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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당 못채우면 강퇴... 참 빠른 '로켓배송'의 탄생

[인터뷰] 쿠팡 이천 덕평 물류센터 피커 노동자 K씨

등록 2019.11.25 08:20수정 2019.11.2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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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지난 2018년에 12개였던 물류센터를 24개로 확장했다. 쿠팡의 대표 서비스인 '로켓배송'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2014년 처음 시행된 로켓배송은 자정까지 주문 시 고객에게 상품이 익일 배송되는 시스템이다. 이 서비스의 확장판인 로켓프레시는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로, 자정까지 주문하면 익일 오전 7시 전까지 고객의 집으로 배송해준다.

현재 쿠팡에서 로켓배송이 적용되는 상품의 개수는 약 500만 종이다. 그렇다면 이 많은 상품 중에서 내가 주문한 물건들은 어떻게 취합되어 바로 다음 날에 집 앞에 도착하는 것일까?

물류센터에 대한 흔한 고정관념 중 하나는 주문한 상품이 집에 오기까지 주로 남성들이 일한다는 생각이다. 그 이유는 상품 전달이라는 마지막 단계인 배송 업무를 남성이 주로 한다는 점과 물류센터를 주로 힘을 많이 사용하는 상하차 작업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하차 작업은 물류센터의 여러 업무 중 일부일 뿐이고, 성별을 살펴봤을 때 남성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이 사실을 간과하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존재 자체를 지워버릴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약 500만 개의 다양한 상품 중에서 내가 고른 물건이 우리 집까지 도착하는 데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물류센터 출고파트의 한 가지 업무인 집품을 담당하는 피커(Picker) 노동자의 노동을 살펴보았다. 인터뷰는 지난 10월 24일 평택에서 진행됐다.

피커의 노동
  

쿠팡의 물류센터. 이 넓은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가 제기되어야 한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쿠팡은 24개 물류센터의 면적이 총 37만 평이라고 발표했다. 개당 1.5만 평에 달하는 크기다. 물류센터 업무는 크게 입고(IB), 출고(OB), 허브(HUB)로 나뉜다. 각 업무 파트 안에서도 세세하게 작업이 나뉘어 있다.

먼저 허브 파트는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상·하차 작업을 담당한다. 입고 파트는 크게 진열, 재고 확인 등을 하며 출고 파트는 이렇게 진열된 상품 중에서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찾아서 담는 피킹 작업과 피킹해온 상품들을 주문별로 포장하는 패킹 작업을 한다.


여기서 이 노동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노동자가 배정된 구역은 나뉘어 있더라도 이 모든 업무가 수행되는 공간은 1만 평이 훌쩍 넘는 거대한 공간이다. 이렇게 큰 공간에서 물건을 진열하고, 물건을 찾아서 담고, 포장(과 그에 수반되는 보조적인 작업을)하는 모든 노동과정은 매우 고되고 체력 소모가 심하다.

인터뷰이인 K씨가 주로 일해온 이천 덕평 물류센터는 총 4층 건물이다. 각 층에는 높이 2~3m 되는 진열대가 쭉 늘어서 있다.


먼저 물건이 물류센터에 들어오면 입고 파트에서 진열을 담당하는 사원들이 진열대에 물건을 무작위로 쭉 진열한다. 일반적으로 물류센터 안에서 물건의 분류에 따라 구역과 위치가 설정되어 있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쿠팡 물류 시스템은 랜덤 스토우(Random Stow) 방식이다. 모든 상품을 진열대에 무작위로 진열한다.

대신 피커 노동자에게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개인용 정보 단말기)를 통해 본인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상품 위치를 알려준다. 광범위한 공간에서는 각 물건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하는 것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을 짜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기업인 아마존의 물류창고 운영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피커들은 PDA를 들고 다니면서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찾아요. PDA는 자신의 현재 위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상품의 위치를 알려줘요. 그걸 보고 피커들이 물건들을 찾는 거죠. 피커들은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토트 박스라고 하는 플라스틱 박스에 물건을 담아요. 물건들이 카트에 어느 정도 차면 포장라인으로 가는 레일에 물건을 올립니다. 이 작업이 계속 반복되는 거죠."

