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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극형, 부하들은 살려주길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 / 42회] "저의 부하들은 착하고 양같이 순한 사람들입니다"

등록 2020.06.04 19:39수정 2020.06.0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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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와 박선호 철모를 쓴 군인 사이에 앉아 있는 사람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이고, 포승줄에 묶인 채 김재규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의전과장 박선호다.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의 주요 임무는 한 달에 10회 정도 열리는 대통령의 연회 자리에 여성을 ‘조달’하는 ‘채홍사’ 역할이었다. 김재규와 박선호는 대구 대륜중학교 사제지간이기도 하다. 대륜중고등학교는 일제강점기 도서관을 통해 국권을 되찾으려 했던 ‘우현서루’의 명맥을 이은 곳이다. 김재규와 박선호 두 사제는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 국가기록원

 
김재규의 부하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평소 인간적 신뢰가 있었기에 그들은 거사 당일 사전 모의가 없었는데도 말 한마디에 거침없이 죽을 자리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최후 진술에서도 자신은 죽이더라도 명령에 따랐을 뿐인 부하들은 살려 줄 것을 간절히 호소하였다. 최후진술의 마지막 대목이다.

또 입법부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진정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라면 국민의 갈망을 받아들여 10ㆍ26혁명 지지 결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 동안 긴급조치 9호 해제를 결의했지만, 지엽적인 일입니다. 더 긴급한 것은 자유민주 회복뿐이므로 자유민주주의 회복결의가 더 원천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모든 것을 체념하고 가만히 눈감고 생각하면, 저의 혁명이 원인이 되어 혼란이 오고 국기마저 흔들릴 요인이 생길까 봐 몹시 걱정이 됩니다.

최 대통령에게 지금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상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정치는 냉혹한 것이니 제가 아무리 밉더라도 밉다고 생각지 말고 저를 끌어내어 저와 같이 혁명과업을 수행합시다. 저와 함께 국가의 핵을 만들고 중심 세력을 만듭시다. 국가의 장래를 반석 위에 올려놓읍시다. 이러한 이야기가 현재 분위기로 보아 받아들여질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진정 나라의 장래를 걱정한다면 감정을 초월해서 이성으로 돌아가 냉혹하게 정치 현실을 전망하여 국사를 그르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 한겨레 21

 
재판부에 말씀드립니다. 연일 공판에 매우 피곤하실 텐데도 장황한 이야기를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세상을 하직하고 가더라도 여러분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고 가겠습니다.

저는 오늘 마지막으로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20~25년 앞당겨놓았다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자부심을 가지고 갑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이 잘되도록 기원합니다. 대한민국의 앞날에 '자유민주주의 만만세'를 기원하고, '10ㆍ26 민주혁명 만만세'를 기원합니다. 다만 제가 이 세상을 빨리 하직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만발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가는 그 여한이 한량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이 기약되어 있기 때문에 제가 못 보았다 뿐이지 틀림없이 오기 때문에 저는 웃으면서 갈 수 있습니다. 저의 소신에 의한 행동이니 그에 알맞은 형벌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저의 부하들은 착하고 양같이 순한 사람들입니다. 너무 착하기 때문에 저와 같은 사람의 명령에 무조건 철두철미하게 복종했으며, 또 그들에게 선택의 여유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볼 때 죄를 지었고, 저의 입장에서는 혁명을 했습니다만, 그러나 모든 것은 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다고 해서 법의 효과를 얻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하나 중정부장을 지낸 사람이 총 책임을 지고 희생됨으로써 충분합니다. 저에게 극형을 내려주시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극형만은 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박 대령은 단심(單審)이라 가슴이 아픕니다. 매우 착실한 사람이었고, 가정적으로도 매우 모범적이고 결백했던 사람입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사관학교에 지망했고, 지금 선두로 올라오는 대령입니다. 군에서는 더 봉사할 수 없겠지만, 사회에서 더 봉사할 수 있도록 극형만은 면하게 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두서없는 말을 장황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주석 9)


주석
9> 이상, 안동일, 앞의 책, 299~307쪽, 발췌.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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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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