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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다, 이토록 송구하고 감사한 밥상

[팔순의 내 엄마] 노모가 차려준 새해 아침상

등록 2020.01.06 10:08수정 2020.02.1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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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새해 첫날 엄마는 자식들에게 먹일 밥상을 차렸다. 이 밥상을 차리기 위해 엄마는 며칠 전부터 준비를 했다. 마트에서 한꺼번에 장을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엄마는 의료기기체험관에 다녀오면서 하나둘씩 장을 봐 왔다. 
 

팔순노모가 차린 새해 밥상 새해 첫날 엄마를 자식들에게 먹일 밥상을 차리기 위해 며칠 전부터 시장을 봐오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짓는다. ⓒ 변영숙

 
하루는 검정색 비닐 봉지에 조기를 사들고 왔고, 하루는 야채거리를 사들고 왔다. 무거운 국거리 고기는 배낭에 짊어지고 왔다. 좋아하는 드라마도 안 보고 고깃국물을 우려냈고 냉동실에 얼려 놓은 취나물을 꺼내 해동했다. 

맨날 팔, 다리, 허리 안 아픈 데가 없다면서, 당신 드실 음식은 귀찮다고 겨우 찌개 하나 끓여 드시면서 자식들 입에 들어갈 음식 만들 때에는 기운이 펄펄 나시는가 보다. 

엄마가 베란다에서 큰 솥단지를 꺼내오길래 "엄마, 묵 쑤실려고?" 하고 물으니 "그럼~" 하고 대답하는 엄마 목소리에는 한껏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도토리가루는 어디서 났어?"
"큰 언니가 올 가을에 해 다 준 거야."
"옛날에 엄마가 해 온 건 다 드셨어?"
"그것도 남아 있긴 한데, 너무 오래 되서 못 먹어."
"아깝네. 엄마가 힘들여서 해 온 건데." 
  

취나물무침 엄마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나물 무침. 엄마는 이제 연로해서 예전처럼 나물을 하러 다니지 못하신다. ⓒ 변영숙

 
예전에 엄마는 봄가을이면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나물을 하고 도토리를 주우러 다녔다. 봄이면 엄마는 일바지에 낡은 남방을 걸치고 도시락이 든 커다란 배낭을 메고 일찌감치 집을 나서서 해가 저물어서야 떼꾼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오곤했다. 

짊어진 배낭이 터져나갈 듯 나물을 많이 해 온 날은 "오늘 나물이 얼마나 많은지, 너무 재밌었어" 하며 흐믓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반대로 수확(?)이 시원찮은 날에는 "에휴, 오늘 간 데는 나물도 없고…. 힘만 들었어" 하며 아쉬워했다. 어떤 날은 다른 사람이 엄마보다 많이 했다며 엄마답지 않게 샘을 내기도 하였다. 

나물을 해 온 다음날은 더 바빴다. 나물에서 검부락지를 골라내고 삶아서 바로 먹을 것은 건져 놓고, 오래 두고 먹을 것은 한번 먹을 만큼씩만 봉지에 넣어 냉동실에 얼리느라 또 어떤 나물들은 마당에 가득 펼쳐놓고 말리느라 하루종일 분주했다. 엄마가 해온 나물을 종류도 다양했다. 취나물, 고사리, 고비, 민들레 순, 다래순 등등. 이름을 모르는 나물은 그냥 '산나물', '파란 나물'로 분류했다.

"엄마 힘들지 않아?" 하고 물으면 "아니, 얼마나 재밌는데. 날씨도 좋고, 나물하다 먹는 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 반찬도 김치 하나뿐인데 말야" 하면서 행복해했다. 엄마는 그렇게 나물과 함께 봄을 맞이하고 봄을 보냈다. 

