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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한밤중 굴러온 대권을 꿰차다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 (28)] 제10대 대통령 최규하 ①

등록 2020.04.13 15:24수정 2020.04.1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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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전 대통령 ⓒ 최규하기념사업회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말이다.

"I awoke one morning and found myself famous."(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

바이런은 1807년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이후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는 포르투갈, 에스파냐, 그리스 등지를 여행한 뒤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라는 시집을 발표했다. 그러자 그는 문단에서 갑자기 뜨거운 찬사와 큰 인기를 누리게 됐다. 그래서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1948년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제19대 문재인 대통령까지 모두 13분이다. 흔히 '대통령은 하늘이 낸다'고 말한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수십 년간 해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한 분도, 목숨을 내걸고 쿠데타를 한 분도, 재수·사수 만에 아주 힘겹게 대권을 움켜 쥔 분도 있다.

또 집안이 좋다고, 학벌이 뛰어나다고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서울 장안의 최고 명문가 자제도 경상도 두메산골 소작인 아들에게 패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 학벌을 가졌던 대법관 출신 정치인도 지방의 상고 출신에게 나가 떨어졌다.

후손의 대권을 위해 조상이 명당을 찾아 이사를 한 집안도 있다. 또 어떤 야망가는 대권을 거머쥐고자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상의 산소를 옮기기도 했다. 또 어떤 대권 후보자는 당적을 바꾸면서 발버둥을 치기도, 또 다른 이는 더플백에 현찰을 가득 담아 전국에 돈을 뿌리면서 대권에 도전했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대권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최규하 국무총리는 대통령직을 언감생심 꿈꾸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그랬기에 그는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고, 장수 총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1979년 10월 27일 새벽 2시, 그는 얼떨결에 당신 앞에 굴러온 대통령 권한대행 벙거지를 거저 줍다시피 꿰찼다. 그리하여 최규하는 최단 시일 내에 대권을 거머 쥔 행운의 사나이로 대한민국 대통령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최규하 후보롤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하다(1979. 12. 6.) ⓒ 국가기록원

  
대통령 유고(有故)

최규하. 그는 그 전날인 1979년 10월 26일 오후 8시 15분 무렵 총리공관에서 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즉시 청와대 제 방으로 좀 오십시오."
"왜 그러십니까?"
"지극히 중대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네에? 지극히 중대한 일이라뇨?"
"전화로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튼 빨리 이곳으로 오십시오. 매우 화급한 일입니다."


그 말에 최규하는 혹시 전쟁이라도 일어난 건 아닌가 하고, 서둘러 채비한 뒤 청와대로 향했다. 총리 공관과 청와대는 가까웠다. 그때가 오후 8시 30분 무렵이었다. 김계원은 급히 찾아온 최규하 국무총리에게 말했다.

"각하께서 매우 위독하십니다. 오늘 저녁 연회장에서 차지철과 김재규가 언쟁 끝에 총격전을 하다가 … 그만 …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 울고 난 뒤) … 그때 불이 꺼졌습니다. 그래서 '불을 켜라'고 소리지르니, 그제야 불이 들어왔고, 방안을 살펴보니까 차지철이, 그 건너편에는 각하께서도 쓰러져 계셨습니다. … 이 유고(有故) 사태에 무슨 조치를 취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네에!?"

최 총리는 경악했다. 평소 침착했던 그도 상상을 초월한 사태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지요?"

김 실장은 물에 빠진 사람처럼 말했다.

"일단 국무회의를 개최하여 여러 각료들의 중지를 모아야겠습니다. 우선 실장께서 국무위원들을 이리로 불러들이십시오."

그러자 김계원 비서실장은 여러 각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최 총리에게 말했다.

"노재현 국방장관은 이리로 못 오겠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총리께서 안전한 육본 벙커로 가셔야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그쪽으로 갑시다."


최 총리와 김 실장은 급전을 받고 달려온 구자춘 내무장관, 김치열 법무장관과 함께 곧장 삼각지 육군본부 벙커로 갔다.
  

