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시공을 거스르는 화첩기행

충절의 고장 충남 예산군 '봉대민속공예'를 찾아서

등록 2020.03.30 16:06수정 2020.03.3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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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예가 송림 정봉기 선생 ⓒ 최미향

  

봄 햇살이 창을 비춘다. 따뜻함에 겉옷을 벗어도 이젠 춥지 않다. 어느새 계절은 성큼 우리 피부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에 질세라 충절의 고장 충남 예산에 위치하고 있는 목공예가 송림 정봉기 선생을 만나러 길을 떠났다.
  

송림 정봉기 선생 ⓒ 최미향

 
봄물에 적신 여행객이 작품에 매료되어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선생은 예를 다하여 차를 대접했고 그 손길에는 장인의 정신도 깃들어 있었다.


"선생님, 누추한 곳까지 감사합니다. 첫 잔은 권하지만 다음 잔부터는 드실 만큼 마음껏 드세요."

목젖으로 한 모금 넘기는 맛이 담백하면서 깊고 은은하다.
    

송림 정봉기 선생의 작품 ⓒ 최미향

   
충남 예산군 봉산면 사석리 348-2에 있는 봉대민속공방, 그 주위에는 역사의 향기를 머금은 결 고운 나무들이 시선을 끈다.

정봉기 선생은 부친의 대를 이어받아 시선 고운 그곳에 목공의 길을 입혔다. 묵묵히 외길을 걸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장인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했을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송림 정봉기 선생의 대표 작품 '세한도' ⓒ 최미향

 
그의 대표작,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작품 세한도를 나무붓통 표면에 새긴 것은 대한민국에서 단연 선생이 으뜸이다.

그가 완성한 '세한도'를 보노라면 '아!!!'하는 외마디 단음과 함께 번뇌들이 밀물처럼 쓸려나간다. 눈을 움직이지 못하겠다. 그만큼 제작방식이 까다롭고 섬세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는 '제자의 변함없는 지조'를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린 작품으로 현재 국보 제180호다. 이것은 당시 김정희 선생이 184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답례로 그려준 작품이다.


송림 정봉기 선생은 그때의 혼을 지금의 물푸레나무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송림 정봉기 선생의 작품 ⓒ 최미향

 
우리 인간에게 물푸레나무는 어떤 존재일까. 그늘을 만들어 휴식을 제공하고, 몸통 어느 하나라도 부족함 없이 모두 나눠주다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을 희생시키는 연료로, 또는 하나의 작품으로 재탄생된다.

이렇듯 과거 동양에서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희생시킨 나무에 독특한 무늬를 넣어 예술의 극치를 더 높인 서각들. 그 속에는 여전히 우리네 선조들의 애환과 한숨, 그리고 감성까지 더해져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수강생들의 작품 ⓒ 최미향

 
차가 식어갈 때까지도 유리창으로 보이는 은은한 등불이 어두운 앞마당을 고즈넉이 비춰주었다. 두 손을 공손히 받치며 차를 마시는 여행객에게 송림 정봉기 선생은 이곳을 찾는 학생들의 일상을 담담히 들려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시간이 멈춘 아랫목에서 편백 냄새가 났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 지난 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거창한 계획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하지만 시국이 어지러워 여전히 시도조차 하지못할 무렵 홀연히 떠난 짧은 여행.

등불 아름다운 곳, 서각의 명인 '봉대민속공예'. 선생의 마지막 꿈인 '대한민국 명장'이 되는 그날을 기대하며 행복한 봄의 초입을 건너고 있다.
 

봉대민속공예 송림 정봉기 선생 ⓒ 최미향

 
#봉대민속공예 #송림 정봉기 선생 #충남 예산군 #목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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