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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새 알바트로스가 만든 '비니루 없는 점빵'

[체험기] 플라스틱과 비닐을 주고받지 않습니다

등록 2020.01.31 15:16수정 2020.01.3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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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알바트로스는 죽어서 이렇게 많은 플라스틱을 남겼다. ⓒ 크리스 조던

 
내가 알바트로스와 처음 만난 것은 2018년 11월 6일, 마을 카페에서 공동체 상영한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를 통해서였다. 가끔 만나 밥도 먹고 산책도 같이 하던 마을 친구 중 한 명이 소개해 주었고, '마을에서 같이 보자'는 데 의견을 모아 공동체 상영이 진행된 것이다.

날개가 너무 커서 뒤뚱거리며 걷고, 날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뛰어가는 모습 때문에 '바보새'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새들이 폭풍과 비바람을 피해 자취를 감출 때, 이 바보새는 유유히 날개를 펴고 비행을 시작한다. 먹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6일 동안이나 공중에 떠 있는 새, 넓은 날개를 펼친 채 미동도 하지 않으면서 바람의 힘으로 수 킬로미터의 활강을 할 수 있는 새, 바람을 거슬러 방향을 바꾸면서 지그재그로 날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가 바로 바보새, 알바트로스이다. 그렇게 이들은 대양을 항해하는 존재로 살아간다.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생명체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이 매력적인 바보새들 앞에 커다란 재난이 닥쳐 왔다. 아기새들이 성장해서 스스로 날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받아먹은 먹이 중 소화시키지 못한 것들을 토해내서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 과거에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기 새들의 배 속에는 날카롭고, 독성이 강하고, 토해내기 어려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던 '비우기'의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새들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오징어나 생선 등을 먹는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버린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이를 먹고, 또 이것을 아기 새가 받아먹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대양을 항해하는 삶을 살지 못한 채 고통에 겨워 죽어간다.

우리의 편리함이 새들의 괴로운 죽음으로 이어지는 이 연쇄가 많이 안타깝고 불편했다. 그런데 이런 비참함은 당연히도 이 새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현존하는 바다거북의 모든 종, 그리고 해양포유류와 바닷새 전체 종의 절반가량이 바다 쓰레기를 먹거나 그것에 엉켜 고통받고 있다.

당연히 우리 인간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플라스틱은 분해되지 않고 잘게 부서지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지구 곳곳에 침투한다. 우리는 물, 해산물 등을 섭취하면서 일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 무게인 5g의 플라스틱을 함께 먹고 있다. 한 달이면 플라스틱 칫솔 한 개 정도인 21g, 1년이면 250g 이상의 플라스틱을 먹고 있는 것이다.

뭔가를 하자
 

살래장 부스에 달아놓은 ‘비니루 없는 점빵’ 현수막. 마을 친구들이 조각천을 이어붙여 만들었다. ⓒ 이진순

 
이 놀라운 수치를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버리는 양에 비해 너무 약소하게 먹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도 든다. 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와 전혀 무관한 동물들의 고통과 죽음을 생각한다면 더더구나 그렇다.


마구 쓰고 버리는 삶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던 터에 이 다큐를 보면서 일상에서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듯하다. '뭔지 몰라도, 뭔가를 하자!' 영화를 본 후 친구들과 그런 공감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마을 초등학생이 김밥을 준비해서 ‘비니루없는점빵’ 부스에서 판매하고 있다. 주민들이 들고 온 도시락통, 판매자가 준비한 사기 접시 등에 김밥이 담긴다. ⓒ 이진순


이렇게 우리의 '비니루 없는 점빵'이 문을 열게 되었다.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연 7회 열리는 마을장터 '살래장'에서 '플라스틱과 비닐을 주고받지 않는다'는 단순한 원칙을 가지고 점빵을 운영하게 되었다.

