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회 온 사람들에게 지휘자가 전한 말

2020년 동북아평화연대 신년음악회 관람 후기

등록 2020.02.02 19:54수정 2020.02.0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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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고 구정까지 겹치면서 너무 분주했다. 그러다 음악회를 관람할 기회가 뜻하지 않게 주어졌다. 동북아평화연대가 주최한 한·러수교 30주년 기념 러시아 하바롭스크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초청 신년음악회였다. 주최 측에 대해서도, 오케스트라단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그저 음악이 좋아서 무심코 참여한 음악회였다. 그저 평화활동가인 지인의 초대가 전부였다.

부랴부랴 스마트폰 지도를 따라 음악회 장소를 찾아갔다.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장천홀에는 음악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저마다 볼일을 보며 북적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러시아어가 드문드문 들렸다. 러시아인들이 연주하고, 평소 잘 만날 수 없는 러시아인들과 고려인들도 함께 관람한다. 그 현장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함과 동시에 나는 점점 상기되고 있었다. 

곧 음악회가 시작되었고 조화롭고 장엄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분주했던 나의 여러 마음을 이내 차분히 가라앉게 해 주었다. 다채로운 소리가 아름다움을 연발하는데, 각 악기마다 내는 소리들이 어쩜 저리도 조화로울까, 각각의 연주자는 저리도 성실히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까... 오케스트라만의 묘미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 단원들의 비장한 포즈들이 청중들을 압도했다. 피부색이 하얗고 더러는 머리색깔 마저도 새하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의 손 끝 하나하나에 온신의 힘을 쏟아 부으며 우리 청중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하고 있었다. 나는 일상의 모든 삶을 제쳐놓고 음악에 점점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오케스트라 음악에 맞춰 춤 추는 발레단 오케스트라 음악에 맞춰 발레를 볼 수 있었던 색다른 무대였다 ⓒ 조용필

 
그런데 잠시 후 지휘자가 한국어로 우리가 듣게 될 러시아 음악에 대해 물 흐르듯이 잘 설명해 주셨다. 경상도 억양이 조금 섞인 어투는 친근하기까지 했다. 알고 보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모두 러시아인이었으나 이 단원을 총 지휘하고 계셨던 분은 바로 한국인 노태철 야쿠티아 국립음악원 부총장님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 러시아 음악가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코프스키가 약간의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그들은 삶이 달랐기 때문에 음악이 다르다며 곧 연주될 곡들을 어떻게 들으면 좋을지 알려줬다.

"러시아 음악, 프랑스 음악, 독일 음악들이 다 다른 이유는 그들의 언어가 다르고 문학이 다르고 문학 속의 삶 그리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록 러시아가 많은 전쟁을 치른 나라이지만 그들이 향유하는 문학은 아름답고, 그들의 음악과 예술은 삶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의 삶은 비록 가난하지만 교양이 있다."   

정말이지 우리는 그 짧은 시간 안에 러시아뿐만 아니라 헝가리, 프랑스, 독일 및 오스트리아 음악들을 맛보며 그곳을 한 바퀴 돌고 온 것 같았다. 그러면서 궁금해졌다. 각 나라마다 색다른 음악이 선보이듯이 그곳에 묻어 있는 삶이란 어떨까.   

노태철 지휘자의 이야기는 결코 음악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보 전달이 아니었다. 당신의 인생 스토리를 엮어 음악과 우리의 삶을 연결시켜 주고 있었다. 유럽에서 10여년의 음악가 인생을 보내고 미국에서도 상당한 봉급으로 음악 활동을 하였지만 러시아로 건너가서 러시아 음악에 푹 빠져버리셨다고 한다. 미국의 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은 봉급으로 러시아에서 살았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너무 행복했다고.  

어느덧 나는 음악회에 앉아 있으면서 '내 인생의 깊이'에 대해서 혹은 '내 삶의 의미'에 대해서 성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의 삶은 이대로 좋은가. 마음 안에 무언가 모를 그 어떤 것을 알차게 담고 싶어 하고 있었다. 때마침 감독님은 연주되는 곡들 사이사이에서 인생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들을 전달하고 있었다.    

"오늘 음악회 전까지만 해도 2년 정도 동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건강하던 몸이 걷는 것조차 힘들게 되니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너무 음악에만 몰두하고 살았는데 이제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때 행복합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세계적으로 너무나 훌륭한 민족입니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경제적인 영역을 뛰어넘어 인생을 좀 다르게 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이 문화와 교양이 있는 인생을 살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발레단과 같이 왈츠를 추는 관객들 음악회 말미에 지휘자는 춤을 추고 싶은 관객들 3명을 즉석에서 신청 받아 발레단과 왈츠를 추는 이벤트를 진행하여 많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 수피아

 
노태철 지휘자 교양 있는 삶을 위해서 먼저 자연 그대로 음악인인 모차르트를 즐겨들으라고 했다. 음악회 끝날 무렵에 꾸밈없는 자연인 모차르트의 '요술피리'가 청아한 소프라노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지휘자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삶이 녹아 있는 가슴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얘기를 들을수록 더 깊이 있는 삶을 갈망하게 한다. 게다가 하바롭스크 오케스트라의 열정적인 연주는 한 곡씩 끝날 때마다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전율하게 만들었다.
 

2020년 동북아평화연대 신년음악회 행사를 준비했던 동북아평화연대 준비단 및 러시아 하바롭스크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 최대승

 
관객들의 삶은 저마다 그 내용이 다르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하나로 모아졌다. 우리의 마음이 고조되어 하나가 되는 순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 같이 연주하고, 춤도 추었다. 마음이 벅차오르고 황홀했다. 그저 순간적인 기분이 아니었다. 이건 분명 내 인생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달은 힐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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