1명의 피커가 카트를 끌고 다니며 물건을 담는데, 시간당 물건 담기를 40~50개 정도 하는 사람부터 60~70개까지 하는 사람까지 처리 개수는 저마다 다르다. 주문 받은 물건의 무게와 물건이 있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회사는 1인당 처리해야 할 할당량을 정하지 않고 무조건 빨리 많은 물건을 처리하라고 한다. 

37만 평 채우는 당일 알바들

알바몬이나 알바천국 같은 일자리 중개 사이트에 들어가면 하루에도 수십 개의 물류센터 구인 공고가 올라온다. 하루나 일주일 단위로 일할 사람을 끊임없이 구하기 때문이다. 이 일자리는 하루 혹은 원하는 기간만큼만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다는 점이나 임금이 익일 지급 혹은 주급으로 지급된다는 점 때문에 많은 이가 선호한다. 또 매일 사람을 구한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일자리이기도 하다.
  
이렇게 당일 아르바이트, 즉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3개월, 6개월, 9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는 계약직 사원들도 있다. 물류센터 안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는 정규직, 계약직, 일용직으로 총 3가지다.

고용 형태의 비율은 물류센터마다 차이가 있다. 어떤 센터는 대다수가 일용직으로 채워지고, 어떤 센터는 주로 계약직 사원들의 교대근무를 통해 운영된다. 오픈 한 지 얼마 안 된 신생 물류센터가 일용직 노동자들을 많이 고용하고, 시간이 갈수록 그 자리를 계약직 사원들이 채운다.

"당일 아르바이트의 임금은 딱 최저시급인 8350원에 맞춰져 있는데 사실 계약직과 임금 차이는 거의 없어요. 최저시급보다 80원 많은 9030원 정도 받아요. 당일이나 주급으로 일을 하면 자기 스케줄에 맞춰 시간대와 요일을 조정할 수 있어요. 그런데 계약직으로 근무하면 회사가 정한 스케줄대로 교대 근무를 해야 해요. 그래서 직업으로 이 일을 하더라도 일부러 일용직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인터뷰이가 일한 쿠팡의 이천 덕평 물류센터는 3개 조가 교대로 근무를 한다. 중간에 식사 시간이 1시간 주어지기 때문에 총 노동 시간은 8시간이다. 한 물류센터에서 하루 동안 근무하는 총인원은 약 1천 명 이상으로 센터별로 상이하다. 그 인원 중 다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1일, 또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과 매일 출근하지만 고용 형태는 일용직인 '당일 아르바이트'들이다.

자연스레 단기로 고용되는 수많은 사람의 안전과 건강이 어떻게 지켜지는지 의문이 들었다. 또 노동자의 건강권이라는 측면에서 '당일 아르바이트'들이 채우는 총노동량을 관리하는 장치가 어떤 식으로 각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올리고 감시하는지도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UPH 통한 노동강도 압박과 노동 감시
  

물류센터는 작업속도의 지표만 있을 뿐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가 있는 한 사람으로서 노동자는 없다. ⓒ Pixabay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문제는 상호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노동강도에 대한 압박 속에 어떻게 안전을 지키는지도 주요한 문제다. 물류센터는 그날마다 처리해야 하는 총물량이 정해져 있고, 심지어 이 물량을 '로켓배송' 서비스 등 매우 촘촘하게 짜인 시간 속에서 관리해야 한다. 이때 이 일들을 실행하는 인력은 매일 매일 바뀌기 때문에 기업에 노동강도의 유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여기서 물류센터의 공간도 중요하다. 드넓은 물류센터를 활보하며 물건을 담는 피커들의 작업 속도를 관리자가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리자는 PDA를 이용해 노동자들이 시간 당 카트에 물건을 담는 개수를 측정한다. 이 개수를 UPH(unit per hour 시간당 생산 수)라고 하는데, 각 노동자의 UPH를 철저하게 유지하게 해 노동강도를 관리한다. UPH가 떨어지면 전체 방송으로 압박이 들어오기 때문에 피커들에게 UPH 유지 및 향상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물론 이 압박 및 관리의 방식도 개별 물류센터를 관리하는 인력업체의 매뉴얼에 따라서 각기 다르다.

"들어오는 주문을 현장에서는 '할당'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할당을 시간당 처리하는 개수를 UPH라고 불러요. 평균 UPH는 물류센터마다 다르게 지정돼요. 예를 들어 UPH가 60이라고 하면 무조건 그만큼은 채워야 해요. 만약에 그만큼을 못 채우면 방송이 나와요. 'OOO 사원님, UPH 향상 안 시키면 강제 퇴근시키겠습니다' 이렇게요.

