟁 상태라는 거죠. 서로 공격하고 짓밟고 올라가는 모습이거든요. 결국 핵심은 그 주변 환경보다도,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에 있어요. 모두가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고 적대시하는 지옥의 모습. 법사위가 이런 모습의 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한국당에서 장관 낙마시키고 표창장 줬다는 게 상징적이지 않습니까. 서로를 적군으로 아는 거죠.

죄송한 말씀이지만, 우리 법사위 위원 중에 충분한 기량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공격하고 방어해야 할 사안은 명백한데, 갖춘 능력은 거기에 뒤따르질 못하는 거죠. 그러면 막말이 나오게 되고, 잇따른 무논리, 적대적 공격과 비하... 심지어 가짜뉴스 같은 허위 사실까지 다 동원되는 거죠."


그렇다면, 법사위 안에서의 본인은 어땠을까?

"저도 그 모습이 되어가는 것 같았죠. 예컨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태도 같은 것. 물론 내용이야 얼마든지 가치가 있고, 비판도 겸허히 수용해야 할 부분이지만 그 과정에서 막말, 모욕, 일방적인 공격들이 많았죠. 그런데 거기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앉아있을 수 없는 거예요. 반박할 건 반박하고, 오해는 바로잡으려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들과 같은 모습이었던 거죠. 소리치고, 공격하는 모습이요.

또, 여당과 야당의 위치가 바뀌면서 소위 말하는 '내로남불' 같다고 느꼈습니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의혹이나 문제가 있다면 언제나 그것을 방어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여당일 때랑 야당일 때 입장이 바뀌는 거죠. 이런 걸 견뎌내야 하는 게 정말 괴로웠습니다."


"'더러운 잠' 사건... 정치 환멸을 느끼게 된 계기"

지금의 그는 국회를, 한국 정치를 어떻게 평가할까. 대답 도중에도 그는 버릇처럼 수차례 한숨을 내셨다.

"긍정적인 측면은 활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거겠지만... 그걸 압도하는 게 보복, 적대, 상대에 대한 몰인격적 언사예요. 품격을 포기해 버린 거죠. 국회 안에서는 상대가 편하게 죽는 걸 바라지 않아요. 최대한 고통을 줘서 끝까지 괴롭게 만들려고 하죠. 당을 떠나 그런 논리가 강하게 자리 잡은 모습들. 이게 한국 정치가 극복해야 할 모습이죠."

'한국 정치를 한 문장으로 정의해주겠느냐'고 묻자, 그는 두 가지의 답을 내놨다.

"좀비들의 전쟁터.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것 같아서요. 이것보다는 한국 정치는 사회 갈등의 생성소이자 공장이다. 이게 조금 더 낫겠네요."

내년 5월을 끝으로 3년 여 동안의 임기를 마치게 될 표창원 의원.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그는 '아픈 기억'을 언급했다. 2017년 1월 논란됐던 '더러운 잠'에 대한 것이다.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와 마네의 '올랭피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풍자 작품이다. 작품에서 박근혜는 나체로 누워 있는 여성으로 묘사됐다. 

"아픈 기억이죠. 2017년 1월에 있었던 전시회...(한숨) 사실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요. 당시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던 예술인 분들이 저를 찾아오셔서 국회에서 전시회를 열고 싶다고, 공간 빌리는데 협조해 달라고 하셨죠.

제 성격상 거절을 잘 못해요. 심지어 주최하시는 분들이 약자이자 공권력의 피해자셨으니까 도와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컸죠. 그래서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드린 거예요. 그런데 그때 문제가 됐던 게 고전작품인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 한 그림이었죠. 당시 작품에 대한 설명은 들었지만, '예술의 자유' 영역에 포함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작품이 게재된 후 파장은 상당했다. 여성단체 등에서는 "헌정질서를 파괴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성적대상화나 여성혐오로 표현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의 한 회원은 인터넷 카페에 표창원 의원 및 그의 아내 얼굴을 합성한 그림을 게재했다. '더러운 잠'에서 박근혜 대통령 얼굴 부분에 표창원 의원 아내 얼굴을, 최순실씨 얼굴 부분에 표창원 의원 얼굴을 합성한 형태다.

"논란이 커지면서 제가 그 그림을 그렸다, 의뢰했다, 이런 식의 보도까지 나왔죠. 추측 보도의 파장은 상당합니다. 아무리 정정해도 막을 수가 없어요. 제가 불출마 선언 한 이후에도 들어오는 공격의 상당수가 저 내용이에요. 저야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지만 제 가족이 이런 걸 겪었을 때 너무 힘들어했죠. 제 아내는 정신과 치료도 받아야 했고요. 이런 과정도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된 계기 중 하나였죠."

법사위, 20대 국회, 논란이 됐던 사건까지. 힘들었던 경험들을 읊었지만, 그는 "국회의원이었기에 가능했던 순간들도 있었다"며 "그런 건 너무 감사하게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예컨대 당시 제가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서명하지 않았던 의원들의 명단을 공개한 일도 있었고... 그 이후 2016년 12월께 제가 본회의 장에서 했던 5분 자유발언도 그렇고. 파장이 상당했죠. 당시 제가 고소도 받고, 비난과 지지 모두 받았지만...(웃음) 그래도 탄핵 정국에 있던 일들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요. 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했던 모든 경험들. 당선되자마자 처음으로 백남기 농민 병실을 찾아갔던 일도... 힘없고 약한 분들을 위해 했던 일들. 국회의원이었기에 가능했던 순간들 모두 감사한 기억들이죠."

아쉬움은 없었을까?

"국회의원이라는 힘이 있었음에도 입법화 추진하지 못했던 것들, 예컨대 해인이법(어린이안전기본법), 데이트폭력방지법안 등이 아쉬움으로 남죠. 하지만 20대 국회 마지막까지는 이 아쉬움 털어버릴 수 있도록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다할 생각입니다. 또, 제가 불출마하기 때문에 오히려 처리되지 못한 법안에 대해 힘을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으니 야당 의원들께도 더 호소드릴 수 있을 거고요."

그는 "정치에 들어오기 전, 그에 가까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떠난다는 생각을 하면서 국회를 보니까, 또 다른 느낌이 들어요. 편견에서 비롯된 음산한 느낌도, 소속감도, 불만도 딱히 없어요. 해소가 된 것 같아요. 후회는 없습니다. 이런 경험 자체가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고... 그런 것 같아요."
#표창원 #불출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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