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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검사의 '성공한 쿠데타' 그 후

[대한민국 검찰실록 7] 전두환 면죄부 발행

등록 2019.11.26 08:29수정 2019.11.2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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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든 집단이든 남의 견제를 받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가능성과 더불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발언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나중에는 세상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하고 황당한 발상까지 내비치게 되는 수가 있다.

대한민국 검찰이 그런 위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아니 이미 빠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많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995년에 전두환·노태우의 5·18 광주 학살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린 사건이다. 세상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부정해서도 안 되는 5·18 학살에 대해, 검찰이 독특하고 황당한 논리로 마치 중세유럽 교황청처럼 면죄부를 부여한 사건이었다.

불법인 듯 불법 아닌 불법 같은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방검찰청 공안1부는 1995년 7월 18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5·18을 촉발한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부터 시작해서 그해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 사임에 이르는 과정을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정권 장악 과정으로 규정했다. 수사 결과의 요약문을 실은 1995년 7월 19일자 <조선일보> 기사 '계엄확대, 전(全) 사령관의 정국 장악 의도'에 이런 부분이 있다.
 
"비상계엄 확대, 정치인 체포·연금, 정치활동 금지, 국보위 설치·운영 등 문제가 되고 있는 일련의 조치들은 전 보안사령관이 최 대통령의 사전 지시 없이 그의 주도 하에 기획·입안하여 추진한 조치들로, 이른바 정권 창출의 준비 또는 기초행위로서의 실질도 가지고 있다." 

대통령 재가도 없이 비상계엄을 확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위법행위 또는 불법행위로 규정하지 않고 '정권 창출의 준비 또는 기초행위'라고 규정한 것이다. 요약문에 이런 부분도 있다.
 
"대통령의 해외순방 직후 계엄확대를 심의하기 위해 열린 국무회의장에 집총한 병력을 대거 배치한 것은 대통령이나 국무위원들에게 의사를 강요했다고 할 수는 없어도, 군이 기존 관료세력을 제압하고 이를 관철, 정국을 주도하려 했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결국 전 보안사령관은 이를 바탕으로 집권에 이른 사실에 비추어 향후 정국을 주도하여 장악할 의도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 

계엄확대를 승인하기 위한 국무회의장에 무장병력을 배치한 것을 두고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강요하기 위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군이 행정부를 제압하고 정국을 주도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규정했다. 대통령·국무위원에게 강요하는 행위와 행정부를 제압하는 행위가 무엇이 다른지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전두환이 잘못했다는 건지, 시민들이 잘못했다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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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1995년 12월 2일 연희동 자택 앞에서 이른바 골목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군이 대통령의 승인 없이 행정부를 제압하는 행위를 흔히 쿠데타라고 부른다. 그런데 검찰은 이를 '집권과 정국 주도를 위한 행위'로 평가했다. 사리에 어긋나는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또 광주 학살에 대해서도, 시민들이 잘못했다는 건지 전두환이 잘못했다는 건지 모호하게 기술했다.
 
"공수부대 출동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일어났고, 동료 부대원들이 시위대가 던진 돌에 맞아 부상을 입자 강력한 공격적 진압과 체포 위주로 작전을 하면서 남녀노소나 시위 가담 여부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가격하거나 체포하여 부상자가 발생하고, 심지어 연행자들을 반라의 상태로 만들어 기합을 주기까지 하여 극도의 분노감과 적개심을 야기했다." 

'공수부대가 출동했는데도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대가 던진 돌에 다쳤기 때문에 군인들이 공격적으로 진압·체포했다'고 했다. 거기다가 7공수여단 부대원의 40%가 호남 출신이라는 점까지 내세우며, 진압작전이 나쁜 동기에서 비롯된 게 아닌 양 발표했다.
 
"전남대 등 3개 대학에 7공수여단 2개 대대 병력을 배치한 것은 비상계엄 확대 선포의 일환이었고, 특히 7공수여단의 경우 원 주둔지가 전북 금마이며 33대대장을 포함하여 부대원 40%가 전남북 출신인 점을 감안하면 특별한 의도 아래 시행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7공수여단 부대원 40%가 호남 출신이므로 전두환이 지역감정을 갖고 벌인 학살은 아니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공수부대가 무차별 진압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불필요한 주장으로 본질을 흐렸던 것이다.

