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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지 않는 한, 아들도 죽지 않고 살아갑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들 ④] 아버지와 아들을 마음에 묻다

등록 2020.03.12 16:14수정 2020.03.1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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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6일,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를 향한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한빛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기자말]
2월 21일은 친정아버지 기일이다. 2000년에 돌아가셨으니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20'이란 숫자에 깜짝 놀랐다. 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기 때문이다. 슬픔만 말랐을 뿐 아버지와 그렇게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아버지도 이러한데 한빛은 어떨까?

올해는 아버지 기일과 한빛 추모미사가 같은 날 열려 연미사를 함께 봉헌했다. 고인을 적는 란에 아버지를 적고 나란히 한빛 세례명을 적는데 가슴이 또 한바탕 소용돌이쳤다.

미사가 끝나자 동생이 "언니, 나는 아버지한테 모자 하나 사드리지 못한 게 지금까지 마음에 걸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빛아빠는 "누구나 못해 드린 것만 생각나지요. 그래도 아버님은 소신껏 편안하게 잘 사셨잖아요. 물론 욕심이 없으셨기 때문이었지만요"하고 위로를 건넸다.

"학교 재직하실 때 쓰시던 흰 운동모자만 내내 쓰셨는데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따뜻한 베레모도 있고 멋진 모자도 많던데. 백화점 1층 코너에 수북하게 쌓인 모자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동생)

"나는 왜 화장실 비데를 설치하지 않았나 그게 죄송해. 뚱뚱하셔서 화장실 사용이 참 힘드셨을 텐데. 생각 자체를 못 했어."(나)

"그래도 언니는 시골집에 양변기 설치해 드렸잖아. 당시에는 획기적이었어."(동생)


그랬다. 한빛을 임신하고 배가 불러오면서 뚱뚱하다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힘든지를 알게 되었다. 가장 큰 애로사항은 친정의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아버지는 몇 십 년 동안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과거 완료형'이 된 우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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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한빛에게 민물고기에 물감을 칠했던 얘기를 했다. 한빛이 크면 이 얘기를 다시 하고 싶었는데 더는 할 수 없게 됐다. 천천히 하나하나 꺼내 얘기할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나는 혼자 말해야 한다. ⓒ unsplash

 
아버지나 나나 필요하다 싶으면 일단 시도했다. 그리고 집중했다. 그때마다 돈 문제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절약생활 할 자신도 있고 의미가 있다면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비데는 생각을 못 했다. 그 문화에 대해 잘 몰랐다. 지금도 뚱뚱한 나는 매일 비데를 사용하면서 아버지께 죄송하다.

아버지는 고집이 세셨지만 한빛아빠 말처럼 탐욕이 없으셨다. 특히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셨다. 엄마와 돈 문제로 가끔 말다툼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검소하셨기 때문에 엄마도 용서하신 것 같다. 그 가치관이 자식들에게 좋았을까 묻는다면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한빛아빠가 해직되었을 때 내가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가 주신 생활태도 덕분이다.

아버지는 묵직하고 실천적이셨다. 국민학교 1학년때 우리 교실에는 주황색 금붕어가 있었다. 갈색의 밋밋한 똥고기(송사리나 버들치)만 보았던 나는 화려한 빨간색 금붕어가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 했다.

어느 날,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아 집으로 가져왔다. 오빠 가방에서 물감을 꺼내 물고기에 색을 칠했다. 그러나 아무리 덧칠해도 물고기는 빨간색으로 물들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둘 말라갔다. 대야에 다시 넣으니 모두 허연 배를 드러낸 채 둥둥 떴다. 마침 집에 들어온 오빠한테 허락 없이 가방을 뒤졌다고 혼이 났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아버지가 퇴근하셔서 자초지종을 들으셨다.

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고 시장으로 갔다. 당시 수족관이란 말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때는 금붕어를 어항과 함께 그릇 가게에서 팔았다. 꽃 모양의 작은 어항과 금붕어 몇 마리를 사서 물이 가득 담긴 비닐봉지에 담았다. 조심조심 걸어서였는지, 가슴이 벅차서였는지 나는 허공을 걷는 듯 둥둥 뜬 채 걸었다.