원주시 봉산동 소재 최규하 생가 안 대문(2020. 4. 7.). ⓒ 박도

 
박 대통령 시신을 확인하다

그날 오후 9시 30분, 육군본부 벙커에는 최규하 총리, 김치열 법무, 구자춘 내무, 박동진 외무, 유혁인 청와대정무 수석 등이 급보를 받고 달려왔다. 그 자리에는 먼저 도착한 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정승화 육군참모총장도 있었다.

김 실장이 그날 밤 연회장에서 박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한 이는 김재규라고 발설하자 정 총장은 김진기 헌병감에게 은밀히 체포를 지시했다. 김 헌병감의 지휘로 사건 피의자 김재규를 일단 체포 연행했다. 그런 뒤 이들은 그곳에서 대통령 유고에 따른 현안을 논의, 다음 세 가지 점에 합의했다. 비상계엄 선포, 비상국무회의 소집, 미국 측에 통보 등이었다.

그날 밤 그런 혼란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대통령 유고 때의 권력 승계를 주도했던 이는 신현확 부총리, 김치열 법무, 구자춘 내무, 김성진 문공부장관 등이었다. 신 부총리는 비상계엄 선포에 이의를 제기했다.

"우리가 무슨 근거로 대통령 유고 사태를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 각료들 가운데는 아무도 유고된 각하를 본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이래 가지고 어떻게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자는 말입니까?"

그러자 최 총리가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김 실장이 각하가 안치된 곳을 알 터이니, 어서 거기로 안내하시오."

그 말에 김계원 실장은 최 총리, 신 부총리, 노 국방장관, 구 내무, 김 문공부장관 등과 함께 국군수도병원으로 갔다. 이들은 국군수도병원에 안치된, 이미 싸늘해진 박정희의 시신을 확인한 뒤 곧장 국방부로 돌아왔다.
 

제10대 최규하 대통령 취임 후 신임 각료들과 함께 기념촬영하다(1979. 12.). 앞열 오른쪽 네번째 최규하 대통령, 두 번째 홍일점은 김옥길 문교부장관이다. ⓒ 국가기록원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하다

그새 날짜가 바뀌었다. 1979년 10월 27일 새벽 2시 국방부 회의실에서 긴급히 소집된 비상 국무회의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사회를 보던 신현확 부총리는 모두(冒頭) 발언을 했다.
 
"박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우리가 직접 병원에 가서 확인하고 왔습니다. 그 사고 내용은 앞으로 상세히 밝혀지겠지만 이 사실을 전제로 국가위기 수습 방안을 의논해야겠습니다.

우리 헌법은 통치권자의 공석이 있을 때 지체없이 승계 순위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규하 국무총리께서 지금부터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셨으니, 이 점을 국무회의에서 먼저 확인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각료 중 어느 누구 한 사람 그 발언에 이의를 제기치 않았다. 헌법에 따른 규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최규하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신분이 됐다. 한밤 중에 대권이 그에게 저절로 굴러 온 것이다.

이후 40일만인 1979년 12월 6일, 당시 유신헌법에 따른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로 최규하는 마침내 '대통령 권한 대행' 꼬리표를 뗀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최규하 후보 10대 대통령 당선
최규하 대통령 권한 대행은 6일 제1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이날 상오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제3차 회의를 갖고, 고 박정희 대통령 서래(逝來,  서거에서 초래된)에 따른 제10대 대통령후보 보궐 선거를 무기명 비밀투표로 실시, 단일 후보로 추천, 등록된 최규하 후보를 재적 2549명 중, 2465표(무효 84표)의 절대 다수표로 선출했다. 최 대통령은 당선 즉시 임기가 개시됐는데 헌법상 1984년 12월 26일까지의 잔여임기를 재임하지 않고 헌법를 개정, 제11대 대통령을 선출한 후 정부를 이양하게 된다. - <매일경제신문> 1979. 12. 6.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조갑제 지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 강준식 <대한민국의 대통령> / 박영규 지음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등 수십 권의 참고자료와 동시대에 살았던 여러 사람들의 증언과 신문기사 등을 참고하여 쓴 기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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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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