그렇게 큰 공간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다 듣고 있는 곳에서 방송을 틀어대면 정말 모욕감이 느껴져요. 방송이 몇 번 나와도 UPH가 늘어나지 않으면 관리자가 사무실로 오라는 방송을 합니다. 관리자는 정규직 사원이거나 층마다 있는 '반장'이기도 해요. 사무실로 가면 언성을 높이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해요. 피커 일을 하는 사람들은 UPH라는 소리만 들어도 다들 싫어하죠."


UPH가 떨어지는 일용직 사원들은 쿠팡에서 관리하는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다음에 일할 기회를 박탈 당한다. 계약직 사원은 계약을 3, 6, 9개월 단위로 하기 때문에 UPH가 떨어지면 재계약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UPH 상승을 위해 노력한다. 물류센터에는 끊임없이 UPH를 올리라는 방송이 울려 퍼지고, 이 작업속도의 지표만 있을 뿐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가 있는 한 사람으로서 노동자는 없는 것이다.

"피커 일은 계속 걷고, 이동하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물건을 찾으러 넓은 곳을 돌아다니니 나중에는 다리가 너무 아파서 걷기 힘들 정도예요. 근데 이렇게 개인 면담을 하자는 방송이 나오면 조바심이 많이 나요. 그래서 사람들이 카트를 끌고 빠른 속도로 뛰다가 카트끼리 부딪치거나 카트로 사람을 들이박는 경우도 있어요. 또 사다리를 타고 진열대를 올라가 물건을 꺼내는데 이 사다리 개수가 부족하고, UPH 압박은 심하고 하니까 사람들이 사다리 없이 진열대를 타다가 떨어져서 크게 다치기도 하고요."

물류센터의 노동환경과 노동시간

피커의 주된 업무는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물건들을 찾아 카트에 담고 포장 라인으로 옮기는 것이다. 끊임없이 걷고 물건을 꺼내야 하므로 다리 부종이나 통증, 각종 근골격계질환은 흔한 일이다. 또한 물류센터별로 식품을 다루는 곳은 저온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작업복을 입더라도 추위에 떨면서 일하고, 폭염에는 냉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탈수하는 일도 발생한다. 그렇다면 작업의 중간중간 휴식은 보장되는지, 휴게공간은 갖춰져 있는지 물었다.

"무급이긴 하지만 점심시간이자 휴식 시간이 1시간 주어져요. 그런데 물류센터가 대규모 인원이 있는 곳이잖아요. 식당 규모는 크지만 배식 줄 자체가 워낙 길어서 20분을 줄만 선 적도 있어요. 그래서 사실상 쉴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근무 중에는 UPH 때문에 짬 없이 일해야 하고요."
  

지난 4월 13일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촉구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 연합뉴스

 
한편 대부분의 물류센터는 해당 지역의 외곽에 있다. 수도권의 경우에는 사당, 노량진, 안산, 오산, 부평, 평택 등지에서 해당 물류센터까지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물류센터에 도착하기까지 셔틀버스 운행 지점에서부터 짧게는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왕복 3시간이라는 이동 시간을 포함해 노동자들은 총 12시간의 근무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지급되는 노동시간은 식사 시간을 제외한 8시간이지만, 최소한으로 잡아도 하루에 반 이상이 노동에 소비되는 시간이다.

갈수록 각종 배송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는 사회에서, 그 배송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안전할 권리와 쉴 권리, 노동시간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특히 이 노동자들의 다수가 일용직 노동자다. 계약직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3, 6, 9개월 단위의 쪼개기 계약으로 고용계약이 이루어진다.

일용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자유롭게 근무 스케줄을 짤 수 있다는 점에서 피커 일을 선택하곤 한다. 하지만 쿠팡 셔틀버스를 탄 시점부터 하루에 12시간 가까이 보내는 상황에서 노동의 자율성이란 과연 어떤 걸까? 다양한 물건을 빠르게 배송해주는 서비스들은 UPH 향상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지만, 이 빠른 속도 속에서 일하는 사람의 권리는 축소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지안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물류센터피커 #다양한노동이야기 #쿠팡 #일용직노동자 #당일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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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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