장터 주최 측에서는 수저와 반찬통을 가져와서 먹거리를 사 먹고, 장바구니를 가져와서 장을 보자고 미리 주민들에게 제안하였다. 플라스틱 용기 대신 사기 접시나 머위잎 등을 이용해서 샌드위치나 김밥을 제공하고, 미나리 등 농산물은 신문지에 말아서 팔았다. 수저와 반찬통을 갖고 오신 분들이 벤치에 앉아 먹고 마시고 수다 떠는 모습은 어디 소풍 나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장터에서 판매하는 대나무 칫솔. 대나무 칫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들은 회사 홈페이지 doctornoah.net에서 볼 수 있다. ⓒ 이진순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대안 제품으로 나온 대나무 칫솔도 구매해서 점빵 상품으로 판매하였다. 꽤 많은 사람이 칫솔에 관심을 보였고, 그만큼 판매도 되었다. 대나무는 이름과는 달리 나무가 아닌 풀에 속하고, 가장 빨리 자라는 식물 중 하나여서 벌목의 부담 없이 칫솔의 재료로 쓰기 적당해서 선택되었다 한다. 나의 치아와 지구를 함께 건강하게 하기 위한 생활필수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활동을 시작한 뒤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사업 신청을 제안받아서 지원도 받게 되었다. 지원금으로 칫솔도 더 구매하고, 시와 면의 담당 공무원들과 함께 지역 쓰레기 관련 이야기를 주고받는 간담회 자리도 가졌다. 심각한 문제임에는 분명하지만, 뾰족한 대안이 있어 보이지도 않아 그저 답답하기만 했던 쓰레기 문제. 그래도 외면할 수 없는 주민들이 40여 명 넘게 참여했다.

그때를 상상한다
 

마을에 있던 청년이 그려준 살래장 포스터 ⓒ 이진순

 
면과 시 차원의 쓰레기 규모,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으면서, 지자체 담당자들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열심히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예상대로 우리의 쓰레기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주민 교육과 홍보, 벌금 등 개인의 쓰레기 줄이기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한 쓰레기의 양은 결코 줄어들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결국은 민, 관, 기업이 함께 해야만 우리의 노력이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200명 넘는 사람들이 3시간 이상 오가고 먹고 마시는 자리인 장터에서 나온 쓰레기는 30L 쓰레기봉투 절반에도 못미쳤다. ⓒ 이진순


서울에 있는 대표적인 제로 웨이스트 샵 중 하나인 '더피커' 대표와 만나 소비도시에서의 생태적 장사 이야기도 들었다. 시골에선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건물 임대료, 무언가를 소비한다는 것 자체가 대량의 쓰레기 생산과 같은 의미인 도시 문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1년의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농산물 가게이자 레스토랑을 3년 동안 유지해 왔고, 이제 잠시 후면 장소를 옮겨 새로운 방식으로 가게 문을 열 예정이라고 하였다. 가게 문을 닫은 상태라 예쁜 가게의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하고, 맛있다는 샐러드나 샌드위치 등을 먹어보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쉬웠다.

도시에 이런 공간과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노력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부서지지 않고 가꾸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은 일이었다. 더피커의 홈페이지(thepicker.net)에는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물품들도 있다. 예쁜 홈페이지와 아기자기한 제품들이 방문객을 맞아준다.

한해의 장터가 마무리되면서 자연스럽게 점빵의 활동도 휴지기에 들어갔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졌으나 어떤 식으로든 다시 우리를 향하는 쓰레기의 문제를 직면하려 했던 시간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첫발을 내디뎠다. 이제 봄이 오고 장터가 열리면, 우리는 무엇을 할까? 작년처럼 샌드위치를 만들고, 홍보물을 만들고 있겠지?

그리고, 아직은 머나먼 길로 느껴지는, 민·관·기업이 함께 쓰레기의 생산에서부터 소비, 배출까지의 문제를 놓고 함께 손 맞잡을 수 있는 그때를 상상한다. 그것을 꿈꾸며 이제 두 번째 발걸음 내디딜 준비를 겨울잠 자면서 해봐야겠다.
#알바트로스 #비니루없는점빵 #플라스틱 #미세 플라스틱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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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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