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가 불편하다"는 기사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

분리와 효율성에 길들어진 현대인의 자화상

등록 2020.03.02 16:40수정 2020.03.0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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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코로나 여파로 재택근무 실험이 한창이다. 관련 기사도 제법 올라온다. 그런데 대다수가 '경영-노동'의 틀에서 바라본 관점이다. "업무-휴게 구분이 모호하다",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 "노동강도는 여전하다" 등등. 그러다 가끔 튀어져 나오는 볼멘소리, "가족 및 아이들과 종일 부대끼기 힘들다."

가족 구성원의 관점에서 재고하고 성찰할 일이 그리 없을까? 그렇게 경영인 관점, 노동자 관점으로 평생 살다 은퇴하니 가정으로 돌아와도 어색할 수밖에. 어찌 보면 재택근무 실험은 그 어색함을 앞당겨 맛보게 하는 경종일지 모른다.

평상시 아이들의 관점에서는 어떤 느낌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회사에 매인 우리 엄마 아빠를 회사가 잠시 주말에 자기한테 빌려주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참에 좀 바뀌면 안 될까? 원래부터 우리 엄마 아빠로 함께 사는데 집에서 일도 하더라 이렇게.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사실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한 건 노동환경의 변화와도 관계가 깊다. 공장 중심 산업사회로 접어들기 전 농업사회만 해도 아이들은 지금처럼 부모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가부장 사회의 억압이 외부 힘으로 작용하긴 했어도, 지금처럼 어른들의 노동 효율성 제고를 위해 아이들이 위탁이라는 이름으로 공간적으로 격리되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의 눈으로 본다면 아동학대 수준이겠지만 어른들의 일을 함께 거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가족관계 측면에서는 분리가 아니라 통합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맞닥뜨린 도시의 산업환경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기업경영인의 이윤추구가 우선시 되었고 이에 따라 노동 효율성 제고는 선결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노동 작업환경인 일터와 가정이 본격적으로 분리되면서 공간에서 비롯되는 변화들이 뒤따랐다. 더 이상 이전처럼 아이들이 부모들의 노동환경에 함께 따라나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들은 위탁기관에 맡겨졌고, 부모들은 일터로 내몰렸다. 과거 일터에 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방 안에 두고 밖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는 일화는 이 시기를 지나왔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상흔이다.

체감속도가 느리긴 해도 격동의 산업화로 인해 양산된 문제들에 대한 보수작업이 잇따랐다. 어른들의 노동복지는 향상됐고, 아이들의 위탁은 전문적인 보육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공간상의 분리, 관계적인 측면의 단절은 메우지 못했다. 아침마다 등하원-출퇴근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던 중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물리적인 외부환경 변화로 재택근무 바람이 불었다. 서두에 밝힌 대로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다. 이는 경영-노동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가정 내 관계에서도 그러하다. 표면상으로는 업무 효율성의 문제, 업무와 가사(육아)가 분리되지 못하는 문제들로 나타났지만 실은 각기 분리된 채 일상을 살아온 관성이 주는 이질감이 그 바탕에 자리한다.


한순간에 주거 공간이 일터와 같은 환경으로 기능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일이 잘되지 않는다고 가족 구성원들에게 어두운 낯빛을 내비치는 건 지나친 일이다. 업무 효율성은 회사에서 길들어진 가치다. 이를 집안 식구들에게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아이들에게도 잘못이 없다. 종일 놀잇감을 찾아 헤메고 엄마 아빠에게 매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외부에 위임했던 보육의 짐이 일과 속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물론 갑작스레 바뀐 일상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을 위탁하고 일터에 나와 일을 하던 패턴에 맞춰 조정된 바이오리듬이 금세 바뀌진 않는다. 하루 일과를 보내기 위해 가족 구성원 간의 조정과 협의가 완충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대개 이 과정에서 갈등을 빚는다. 아이를 내맡기고 회사를 다니던 때처럼 일상이 왜 돌아가지 않느냐고 속으로 반문하고 목표를 정해버리면 갈등이 멈추질 않는다. 그러한 목표는 어쨌든 공간을 분리하고 관계의 유격을 느슨하게 둘 때에만 달성 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장에는 재택근무 실험이 경영-노동의 관점에서 조명되는 게 다수일 테지만 동시에 가족관계 프레임에서 숙고해야 할 부분도 크지 않나 생각한다. 적어도 노동이 삶의 최종목표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일상이 소중하다고 여긴다면 말이다.

자본이 매개하는 경영-노동의 인식은 기본적인 인간관계들을 절단한 채 수십 년을 살아가도록 종용한다. 안타까운 일은 나는 커서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아이도 결국 같은 삶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다 외로이 황혼을 맞는다.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 실험이 사회의 진일보로 이어질지 관심이 높다. 물론 역으로 섣부른 상상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소위 사회의 진일보라는 것이 거창한 게 아니라 불편하고 부당한 일들을 거슬러 바로잡는 일이라면 한 주의 일상, 하루의 일상과 직결되는 이런 인식의 고민부터 시작하는 게 마땅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야 느리더라도 조금씩 나아진다.
 
#재택근무 #원격근무 #코로나 #코로나19 #노동환경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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