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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마다 '꼰대질'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이런 명절 어때요?] 영혼 탈탈 털리는 명절 안부, 이젠 끝낸다

등록 2020.01.23 09:20수정 2020.01.2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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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증후군, 가부장적 차별, 세대간의 불화... 왜 명절이 되면 똑같은 문제와 갈등이 돌림 노래처럼 되풀이되는 걸까요. 불편한 사람 없이 모두가 즐거운 명절은 아득한 걸까요. '이런 명절 어때요?'는 저마다 바꾸고 싶거나 새롭게 도입하고 싶은, 새로운 명절 문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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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명절이면 티브이와 라디오에서 꽉 막힌 귀성길 교통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평소보다 목적지까지 몇 시간이 더 걸린다는 소식이지만, 다들 행복한 명절 연휴가 시작된다는 설렘을 안고 기꺼이 떠난다.

나 역시 가족들을 만나는 일은 즐겁지만 한동안 명절이 다가오면 은근한 긴장감에 휩싸이곤 했다. 명절에만 나타나 기묘한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보통 '친척'이라고 일컫지만 혈연관계로 얽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과 친근하다고 말하기에는 어쩐지 어색함이 있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보다 나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학창 시절, 그들은 내게 오직 학교 성적만을 물었다. 관심사, 꿈, 고민, 이런 건 관심이 없었는지 오로지 시험 점수만 궁금해 했다. 내 성적이 곧잘 나오던 중학교 때까지는 별 문제 없었다. 그러나 학교 성적이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큰 낙차로 떨어진 고등학교 이후부터 문제였다. 성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집안 분위기가 한순간에 달라졌다. 화기애애함은 온데간데없고 한숨과 하소연, 걱정이 오갔다.

하락한 내 성적과 함께 부모님의 자존감이 추락하는 그 상황이 몹시 속상했다. 나는 단지 성적이 떨어졌을 뿐이었다. 농구와 축구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책과 더 친해졌으며, 원숙해진 유머 감각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여전히 드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설과 추석이 되면 나는 이상하게도 골칫거리가 되어 있었다.  

성적... 그 다음은 군대... 정말 궁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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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대학생이 되자 성적을 묻는 말들이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러나 명절마다 나타나는 그들은 신기하게도 나의 성장기 길목마다 가장 아픈 부분을 정확히 찾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성적 다음은 '군대'였다.

"군대는 언제 가니? 군대 다녀와야 어른이 되지."
"군대는 어렵게 다녀와야 더 보람이 있지."

그분이 자리를 뜨고 난 후 엄마가 한 말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군대도 안 갔다 온 양반이 군에 대해서 뭘 안다고!"

군대 질문의 정점은 따로 있었다. 26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무려 5년이 흐른 어느 명절이었다. 그는 엄마가 굽는 육전을 우악스럽게 씹어 먹으며 허공을 향해 질문했다.

"완이, 제대는 했니?"

당시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헤어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고, 심지어 며칠 전엔 재입대하는 악몽을 꾼 참이었다. 나는 육전으로 가득 찬 그의 볼과 엄마 손에 들려있던 뒤집개를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정말 궁금해서 하는 질문일까? 나라는 사람을 진심으로 알고 싶긴 한 걸까?

요즘 청춘들보다는 비교적 수월히 구직할 수 있는 호시절을 보냈으므로, 다행히도 취업에 대한 안부는 피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30대 중반이 되자 결혼을 둘러싼 질문과 걱정이 차례상의 과도한 음식처럼 쏟아졌다. 결혼 안 하니, 만나는 사람은 있니, 부모님 걱정 그만 시켜야지...

그들은 엄마가 밤새 만든 음식에 대한 비평을 시작으로, 나의 결혼에 관해 열띤 토론을 하다가 안타깝다는 듯 쯧쯧 혀를 차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들의 무심한 공격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지만, 나보다 더 괴로워하고 상심한 건 부모님이었다.

어쨌든 나는 이후 결혼에 골인했다. 남의 혼인 여부에 지나친 염려를 보내던 그들은 막상 내가 식을 올리자 무관심하다는 듯 조용했다.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던 그들의 걱정과 충고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예상했겠지만 그들은 새로운 안건을 들고 우리 집을 찾았다.

"애는? 설마 둘이 살려는 건 아니지?"
"아이를 가져야 진짜 어른이 되는 거란다."

혹시 명절 전 미리 모여서 집안 분위기를 차갑고 어색하게 만들 질문과 안부를 미리 준비하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들은 내게 없는 무언가를 찾아 캐묻는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여태껏 명절마다 내 영혼을 탈탈 털어온 안부의 역사다. 내가 군대를 다녀오고 서둘러 결혼을 한 후, 하루빨리 아이를 낳아 어른이 되기를 바랐던 그들은 과연 어른이 됐을까.

좋은 질문이 오가는 명절이기를

어느덧 나 역시 학생과 취업 준비생,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안부를 물을 나이가 됐다. 감히 선언한다. 공부 열심히 해라, 얼른 군대 가라, 결혼해야 어른이 된다는 식의 '꼰대질'은 나의 세대에서 끝낸다.

명절날 적의를 품고 안부를 묻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별 뜻도 없는 그 한 마디에 명절을 힘겨워하는 사람이 있으며,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항상 되새겨 보는 말이 있다. 전 회사 사장이 했던 이야기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기에 나만큼은 어떻게든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말이야!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말의 절반만 해야 해."

나는 그 절반의 말에도 상대방을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디 이번 설에는 서로를 헤아리는 안부만 오가기를 바란다. 나부터 그러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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