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청소녀는 무얼 먹고 사나?

등록 2019.11.26 11:59수정 2019.11.2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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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는 청소녀 쉼터에는 보육원에서 자란 청소녀도 있고, 어릴적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가해자이기도 하여 원수지간이 된 청소녀가 있습니다. 나쁜 엄마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잃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소녀도 있습니다. 재혼 가정과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면서 갈등과 혼란을 거듭하다가 집을 나와 머무는 청소녀도 있습니다.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청소녀들의 가난과 방황 속에 오래 전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기억과 느낌을 지우지 못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들이 버림받았다고 우울감에 빠지는 이유는 부재된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하거나 희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들에게 행복한 삶을 빼앗고 불행한 마음을 채운 사람들이 오래 전 부모들일까요. 저는 그들 부모의 사정을 알지 못해서 답하기 힘듭니다.

가장 속상한 것은 청소녀들이 꿈이 없다고 얘기할 때입니다. 가난한 청소녀들은 솔직하고 맑으며 에너지가 넘치는데 그녀들이 갖고 싶은 꿈은 아직 없습니다. 시간을 두고 다시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릴 적 꿈이 있었습니다. 그녀들의 꿈과 희망을 가로 막은 것은 지금 그녀들의 마음이 행복하지 않으며 소박한 꿈에 다가가는 길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기나긴 삶이 남아 있을 이들은 왜 이렇게 일찍 절망하고 있을까요? 누가 가난한 청소녀들에게 절망을 가르쳤을까요?

꿈을 가질 수 없는 청소녀들은 무얼 먹고 살 수 있을까요. 억압되는 것이 싫으나 살 길이 막막한 이들은 무얼 먹고 살 수 있나요. 거주지가 불안정하고 학교에서는 배울 것이 없는 청소녀들은 지금 무얼 먹고 살고 있을까요.

나와 다른 아이들과도 어울려 지내기보다 견제하고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무리를 이루는 것만을 배운다면 그녀들은 이 사회에서 어떤식으로 살아남게 될까요. 친권자가 없음에도 일자리를 구하려면 친권자나 후견인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그들은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전에 장벽에 부딪칩니다.

청소년 노동이 함부로 대해지고 착취당하는 사회에서 그들은 어떤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나요. 부모의 사랑을 기억해내기가 힘들거나 원망할 부모라도 갖고 싶은 아이들은 어떤 마음을 키우며 살 수 있을까요. 원망스러운 부모로 받은 상처는 어떻게 보살펴져서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상처가 된 부모 부재나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숱한 시간들은 그들의 꿈을 갉아 먹고 지연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그녀들에게 부모로부터 받을 것조차 하나도 없다면 어떻게 희망을 가지라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가난을 이해하려는 것은 가난으로 인한 사회적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청소녀들이 생계를 유지할 안전한 일자리도 편안한 주거지도 찾기 힘든 형편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반면 그녀들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가난한 청소녀들의 삶은 실상 우리 사회 빈곤 문제의 단면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빈민들은 무얼 먹고 살았습니까. 불합리한 사회에 적응하고 노동력을 착실히 상납당하며 존재자체가 부정되며 꿈을 잃으며 살아야 하지 않았습니까. 초중고 12년 간 교육다운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획일적 주입식 교육의 피폭자가 아닙니까. 가정 환경이나 성적 혹은 생각의 다름으로 인해 재단되고 배제되며 살아야 하지 않았습니까.

꿈을 키우는 좋은 스승을 가져보지 못하고 살지 않았습니까. 기회와 꿈보다는 현상유지를 목적으로 살아야 하지 않았습니까.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부모부재의 결핍감을 반복 학습하여 살아야 하지 않았습니까. 빼앗기고 배제당하고 살아야 하지 않았습니까. 어른들을 향했지만 사실은 이 사회를 향했던 청소녀들의 오래된 원망과 분노에 대해서 책임있는 이들로부터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몇 달 전 무연고 장례식 참석 후 쪽방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울 때 한 분이 슬쩍 끼여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단골로 가는 식당 어린 강아지들의 밥을 꼭 챙기시던 분이었습니다.

20대 초반에 계모가 머리를 때려서 집을 나왔고 아버지를 생각해서 참았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그는 의지할 곳 없이 거리에서 방황하였습니다. 그 전에는 가정과 학교와 가난과 주변 사회에서 방황했을 것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사회적 돌봄과 교육을 받지 못했던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도 어느날 자활 일자리를 얻고 의기양양하기도 하였습니다.

'부모부재와 가난한 부모, 계모는 상처를 주는 본질이 아닙니다.'

일은 살아가는 데서 기본입니다. 노동이 필요하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사람과 사회에게 필수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다만, 과거에 그리고 아직도 여성노동에 대해 그렇듯이, 우리 사회가 사람과 노동을 대단히 소홀히 할 뿐입니다. 노동의 가치를 멋대로 정하고 이끌고 가는 특정 부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살아남으려는 것인지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청소녀를 비롯한 빈민의 생존기반은 부자나라 대한민국의 관심사 밖입니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지를 갖지 못합니다. 존재자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고 생존경쟁의 잔인함속에서 헤매야 합니다. 같이 살기보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무리를 짓고,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부모 부재와 가난한 부모, 계모는 상처를 주는 본질이 아닙니다. 높은 생산과 과학기술의 발전 이전에 포기할 수 없는 노동은 돌봄과 교육입니다.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운다고 하였고, 한 인재나 성인도 온 사회가 키운다고 하였습니다. 이유와 환경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성이 그림자 노동이나 저임금 노동으로 도맡아 오던 돌봄,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기득권 세력에게 내맡겨진 교육을 하루 빨리 사회화해야 합니다. 자기만 아는 거인을 키우는 재벌이 아니라 사회적 돌봄과 교육에 제대로 속속들이 투자해야 합니다. 안전한 일자리가 없는 청소녀들과 빈민들에게 합리적 소득을 제공해야 합니다.

온 사회가 서로를 키우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현재와 미래는 희망이 있습니다. 가난한 청소녀들이 아직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해졌습니다. 사회적 책임입니다.
#빈곤 #빈민 #청소녀 #돌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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