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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6주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나는 나의 열아홉을 누구에게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등록 2020.04.16 13:36수정 2020.04.1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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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6주기를 앞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노량차량행진에 참가 차량들이 깃발과 피켓을 차량에 부착하고 행진에 참가하고 있다. ⓒ 이희훈

 
섣불리 봄기운에 취하기 힘든 시국에도 어김없이 꽃이 피었다. 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면 4월은 그 여왕의 행차를 돕는 화동 같다. 계절의 문패가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순간, 그 때의 찬란함은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는 새로움을 준다.

그런 봄이 가장 붉게 또 검게 물들었던 날이 있음을 분명히 기억한다. 6년 전 오늘,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오후 수업을 듣던 중이었다. 누군가 사고가 났다고 이야기했고 그 중에 자기가 아는 후배가 있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매일같이 반복되는 권태로운 학교 생활 속에서 치명적인 안전 사고를 예상할 수 있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야자시간이 되도록 사고가 수습되지 않자 독서실 칸막이 너머로 울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불안감에 핸드폰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선생님들은 말리지 않았다. 내가 겪은 세월호 사건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음 봄이 찾아왔을 때 나는 광화문을 가로 질러 등교를 하는,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단 성인이 되었다.

세월호 사건은 내 후배가 겪었기에 나도 겪을 수 있었고 그래서 내가 겪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다. 매년 4월 16일이 올 때마다 복잡한 심경에 휩싸이는 것 역시 당연하다. 사람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묻는다. 대한민국은 그 이후에 얼마나 바뀌었냐고.

사건 이후 정치인들은 '안전한 대한민국'을 버릇처럼 약속했다. 하지만 그건 정치인들이 감히 약속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잠잠하다 싶으면 세월호를 거론하며 표를 동정하거나 상대 당을 비방하는 것은 '안전한 대한민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안전은 우리 모두의 몫이고 그래서 누구 하나라도 안일하게 생각하는 순간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는 가치라는 것을. 세월호와 관련된 선장을 비롯한 그 모든 이가 '안전한 대한민국'에 대한 꿈이 있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임을. 그러니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약속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스스로 해야 한다. 6주기를 맞은 지금, 우리 스스로가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올해도 그 날처럼 위기의 봄을 견디고 있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기약 없는 감염 공포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부족한 인력과 기술, 시민들의 저조한 협조, 사재기 현상으로 인해 방역과 치료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빠른 대응과 의료진의 희생 정신, 높은 시민 의식이 빛을 발한 대한민국은 성공적으로 21대 총선을 치르고 해외로 진단키트를 수출하고 있다. 전세계는 대한민국의 높은 수준의 의료 기술과 투명성을 기반으로 한 행정력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안타까운 희생을 피하진 못했지만 그 규모를 줄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성과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세월호와 코로나19는 맥을 달리 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가 6년 전 받은 '안전'이라는 숙제를 조금씩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안전을, 그리고 내 이웃의 안전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작은 위안이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 '안전한 대한민국'은 정치인을 비롯해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순간에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게 6년 전 열 아홉의 봄은 가장 어둡고 추운 계절이었다. 그리고 6년 후인 스물 다섯의 봄, 나는 이 봄이 모든 아이들에게 권태로울 정도로 안전한 계절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어른의 몫을 다하는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다. 불의에 목소리 내고 정의를 지키는 어른이 될 것이다. 나는 나의 열아홉을 그 누구에게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회복되지 않는 상처로 괴로워하고 있을 그 모든 사람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겠지만 여러분은 그 때의 당신보다 더 강하고 더 많은 이웃들이 함께하고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월호 #6주기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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