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제도나 사회와 접점을 처음 맺거나 드러날 때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장애여성, 특히 발달장애여성의 경우에 사회적으로 드러났던 것이 성폭력 피해자의 위치였다. 경찰, 검찰의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장애 특성에 대해 고민하고 별도의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까지 장애여성 성폭력상담소를 중심으로, 장애여성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온 운동의 역할이 있었다.
장애여성공감에서는 부설센터인 장애여성 성폭력상담소,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의 현장을 비롯한 성폭력 상담, 독립상담, 활동보조 관련 상담을 진행해왔다. 최근에는 인권상담 현장에 집중하면서 장애여성들이 친밀한 관계에서 겪는 폭력이나 인권침해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가정폭력/성폭력 사건이나 경제적 착취/성폭력 사건을 복합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만큼 복합적인 피해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장애여성들이 많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 피해자의 위치를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 장애여성공감은 회원 활동이나 자조 모임 등에서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도록 계속 실천하고 있고 이런 활동을 통해 힘을 갖는 변화들은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진행된다. 이런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사자들(혹은 조력자들)의 변화만으로 피해자의 위치가 전환되지는 않는다. 장애여성공감에서는 작년부터 인권상담을 본격화해서 진행하면서 '피해'라는 프레임, '피해자'라는 위치를 벗어나서 장애여성의 삶의 경험을 복잡한 맥락에서 읽고자 노력하며 동시에 사회가 그렇게 변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제도화된 지원체계 안에서 활동가의 역할
장애여성 인권상담 현장은 크게 보면 젠더 폭력 지원체계와 장애인 권익옹호 지원체계 양쪽과 관련되어 있다. 젠더 폭력 지원 현장은 여성운동/반성폭력 단체들이 오랫동안 분투하면서 제도를 바꿔온 흐름이 있고 접근하기 위한 정보가 널리 확산되어있지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장애여성공감에 역으로 연계되는 경향은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도 장애를 가진 여성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난관과 고민, 갈등을 적극적으로 나누려고 하는 다른 단체의 활동가들이 있고, 이들과 만날 때 장애여성 인권상담의 현장도 확장될 수 있다.
장애인 인권단체들은 오래전부터 차별 상담을 진행해왔고, 2009년부터 시행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영향으로 차별상담 전화 운영을 본격화하고 권익옹호 활동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2017년부터 전국에 장애인 권익옹호기관이 설치, 운영되고 있지만 공적인 지원체계에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진입하기는 난관이 많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더 그렇고, 장애인 권익옹호 기관에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신고하는 비율은 낮은 편이다. 장애여성공감의 인권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내담자들을 권익옹호 기관에 연계한다고 해도 지원 과정에서 당사자가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계속 개입하고 조력해야 할 필요성이 있고 그 과정에서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니터링하고 있다. 지역의 많은 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 역시 주민센터나 구청의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고 공적인 지원을 지속해서 추동하고 있다.
장애 여성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외부 기관이나 단체와 만날 수밖에 없다. 장애인 영역은 장애인 권익옹호기관,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장애인복지관, 주민센터와 구청 등 지원체계나 전달체계가 많은 상태에서 삶이 파편화되지 않도록 긴장감을 가지고 협력해야 할 상황들을 마주한다. 운동이 없으면 제도가 만들어지지도 않고,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상담 현장을 인권 활동의 영역에서 고민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 그 과정에서 소수자의 삶이 제도 안에 묻히거나 묶이지 않도록 실천해나가는 것도 활동가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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