한번은 나물을 하러 나간 엄마가 밤 열시가 넘어서 '꾀죄죄한 몰골'로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버스를 잘못 타서 반대방향으로 갔다가 겨우 집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엄마는 집과 시장 그리고 늘 다디던 곳만 다녔던터라 버스나 전철을 타고 혼자 어딜 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엄마가 낯선 곳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얼마나 겁이 났을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아버지는 '다신 나물 하러 가지마'라고 엄포를 놓으셨지만 그 엄포가 엄마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그런 엄마 덕에 우리집 냉동실에는 온갖 산나물이 그득했고 밥상에 나물 반찬이 없는 날이 거의 없었다. 특히 나물이 귀한 정월 보름날에는 엄마의 나물들은 유감없이 그 진가를 발휘했다.  

가을엔 나물이 도토리로 바뀌었다. 엄마의 배낭에서는 공기돌만한 도토리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도토리가루를 만드는 일은 나물 다듬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어 보였다. 
 

엄마가 쑤신 도토리묵을 들어보이고 있다. 도토리를 주우러 다니던 그 시절이 제일 행복했다는 엄마, ⓒ 변영숙

 
딱딱한 도토리 껍데기를 까느라고 엄마 손은 성할 날이 없었고, 계속 물을 갈아 주면서 도토리를 불리느라 분주했다. 불린 열매를 끙끙대며 지고 방앗간에 가서 가루를 내오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빻아온 전분가루를 치대서 물에 담가 가라앉은 앙금을 걸러서 말려주는 일은 소일거리가 아니라 완전 중노동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앓는 소리 한번 없이 가을 내내 도토리가루를 만들었다. 그 가루로 엄마는 동지섯달, 오뉴월이나 상관없이 묵을 쑤었다. 

엄마는 묵 쑤는 솜씨도 일품이어서 주변의 누구도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내가 봐도 찰랑찰랑, 낭창낭창 투명한 빛이 도는 엄마표 도토리 묵은 '명품'이다. 엄마도 그걸 알아서 다른 사람들의 칭찬에 여유있는 미소를 짓곤했다. 

그런데 어렸을 때에는 엄마가 별맛도 없는 나물을 해오고, 도토리를 주워 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꾸질꾸질한 복장에 나물보따리를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 창피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집에 없는 것이 싫어서 도토리 주우러 가지 말라고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이제 내가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고 보니 비로소 엄마가 이해가 된다. 그때 엄마는 나물 욕심도 있었겠지만, '바깥 구경' 하는 것이 좋아서 열심히 산으로 들로 다닌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엄마에게는 유일하게 사람들과 어울리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던 시간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을지도. 

생각해보면 그때는 엄마를 제외한 우리 모두가 제일로 바빴다. 아버지는 직장생활에, 우리는 학교생활에. 어릴 때 엄마는 집 안의 붙박이 가구처럼 늘 집에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집에 엄마가 없으면 화가 났던 것도 그런 이유지 싶다. 그러니 엄마에게도 숨 쉴 구멍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지금도 엄마는 "그때 정말 좋았어…"라며 아련한 추억에 잠긴다. 젊고 생기발랄했던 자신을 떠올리는 것이리라. 지금 엄마에게 나물 하러 갈 수 있냐고 물으면 "이젠 못 가.  다리가 이런데" 하고 만다. 요즘 들어 묵과 나물을 볼 때 살짝 감상에 빠지는 이유다. 
  

엄마가 쑨 도토리 묵 엄마는 도토리를 주워와 도토리가루를 만들어 보관해 두었다가 특별한 날에는 어김없이 묵을 쑤셨다. 엄마의 밥상을 떠올리면 늘 묵이 생각난다. ⓒ 변영숙

 
식구들 모두 노모가 차린 밥상에 둘러 앉았다. 엄마는 분명 새벽부터 일어나 음식 준비를 했을 것이다.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조금 있으면 들이닥칠 자식들과 손주들을 생각하며 밥을 짓고, 취나물을 볶고, 묵을 무쳤을 것이다. 

새해 '복쌈'을 싸 먹으라고 김도 잘라놓았을 것이다. 자식들 새해 첫 밥상을 내 손으로 차려주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이토록 송구하고 감사한 밥상이 있을까. 

"엄마 고마워요.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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