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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혐오', 정당화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이주민센터친구 수요법률살롱 시즌2

등록 2019.11.26 11:16수정 2019.11.2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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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환 이주민센터친구 대표 ⓒ 이주민센터친구



필자는 '이주민센터 친구'의 활동가다. 한국사회를 찾아온 이주민(이주노동, 혼인이주, 귀화, 유학, 사업 등을 위해 한국사회로 이동하여 중장기간 동안 거주하며 생활하고 있는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환대하고, 그들이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으면서 일하고 살아가는 평화, 인권, 공존의 사회를 꿈꾸며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2018년 11월 기준으로 한국사회의 이주민 숫자는 200만명을 넘어섰다. 이제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현실이 되었고 어떻게 이들을 구성원으로 맞아들이고 어떻게 함께 사는 사회를 제도화할 것인지는 당면하고 중요한 국가적, 사회적인 의제가 되었다. 이주민 유입의 증가는 시대적 추세로 400-500만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최근 우려되는 상황은 이주민에 대한 혐오 발언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점이다. 이주민의 숫자가 많지 않을 때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기에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200만명이 넘는 이주민이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 최근에 이르러서는 더 두드러지게 이주민 혐오 발언이 커지고 있다. "노동시장을 침탈하고 있다. 복지 재정 지원을 하면 안된다. 범죄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주민이 일반적인 소수자 집단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실체이자 세력으로서 한국사회에서 존재를 드러내고 경쟁하고 경합하기 시작하였다는 징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국도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이민사회의 외형과 실질을 가지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이주민들의 한국 정착은 한국 출신 교포들이 구미와 남미 등으로 노동, 혼인 등 각종 이유로 이주하여 그 곳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 비추어 보더라도 유심히 지켜보고 잘 대응하여야 할 중요한 사회적 현안인 것이다.

이주민 혐오는 우리 일상에 침투하여 있는 듯 하다. 필자가 대림동 친구센터에서 인근 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들은 "다문화 애들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세요, 싫어요"라고 강하게 혐오를 드러냈다. 왜 그러냐고 물었으나 특별한 답을 하지는 못했다. 그냥 싫다고 했다.

아마도 부모나 사회의 영향일 것이다. 보고 들은 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이들이기에. 필자는 학생들에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봐라. 힘센 친구가 너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대놓고 너가 싫고 더럽고 학교에서 안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다닌다면 너의 마음은 어떨 것 같으냐"라는 취지로 대화를 나누었다.


후일담으로 선생님께 듣기로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역지사지를 할 수 있었던 우리 친구들은 강의를 마친 후에 느낀 바가 있어서 학교에 돌아가서 이주민 친구들에 대한 차별을 하지 말자고 하는 캠페인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고 한다. 기특한 학생들이다. 여기서 드러나듯이 혐오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무의식과 일상적인 가치관과 생각에 침투해 있다. 어지간하게 의식을 집중하여 반추하지 않으면 나의 혐오가 정당하다고 판단하기 쉽다. 일반적인 인터넷상에서의 혐오 표현은 익히 알고 있듯이 그 정도가 매우 심하고 아이들처럼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토론을 통해 시정될 기회도 별로 없다. 어떻게 해야 혐오를 줄이고 상호 이해와 공존의 가치관이 더 확산될 것인가?

이주민 혐오가 우리 일상에 침투하는 방식은 문화예술 분야의 매체를 통해서 이루어지기에 더 은밀하고 저항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친구 센터에서 민사소송을 하고 있는 영화 "청년경찰"은 대림동과 조선족 동포를 범죄 소굴과 범죄자로 묘사하면서 대림동 주민들과 중국에서 온 조선족 동포들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 

조선족 동포들은 영화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면서 저항을 했고 한국의 언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시민들의 의식과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뉴스,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 미디어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이주민 혐오 표현들은 그 파급력이 그 어떤 것보다 크고 위험하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가지는 인권 감수성과 자신들의 발언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게 제기되는 이유이다. 소수 집단인 이주민을 자본의 이익과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희화화하는 것은 그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매우 잔인한 것이다. 그 누구에게 타인을 폄훼하여 그로 인하여 이익을 얻을 권한이 부여될 수 있다는 말인가?

혹자는 영화에서의 이주민 혐오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므로 자유롭게 인정되어야 한다고 한다. 다원주의를 근거로 들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기본권이므로 당연히 폭넓게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소수자의 인권과 인격을 침해하는 부당한 혐오가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정당화되고 용인될 수 없다. 헌법상 기본권은 다른 기본권에 의하여 제한을 받고, 한계를 가진다.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이주민 소수자의 인격권이 침해되고 부당하게 모욕적인 표현으로 혐오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난다. 기본권의 충돌시 그 보호법익을 상호 형량하여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헌법학의 이치이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고 그 본질적 부분에 해당하는 영역에 대한 혐오는 그 어떤 표현의 자유로도 인정되어서는 안된다.

이주민은 사회적으로 소수자이므로 이주민에 대한 혐오발언에 대한 평가는 "원천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권력 관계를 전제로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표현과 발언이 우월적 지위에 있는 집단 혹은 사람에 의해서 수적으로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지위나 영향력에 있어서 소수자인 사람과 집단을 상대로 혹은 그들을 소재로 하여 행사될 때는 구조와 권력관계가 소수자인 이주민 당사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그 정당성이 판단되어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강자의 혐오 표현을 정당화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언젠가는 그로 인하여 피해를 본 소수자 집단의 분노가 폭발하여 더 큰 사회적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단언컨대 이주민 당사자에게 수치심을 주고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혐오를 정당화할만한 합리적이고 정당한 이유는 없다. 힘있는 다수 집단의 혐오로 인하여 피해를 입는 소수집단의 권리와 명예, 인격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 사회와 법체계의 근본 정신이다.

문제는 혐오 표현을 제어하고 금지할 사회적 제도가 미진하다는 것이다. 이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적 혐오 발언을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법률과 제도가 없기 때문에 혐오가 일상화되더라도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언행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형사상 모욕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정하여만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그래서 이주민을 포함한 소수자들에 대한 합리적 이유없는 차별을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십수년간 진행중이지만 종교적 이유로 인한 반대 등으로 법제정에 애로를 겪고 있다.

보편적 인권의 입장에서 혐오를 금지하고 상호존중하는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법제도적으로 부당한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는 일반적인 법률이 반드시 필요하다. 법제정에 반대하는 분들과의 합리적 대화와 토론도 필요하고 차별금지와 혐오 발언의 부당성에 대한 사회적 캠페인과 운동도 절실하다. 이주민 당사자와 한국의 시민들은 함께 힘을 모아 부당한 혐오의 감소와 금지를 위하여 행동하여야 한다. 부당한 이주민 혐오를 정당화할 수 있는 어떤 합리적인 이유도 없다.
 
#이주민센터친구 #혐오와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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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인권/공존의 가치를 위해 이주인권분야에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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