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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이광재의 질문 "아빠, 그런데 원주갑이 뭐야?"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124] 코로나19시대,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방법

등록 2020.04.28 15:41수정 2020.04.2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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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를 합시다 ⓒ 이희동

 4월 총선을 맞아 아이들 역시 선거에 관심이 많았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볼 수 있는 홍보물에도 눈길이 갔지만, 3개월 간 회사를 나가지 않던 아빠가 4월 들어 무슨 진선미 선거대책본부 마을혁신위원회 부위원장 임명장을 받아 오는가 싶더니 걸핏하면 약속이 있다고 자주 집을 나간 탓이다. 게다가 엄마도 가끔 아빠와 함께 했다.

퇴근 시간에 맞춰 2시간 정도 지하철역에서 투표 독려 캠페인을 한 뒤 집에 돌아오니 가장 호기심 많은 둘째가 질문을 했다.

"아빠, 나가서 뭐하고 왔어?"
"응? 선거운동하고 왔지."
"아빠도 나가서 막 손 흔들고 1번 찍어달라고 했어?"
"아니. 아빠는 그냥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에게 꼭 투표하자고 피켓만 들었어."
"그게 선거운동이야? 다른 사람 보니까 파란 옷 입고 춤도 추고하던데?"
"아빠는 그런 역할이 아니야. 대신 글 쓰고, 투표 독려하고, 또 센터장이었으니까 동네 사람들을 많이 알잖아? 그 사람들한테 꼭 투표하자고 하는 거야."


눈치를 보아하니 아이는 어리둥절한 듯했다. 선거운동이라고 하면 유세차를 타고 다니면서 율동을 하거나, 후보 얼굴이 큼지막하게 박힌 피켓을 들고 다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빠는 그렇지 않다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아빠, 왜 우리동네는 후보가 다 여자야?"

 

기호1번 지지자 ⓒ 이희동

 
이번에는 옆에서 아빠와 동생의 대화를 지켜보던 첫째 까꿍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빠, 이번에는 누구를 뽑는 거야?"
"국회의원."
"그게 뭐하는 건데?"
"우리를 대신해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 사람을 뽑는 거야. 4년에 한 번. 저번에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사람들이 국회의원이지."


까꿍이는 대충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4년 전에 같이 투표를 하고 사진 찍은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녀석은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처음 같다고 했다. 그래, 8살이면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지. 그런데 녀석이 갑자기 전혀 생각지도 않은 질문은 던졌다.

"그런데 아빠, 왜 우리 동네에는 후보가 다 여자야? 국회의원은 여자만 하는 거야?"
"응? 아니야. 국회의원은 여자나 남자나 다 될 수 있어. 그냥 우연이야."
"그럼 나도 국회의원 한 번 해볼까?"
"국회의원 되기 쉽지 않아.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야 하고. 힘들어."
"피. 하면 되지 뭐."

 

강동갑 국회의원 후보, 여자만 셋 ⓒ 이희동

왠지 뿌듯했다. 정치라고 하면 항상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거라고 생각하던 아이들이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정치를 몸소 느끼는 것 같았다. 정치는 우리와 그렇게 멀게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사회를 바꾸지 위해서는 우리의 일상을 정치화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말이 나온 김에 아이들을 데리고 정치 유세 현장으로 나갔다. 광화문처럼 대규모 군중은 아니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동네 사거리에 모여 기호 1번을 연호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낯설어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박자에 맞추어 구호를 외치는 아이들. 녀석들에게 이번 총선이 민주주의의 체험으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아빠, 저 잠바 갖고 싶어"

며칠 뒤, 이번에는 총선과 관련된 뉴스를 보던 8살 막내 복댕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자신과 이름이 같은 이광재 후보의 잠바를 본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 마디.

"아빠, 나 저 잠바 갖고 싶어. 얻을 수 없나?"
"응? 저 파란색 잠바? 너한테 크지 않을까?"
"괜찮아.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크면 입지 뭐. 내 이름도 있고 멋있잖아."

 

동영상 찍고 있는 막둥이 ⓒ 이희동

 
대부분의 부모는 말도 안 되는 아이의 바람이라고 넘겼겠지만, 퍼뜩 원주에 살고 있는 나와 가장 친한 사촌동생이 떠올랐다. 그래, 좌고우면 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녀석이라면 캠프에 가서 잠바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녀석이 살고 있는 곳이 이광재 후보의 지역구인가부터 확인했다.

"혹시 네가 살고 있는 곳이 이광재 후보가 나오는 원주갑이냐?"
"응. 우리 집 바로 옆에 선거 사무실이 있던데. 요즘 재택근무라서 금방 다녀올 수도 있어."


그렇다고 사촌동생에게 다짜고짜 캠프 가서 잠바를 얻으라고 할 수도 없는 법. 막내가 나오는 동영상을 하나 찍기로 했다. 설마 8살 아이가 이렇게 간절하게 잠바를 얻고 싶다는데 모른 척 할까. 마당에 나가 막둥이와 동영상을 찍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동구 암사동에 사는 이광재라고 합니다."
"뭐를 가지고 싶나요?"
"이광재 잠바요."
"누구를 지지해요?"
"1번 이광재. 아빠, 그런데 원주갑은 뭐야?"


동영상을 갈무리한 뒤 사촌동생에게 보냈고, 사촌동생은 잠바를 얻을 수 있냐며 그 동영상을 원주 이광재 후보 캠프에 전달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이 이광재가 강원도의 이광재 후보를 지지한다며 페이스북 이광재 후보의 계정에 그 동영상이 게시되었다. 얼렁뚱땅 벌였던 일이 진짜로 커져버린 것이다.

 

이광재 후보의 페이스북 ⓒ 이광재 페이스북

 
이후 이광재 후보 캠프와 직접 연락이 닿았다. 나는 5월 어린이날을 맞아 막내에게 선물로 잠바를 주고 싶다고 했고, 캠프 측은 다행히 잠바 새 것이 하나 남아 있긴 한데, 이것을 주는 것이 선거법에 걸리는지 확인해본 다음에 연락하겠노라고 했다. 캠프측에서 어린이날 맞춰 보내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이제 곧 자기 이름이 박힌 잠바를 입을 수 있다며, 그때부터 유심히 뉴스를 챙겨 보기 시작했다. 아내에 따르면 내가 개표 참관 간 사이 막둥이는 엄마와 개표방송을 보면서 오로지 강동갑과 원주갑에 집중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광재 후보가 당선확정 되자 자신이 국회의원의 된 것 마냥 좋아했다던가.

선거는 흔히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당사자들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절체절명의 한 판이지만, 이 땅에서 보통의 삶을 영위하는 이들에게 선거는 때가 되면 돌아오는 즐거운 축제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민주주의 공화국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민주시민으로서 우리 아이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조금이나마 민주주의를 느꼈으면 한다. 우리가 그 추운 겨울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친 건 이런 축제를 즐기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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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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