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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 공원 찾는 사람들이 '불편한 숲길'을 찾는 까닭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을 산책하며 생각한 것들

등록 2020.04.27 15:44수정 2020.04.2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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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에는 세 종류의 길이 있다. 폭이 4m 정도의 큰길, 2m 정도의 작은길, 그리고 50cm 정도의 숲길. 큰길은 샛강의 줄기를 따라 길게 뻗어있는 공원의 주 도로, 작은길은 큰길에서 연못과 숲을 드나들 때 이용하는 연결로, 숲길은 숲 사이사이를 다닐 수 있는 좁다란 통로이다.

이 중 공원의 공식적인 설계로는 큰길과 작은길이다. 공식로답게 큰길과 작은길은 평평하게 잘 닦여 있다. 그러나 숲길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이어서 곳곳이 울퉁불퉁하고, 꾸불꾸불하다.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큰길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의 가장 넓고 긴 도로이다. ⓒ 강등학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작은길 생태공원의 주도로에서 생태숲과 생태연못으로 갈 수 있는 연결로이다. ⓒ 강등학

닦여진 길이 아니므로 숲길은 큰길과 작은길에 비해 다니기가 불편하다. 울퉁불퉁하므로 바닥을 신경 쓰며 걸어야 한다. 더러 다소의 경사가 있어 미끌어지지 않도록 발끝을 단속해야 할 곳도 있다.

그런가 하면 숲길은 좁아서 마주 오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잠시 서로 눈치를 살피며 어느 한 사람이 옆으로 비켜줘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꾸불꾸불하고 불편한 이 길을 다닌다. 나도 일주일에 3~4일은 이 길을 걷는다. 최근에는 숲길 애호가들이 더 늘어난 느낌이다. 도중에 잠시 비켜서 길을 내주는 일이 전보다 부쩍 늘었다.

불편하지만 즐거움이 큰 숲길
 

여의도 샛강 생태 숲길 여의도 샛강 생태숲길은 사람들의 소망으로 생겨난 자연길이다. ⓒ 강등학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하며 숲길을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숲길은 걷는 것이 즐겁다. 큰길과 작은길은 숲을 바라보며 지나치게 한다. 길옆에 나무와 풀들이 있지만, 마치 우거진 가로수 길을 걷는 느낌에 가깝다.

그러나 숲길을 거닐면 숲속의 여러 존재들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는 느낌을 받는다. 온갖 풀들이 발 가까이 와 있고, 때론 나뭇가지들이 내 어깨를 스친다. 이런 가운데 가끔씩 노랑, 빨강, 보라의 들꽃들이 여기저기서 보석처럼 환하게 나를 반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들꽃을 폰에 담아보면, 왠지 어떤 만족감이 차오름을 느낀다.
 

여의도 샛강 생태숲의 고깔제비꽃 곱게 핀 고깔제비꽃이 숲길을 즐겁게 한다 .꽃말도 '즐거운 생활'이란다. ⓒ 강등학

 
여의도 샛강에는 곳에 따라 폭과 깊이를 달리하며 길게 흐르는 개울이 있다. 이 개울은 큰길이나 작은길에서는 멀리 보이기도 하고, 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기도 한다. 그런데 숲길은 숲을 타고 이어지다가 곳곳에서 개울로 연결된다.

그래서 때로 숲 사이를 거닐다 개울로 나와 물의 생기있는 흐름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즐거움이 솟아난다. 길이 개울에 아주 근접해 있는 곳에서는 물의 흐름이 바로 발밑에서 느껴진다. 어쩌다 물길을 따라 지나가는 잉어나 붕어를 만날 때는 그 즐거움이 더욱 커진다.
 

여의도 샛강 생태숲의 개울 여의도 샛강 생태숲에는 폭과 깊이를 달리 하며 개울이 길게 흐른다. ⓒ 강등학

  

여의도 샛강 생태숲 개울에 노니는 잉어 여의도 샛강 생태숲 개울에서 잉어가 몇마리씩 어울려 옮겨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드물지만 붕어가 보일 때도 있다. ⓒ 강등학

 
사정이 이러하기에 숲길에는 큰길과 작은길로 채워지기 어려운 행복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의 사람들은 울퉁불퉁, 꼬불꼬불, 그리고 좁디좁은 숲길을 다닌다. 이 숲길들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있던 것은 아니다. 숲과 개울을 보다 가까이서 교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소망과 지향이 모여 생긴 것이다. 자연과 가까이 교감하고픔이 사람들을 숲속으로 이끌고, 이러한 지향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숲도 마침내 그 속내를 보이도록 허락한 것이다.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에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낸 길이 숲길 말고도 또 다른 것이 있다. 이상하게 이 공원의 주도로 일부는 시멘트길이다. 아무래도 이 길은 생태공원에 어울리지 않는다. 샛강에서 한강으로 나가는 길이 그렇다.

그런데 이 시멘트길 옆으로 숲길처럼 폭 50cm 정도의 좁다란 흙길이 길게 뻗어있다. 이 길은 이곳을 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이 무엇을 향해 있는지 알게 한다. 시멘트보다는 흙을 밟고 싶어 한 것이다. 나 역시 이곳을 지날 땐 시멘트길이 흙길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곤 했다.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에 있는 시멘트길 생태공원의 산책로에 시멘트길은 어울리지 않는다. 옆으로 난 좁은 흙길은 시멘트길에 동의하지 않는 이용객들의 표현이 아닐까? ⓒ 강등학

 
발로 난 길에 깃든 사람들의 소망

공사로 낸 길이 아니라, 발로 난 길에는 사람들의 소망이 놓여 있다. 기왕에 닦여진 길도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지 못하면 소망에 따라 결국은 새길이 난다. 지난 4월 15일에 실시된 21대 국회의원선거도 그렇다. 이 선거를 통해 국민들은 정치지형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이번 선거에 담긴 국민들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을 찾는 사람들의 지향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숲길을 걷는 즐거움과 흙길을 걷는 안락감을 느끼고자 할 뿐이다. 차기 국회에 새로운 길을 낸 국민들의 지향도 그리 복잡하지 않을 듯하다. 그것은 즐거움과 안락함이 있는 일상을 살며 더이상 정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야말로 소박하고 단순한 소망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쉽게 올 수 있겠는가? 그동안 정치가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보다는 국민이 정치를 걱정한 시간이 더 많지 않았던가? 그래도 이번 선거를 계기로 국민의 정치 걱정이 좀 줄었으면 좋겠다.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숲길을 거닐며 문뜩 떠오른 엉뚱한 생각이다. 순간 숲속의 나무와 풀, 꽃들에 집중하지 못했음에 슬그머니 미안함이 느껴진다. 신록을 이룬 숲속의 친구들이 오늘 더욱 산뜻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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