한빛이 어렸을 때 13평 아파트에 큰 수족관을 설치했다. 수족관 앞을 지나려면 몸을 옆으로 돌려야 했지만 일단 저질렀다. 열대어는 생각도 못 했다. 비싸기도 했지만 두 아들에게 민물고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아빠와 함께 개울에서 민물고기를 잡으면, 한빛은 민물고기 책을 펴놓고 물고기 이름을 찾았다. 책이 물에 젖었다 말랐다 해서 너덜너덜했지만 어린 한빛은 책을 제일 먼저 챙겼다. 

아이들이 다 그렇지만 한빛도 물고기를 참 좋아했다. 한빛이 아침마다 의자에 올라가 물고기 밥을 주면 한솔이가 뒤뚱뒤뚱 따라 나와 수족관에 까치발로 매달려 "꼬기, 꼬기"하며 물고기들을 불렀다. 수족관 앞에서 물고기 이름을 가르쳐주는 형과 신나하는 동생, 이제는 다 눈물겨운 추억이 되었다. 다시 얘기할 수 없는 '과거 완료형'이 된 것이다.

그때 한빛에게 민물고기에 물감을 칠했던 얘기를 했다. 한빛이 크면 이 얘기를 다시 하고 싶었는데 더는 할 수 없게 됐다. 천천히 하나하나 꺼내 얘기할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나는 혼자 말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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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의 아버지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있듯 내가 죽지 않는 한 한빛도 같이 살아갈 것이다. 한빛을 사랑했고 사랑하기에 오늘도 나는 살고 있다. ⓒ unsplash

 
물고기와 어항하면 생각나는 일이 또 있다. 국민학교 2학년 자연시험이었다.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는 여러 어항 그림 중에 물고기가 가장 살기 어려운 상태를 고르는 내용이었다. 목이 좁고 긴 병에 물고기가 있는 그림이 답이었다. 그런데 나는 넓고 네모난 어항을 골라 틀렸다. 너무 쉬운 문제를 틀렸기 때문인지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나도 그 문제에 많은 시간을 보냈고 고민도 많이 했다. 숨쉬기도 힘든 좁고 긴 병에 들어 있는 물고기가 가장 불쌍했지만, 넓은 사각어항을 두고 고민한 것은 어항 한구석의 선이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쇄 불량으로 그 부분이 끊어진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어린 마음에 진땀이 났던 것 같다. 지금은 물이 가득 담겨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끊어진 곳으로 물이 다 새 나갈 것이고, 결국 물이 하나도 안 남아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래도 물이 안 새는 긴 병이 낫겠지 했다.

담임선생님한테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아버지는 두고두고 말씀하셨다. 만나는 선생님은 물론 서울 이모부한테도 얘기하셨다. '창의적'이라고 하셨던 것 같다. 창의적이란 말이 뭔지도 몰랐지만 칭찬인 것 같아 으쓱했다. 아버지는 결혼 전 처음 인사하러 온 한빛아빠에게도 이 얘기를 하셨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난 후 지필고사를 출제하고 인쇄된 시험지를 검토할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직접 잔소리하거나 칭찬하지 않으셨다. 그냥 느끼게 하셨다.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눈을 떴을 때, 아버지가 엄마에게 자식들의 잘난 점을 두런두런 얘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어린 나는 칭찬을 듣기 위해 이불 속에서 오줌을 참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우리가 깬 것을 아셨던 것 같다.

나는 아버지의 교육방식을 한빛, 한솔에게 흉내내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았다. 한빛의 손을 잡아주고 마음을 포개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고 한빛은 혼자 절망하다 떠났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사랑하는 사람은 무덤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묻혔으니 내가 죽지 않는 한 그들도 죽지 않고 살아간다"고 했다.

20년 전의 아버지가 여전히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듯 내가 죽지 않는 한 한빛도 같이 살아갈 것이다. 한빛을 사랑했고 사랑하기에 오늘도 나는 살고 있다. 한빛을 보듬고 마음 얹어주면서 같이 살아가고 싶어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덤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묻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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