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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 눈물… 다큐영화 '태안' 기술시사회

태안민간인희생자들의 아픔을 다룬 영화 '태안' 초판본... 출연자 등과 기술시사회 가져

등록 2020.03.18 14:16수정 2020.03.1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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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가 중요하다고 본다. 속으로는 잠재적으로 (우익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지만 예전처럼 이웃과 같이 지내다보면 자연스레 화해가 되지 않겠나. 더 이상의 반목은 없어야 한다."(다큐영화 '태안' 중 민간인희생자 유족의 말)

1950년 10월 이후, 특히 1953년 9월 28일 서울 수복 전후로 인민군이 철수한 뒤 대대적으로 자행된 부역혐의자와 보도연맹사건으로 희생된 1200여 명의 태안민간인희생자의 아픔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태안'이 가편집을 마치고 기술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기술시사회는 지난 14일 태안민간인희생자유족회 사무실에서 열렸다. 메가폰을 잡은 레드무비(Red Movie) 대표 구자환 감독과 충남 태안반도 곳곳에 서려 있는 태안의 아픔을 유족들과 마주하며 영화 '태안'을 통해 조명한 세월호 유가족 '유민아빠' 김영오씨, 태안민간인희생자 유족회 강희권 이사, 그리고 그동안 영화 '태안'의 촬영기간 동안 태안의 아픔을 취재해 보도해 온 본지 기자까지 4명이 참석했다. 

태안반도 곳곳 아픔 마주한 7개월의 대장정 
 

태안민간인희생자의 아픔을 다룬 다큐 영화 '태안' 타이틀 다큐영화 '태안'의 타이틀도 태안사람이 써 의미를 더하고 있다. ⓒ 강희권 제공


이날 기술시사회에서는 지난 7개월 여간 태안읍 사기실재를 비롯해 고남면 영목항, 안면읍 딱쿵골과 장삼포해수욕장, 남면 몽산포해수욕장, 근흥면 안흥항과 질목, 소원면 신덕리 해안, 원북면 솜틀다리와 닻개, 이원면 옹동벗과 사직고개 등 태안민간인희생자들이 이유 없이 끌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픔의 현장을 찾아 유족들의 생생한 증언과 지난 70년간 한으로 맺힌 그들의 눈물이 1시간 40여 분 간의 영상으로 공개됐다. 감상을 마친 뒤에는 토론이 진행됐다.

특히, 영화를 클라이맥스로 이끄는 유족들의 눈물은 오늘을 살아가는 세대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또한, 증언하며 참았던 눈물을 학살현장에서 쏟아내는 장면에서는 유족회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출연자로 태안민간인희생자 유족들의 아픔을 마주한 김영오씨의 내레이션도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깊은 메시지를 전해준다.  
 

다큐영화 '태안' 기술시사회 사진은 지난 14일 태안민간인희생자유족회 사무실에서 열린 영화 '태안'의 기술시사회. 영상이 김영오씨와 태안민간인희생자 명단에 반사돼 묘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 김동이


세월호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태안'을 연출한 구자환 감독이 "동질의 아픔을 간직한 분"이라며 이번 영화에 섭외한 인물이다. 영화 크랭크인 당시 김영오씨는 영화에 출연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픔을 가진 사람들도 빨갱이로 몰아가는 게 사회현실이다. 대한민국은 아프다. 무슨 사건이나 재난이나 다 똑같다. 참사나 재난이 일어나면 어떻게든 해결해 주려는 게 아니라 이를 이용해서 서로 간에 정치적 이익만 위한다. 민간인학살을 몰랐다면 우리(세월호)만 그렇구나, 나만 억울하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구자환 감독을 만나고 해원도 보고 4.3사건, 여순사건 얘기도 듣고, 태안의 얘기도 들으면서 전 국민이 민간인학살자의 피해자라는 걸 알게 됐다. 세월호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국민들 학살, 국민들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은 이승만 정권의 민간인 학살이 뿌리였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김영오씨는 지난 7개월여의 여정에 동행했고, 태안의 아픔을 마주했다.