이 모든 행위가 정권 장악을 위한 행위였으므로 전두환·노태우를 비롯한 피고소·고발인 58명을 재판에 넘길 수 없다는 게 서울지검 공안1부의 발표였다. 검찰이 판단할 일도 아니고 사법적으로 처벌할 일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 같은 자신들의 처분을 합리화하고자 검찰이 내세운 논리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두환의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요구되는 통치행위이고, 그에 기초해서 제5공화국 헌법이 제정되고 대한민국 국정이 운영돼 왔으므로, 이제 와서 사법적 잣대를 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광주시민들과 5·18 단체들은 물론이고 전 국민들은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때부터 국민들이 소리 높여 외쳤던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에 대해 검찰이 이런 엉뚱한 답변을 내놨기 때문이다.

5공 헌법 효력 유지 운운... 국민 앞 주제넘는 태도

논란이 거세지자 3일 뒤인 21일, 주임검사인 장윤석 서울지검 공안1부장이 간담회를 열어 검찰의 입장을 해명했다. 과거에 공수특전단에서 군복무했고 18년 뒤인 2013년 대한복싱협회장에 취임하게 될 장윤석 부장검사는, 1995년 7월 22일자 <한겨레> 기사 '5.18 공소권 없음 장윤석 주임검사 1문 1답'에 따르면, "국민의 법 감정이 이번 결론에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면서 자신은 법률가로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국민의 법 감정에는 위배되지만 법률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는 설명을 듣고 어느 기자가 "성공한 내란은 처벌하지 못한다는 법조문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자, 장윤석은 그렇지 않다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절대로 법률적인 판단이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정의론자들은 납득할 수 없는 명제를 법률가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장윤석은 '검찰이 전두환 등을 단죄하면, 전두환 정권이 제정한 1980년 헌법의 효력에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5공 헌법의 효력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런 논란이 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고 답변했다.

국민들은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전두환 정권을 단죄하고 그해 10월 29일 헌법개정을 통해 5공 헌법의 효력을 소멸시켰다. 그랬는데도 검찰이 나서서 5공 헌법의 효력 유지를 운운했던 것이다. 국민 앞에서 주제넘는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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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0일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마지막 날인 10일 마무리 발언을 마친 후 장윤석 인사청문특위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 남소연

 
장윤석은 그 뒤에는 다른 일들로 언론보도에 오르내렸다. 2003년 3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이 '검사와의 대화'에서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말한 다음 달, 장윤석은 강금실 법무부장관의 인사개혁에 반발해 사표를 던졌다. 그 길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이듬해인 2004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고향인 경북 영주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그곳에서 3번 연속 당선됐다.

그는 2015년 3월 5일에는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를 주장하며 세종문화회관에서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를 칼로 공격한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를 현장에서 제압했다. 언론에서는 공수특전단 및 복싱협회장 경력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견제 받지 않는 검찰의 황당한 세계관

전두환 등에 대한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민의 분노를 감당하지 못한 김영삼 정부는 그해 12월 3일 전두환을 고향인 경남 합천에서 체포해 재판에 넘겼다.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의 주역이라 처벌할 수 없다'고 했던 전두환은 아침 6시 34분경 잠옷 바람으로 체포돼 서울로 끌려갔다. 결국 이렇게 될 일을, 검찰이 황당하고 조악한 논리를 만들어내서 5·18 진상규명을 무산시키려 했던 것이다.

결국 실패하기는 했지만 1995년에 검찰이 보여준 모습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기관이 사실상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게 될 경우에 나라가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 누구의 법적 견제도 받지 않는 검찰이 황당한 세계관과 논리로 전두환에게 면죄부를 발부한 이 사건은 검찰에 대한 견제가 얼마나 긴요한지를 웅변한다. 검찰의 권한을 경찰에 상당부분 넘기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통해 검찰을 견제하는 일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반영하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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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저서: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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