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방에서 죽어가는 사람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서러웠다"

대구 쪽방상담소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 열어 "무연고 사망자 늘어난 것은 빈곤층의 삶이 고단한 현실 반영한 것"

등록 2019.12.21 01:36수정 2019.12.2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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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대구 경상감영공원에서 열린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에 참가한 참가자들이 올해 사망한 노숙인들을 추모하고 있다. ⓒ 조정훈

 
"아는 사람이 없어서
피붙이 살붙이가 없어서 무연고자가 아니라
사는 형편들이 그만그만하여
연락하면 오히려 짐이 되고 부담이 될까봐
연락도 못하고 그대로 살았다
집도 없이 떠도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연락도 못했다
그래서 기억을 지운다..."


목수이자 시인인 다울협동조합 조기현 대표가 자신이 쓴 <무연고자의 죽음> 시를 낭송하자 주위에서는 속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쪽방에서 살면서 여럿이 죽어 나가는 것을 봤다는 이아무개씨는 "내 이야기가 저 시에 왜 나와"라며 뒤돌아서 눈물을 닦았다.

대구쪽방상담소는 20일 오후 대구시 중구 경상감영공원 앞에서 매년 일 년 중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짓날을 기해 열리는 '거리에서 죽어간 홈리스 추모제(Homeless Memorial Day)를 열었다.

추모제에는 쪽방과 여인숙 등에서 생활하는 생활인들과 시민단체 관계자 등 80여 명이 참여해 지난 1년 동안 거리에서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고 노숙문제의 현실과 권리실현을 위한 운동을 결의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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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쪽방상담소는 20일 오후 경상감영공원에서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를 열고 팥죽을 나누었다. ⓒ 조정훈

  
홈리스 생활을 청산하고 임대주택에서 살고 있다는 변아무개씨는 "혼자 계신 분들은 고독사가 제일 위험하다"며 "재개발로 쫓겨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럴수록 우리가 같은 식구라 생각하고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변씨는 "때로는 화장실에서, 때로는 벤치에서, 때로는 쪽방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마지막 하는 말이 '엄마'를 부르고 간다"며 "태어날 때는 이름을 갖고 태어나지만 가실 때는 이름도 없이 가신 분들을 추모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쪽방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이아무개씨는 "내 옆방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정말 서러웠다"면서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도와줄 수 없어 너무나 한그러웠다"고 머리를 숙였다.

행사를 진행한 대구쪽방상담소는 "홈리스는 아니지만 대구 각 구·군별 무연고 사망자의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가고 있다"며 "지난 2016년 79명에 불과했던 무연고 사망자의 수가 2018년 124명, 2019년 11월 현재 150명으로 대폭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연고 사망자의 수가 대폭 늘어난 현실은 빈곤층과 저소득층들의 삶이 더욱 고단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홈리스들은 차별과 불안정, 부적절한 노동으로 침해받는 노동권, 정부의 그릇된 경기부양책과 고금리 정책, 금융 범죄 집단의 덫에 걸려 노숙인 절반 이상이 '신용불량' 이라는 족쇄에 매여 살아야만 하는 현실"이라며 "고인들의 죽음을 거름삼아 운동으로, 직접 행동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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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대구 경상감영공원에서 열린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에서 쪽방상담소 소속 희망진료소 의료인들이 의료상담을 하고 있다. ⓒ 조정훈

  
장민철 쪽방상담소장은 "오늘 여기 오신 분들 모두 내 동료 아니냐"며 "어려울 때 서로 얘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를 봐주지 않는다. 우리끼리 서로 손 마주잡고 자주 모이자"고 강조했다.

쪽방상담소 소속 희망진료소 관계자들은 노숙인들에게 건강상담을 해주고 비타민 영양제와 핫팩, 마스크를 나눠주었다. 참가자들은 또 죽어간 노숙인들을 추모하고 동지 팥죽을 나누었다.
#노숙인 추모제 #경상감영공원 #쪽방상담소 #희망진료소 #노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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