영상 속에서 태안반도의 남끝단인 고남면 영목항을 찾은 김씨는 영목항에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육섬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태안유족회 강희권 사무국장이 "당시 모든 섬은 인민군이 점령하지 못했고, 해군이 없다보니 섬은 경찰이 점령했다. 당시 육섬은 보도연맹, 즉 좌익을 납치해서 섬으로 데리고 가서 처형도 했다"라고 말하자 김씨는 "유민이와 함께 휴가 왔던 곳이 민간인희생자들의 아픔이 서린 곳이었다니 마음이 아프고, 더욱 동질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세월호가 오버랩 되기도 했다.

<태안민간학살백서>(2018년 10월 22일 발간)에는 육섬에 대한 기록이 짧게 기술돼 있다.

"안면도 인근 섬은 인민군 점령기에도 경찰이 장악하고 있었다. 수복 전후 안면지서 소속 경찰 강〇〇는 지서 경찰들이 육섬 등으로 피난해 있었다고 했다. 이상춘은 고남리 박홍규가 고남리 영목항 앞 육섬에서 경찰에게 체포된 후 희생되었다고 했다. 박홍규의 형 박광규는 수복 직후 동생을 찾으러 육섬에 갔다가 체포돼 고남지서로 연행된 뒤 살해되었다."

또한 유족들의 눈물에 함께 마음 아파하기도 한 김씨가 영상 속에서 "민간인희생자들에 대한 진상규명만 제대로 됐더라면 5.18광주도, 세월호의 아픔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이날 기술시사회 이후에는 구자환 감독을 비롯한 4명의 참석자들이 편집 영상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으며 보완해야 할 부분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이어갔다.

"정치인들이 좌우 선동"… 민간인희생자 유족의 뼈 있는 말
 

뼈 있는 유족의 일침 서산시 양대동 민간인희생자 유족은 영상 속에서 뼈 있는 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세대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유족의 아픔과 마주한 김영오씨가 유심히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 김동이

한편, 다큐영화 '태안'의 영상 속에서 '만약에 70년 전의 사건이 되풀이 된다면 지금도 같은 일이 되풀이 될 것으로 보나'라는 제작진의 질문에 대한 한 유족의 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정치인과 모든 세대들에게 깊은 깨우침을 주고 있다.

"정치인들이 좌우로 나뉘어 선동하고 있지 않나. 지금 전쟁이 난다고 해도 같은 아픔은 되풀이 될 것이다."

한국전쟁 70년을 맞은 2020년. 70년 전 치안대 등 우익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민간인희생자들의 아픔을 간직한 채 반세기 넘게 고통 속에 살아온 유족들이 이제는 반목에서 벗어나 우익의 후손들과 함께 한데 어우러진 삶을 살아간다는 메시지로 끝을 맺는 영화 '태안'.

'태안-넉넉하고 편안한 삶이 있는 곳'이라는 상징적인 부제도 정한 영화 '태안'은 올해 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이며, 내년 6월쯤 개봉할 예정이다.

올해 영화제 출품 예정… 구자환 감독 "수상하면 조기 개봉도 고려"

 

다큐영화 태안의 제작진과 출연진 7개월간 태안반도 곳곳을 누비며 70년 쌓인 태안민간인희생자들의 아픔과 마주한 다큐영화 태안의 제작진과 출연진. 오른쪽부터 구자환 감독, 김영오씨, 강희권 이사, 김주형 조감독. ⓒ 강희권 제공


영화 '태안'의 연출을 맡은 구자환 감독은 "오늘 기술시사회를 통해 도출된 의견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전체적인 편집을 좀 더 다듬은 후 올해 영화제에 출품할 예정이며, 개봉은 내년 6월쯤 계획하고 있다"면서 "영화제에서 고맙게도 수상하게 되면 올해에도 조기 개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태안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 115명과 인민군 치하에서 희생된 자유수호희생자 115명을 비롯해 부역혐의 희생자 900명을 포함, 모두 1200여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희생됐다.

영화제 출품 등 세상에 공개될 다큐영화 '태안'은 태안민간인희생자 유족을 비롯해 정석희 태안유족회장과 억울하게 한순간 핏줄을 잃어버린 유족들, 당시 보도연맹원의 이송 과정을 지켜본 목격자, 백화산 사기실재에서의 학살 목격자 등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그날의 아픔을 재조명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태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다큐영화 태안 #태안민간인희생자 #구자환 #레드무비 #김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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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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