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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 858, 문재인 정부의 현지 조사를 지지한다

[주장] 수색과 재조사는 정당하다

등록 2020.05.28 17:21수정 2020.05.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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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기 동체 추정 물체 관련 보도. 2020년 5월 1일 '대구MBC 보도특집' 화면 갈무리. ⓒ 대구MBC

  
올해 초 우여곡절을 거쳐 대한항공(KAL) 858기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들이 발견됐다. 실종자 가족들과 지인들이 말 못 할 아픔 속에 몇 번에 걸쳐 추진했던 작업, 이 노력이 심병철 기자를 중심으로 한 대구MBC의 집념으로 결실을 보았다.

1987년 11월 29일 비행기가 수많은 이들과 사라졌다. 12월 16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와 전두환 정부는 이 사건을 노태우 후보의 "대선사업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였는지 정부는 이를 북의 폭탄테러로 재빨리 규정했다. 수색 시작 닷새 만에 성과 없이 철수 계획부터 세웠다. 그 정부를 대신해 민간인들이 30년이 훌쩍 지나 버마(미얀마) 인근 바다에서 물체들을 촬영해왔다.

전두환 정부가 하지 않은 일, 민간인과 문재인 정부가 나서

수심 약 50m에서 발견된 물체들은 비행기 왼쪽 날개에 붙어 있는 엔진, 꼬리 날개 부분 등이다. 여러 정황상 KAL 858기의 것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결과적으로 북의 테러일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잔해와 확실한 물증 없이 수사 결과를 믿으라 했던 전두환 정부. 이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는 현지 조사를 위해 버마와 협의 중이라고 한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수색을 계속 촉구했고, 사건 자체에 대한 재조사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반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조만간 임진왜란도 재조사하자고 할 판"(미래통합당 논평, 5월 25일), "또 과거 뒤집기"(조선일보 사설, 5월 27일), "과거사 뒤집기로 분열 조장하나"(동아일보 사설, 5월 27일), "과거사 집착하는 집권여당"(중앙일보 사설, 5월 27일), "여권이 추진 중인 '퇴행 정치' 목록"(세계일보 사설, 5월 27일).


이러한 반응들은 공교롭게도 민주당이 제기하고 있는 몇 가지 '과거' 사안 논란들과 섞여 나오고 있다. 그래서 정부의 현지 '수색'을 반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건 자체에 대한 '재조사'를 반대하는 것인지 모호한 점이 있다. 이들 대부분의 핵심 논리는, 노무현 정부의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발전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 사건을 재조사해 북의 테러로 결론 내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재조사 반대 입장의 문제점
  

KAL858기는 사건이 있기 얼마 전인 1987년 9월 기체 고장으로 동체착륙을 한 적이 있다. 사진은 당시 KAL기의 실제 왼쪽 모습. 1987년 9월 2일 'MBC 뉴스데스크' 다시보기 화면 갈무리. ⓒ MBC

 
국정원 발전위원회 부분은 맞지만 진실화해위원회 부분은 틀리다. 진실화해위원회는 KAL 858기 사건에 대해 2007년 재조사를 시작했지만, 실종자 가족들이 신청을 취하해 2009년 조사가 중단된다. 결론이 없었다. 따라서 진실화해위원회도 사건이 북의 테러가 맞다고 했다는 말은 틀렸다. 나아가 위원회는 국정원 발전위원회 조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나는 2016년 정보공개를 청구해 진실화해위원회 재조사 기록을 열람했다.
 
"발전위 중간발표문 분석 결과 핵심 쟁점에 대한 의혹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으며 … 몇 안 되는 진술인들의 진술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으며, 특히 안기부 관련자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지나칠 정도이고, 안기부 생산자료를 아무 의심 없이 증거로 채택하였고 … 주요 쟁점에 대한 사실관계 판단을 입증자료 없이 추정 판단한 경우가 여럿 있는 것으로 판단됨"(DA0799644, 105쪽).

 
국정원 발전위원회는 중간조사 결과를 2006년에 발표하고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최종결과를 2007년 공개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이 조사를 문제 삼은 것인데, 아쉽게도 그 자신이 철저한 조사를 하기에는 권한 부족 등 한계가 많았다. 아울러 국정원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개입하려 했다. 예컨대 국정원은 위원회가 김현희 면담을 추진할 때 세부 사항을 협의해주라고 요청했고, 담당 조사관은 그것이 "효율적"이라며 조사의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하려 했다(DA0799649, 8쪽). 이런 과정 등을 보면 가족들이 진실화해위원회 재조사 신청을 왜 취소했는지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국정원 발전위원회 조사는 어땠을까? 나는 앞서 말한 진실화해위원회 지적에 동의한다. 곧, 국정원 조사와 그 결과는 구조적 한계 등의 문제로 부족한 점을 많이 드러냈다(박강성주, <KAL 858, 진실에 대한 예의: 김현희 사건과 '분단권력'>, 212~229쪽). 물론 위원회는 나름대로 노력했고 성과도 냈다. 하지만 폭파범으로 알려진 김현희를 조사하지 못했다는 치명적 결함을 보였다. 그럼에도 위원회는 KAL 858기 사건이 "북한 공작원에 의해 벌어진 사건임을 확인"했다고 밝힌다(국가정보원,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III>, 560쪽). 무리한 결론이었다.

당시 조사를 맡아 최선을 다했던 민간위원도 이 한계를 인정했다.
"정작 사건의 주범인 김현희에 대한 면담 조사가 무산됨으로써 조사 결과에 대한 대국민 신뢰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말았다"(이창호, "국가정보원 진실위원회 활동에 대한 평가," <민주법학> 37호, 9쪽).


결국 KAL기 재조사를 반대하는 입장에는 문제가 있다. 첫째 국정원 발전위원회의 문제적 결론을 맥락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고, 둘째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활동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정부는 기체 추정 물체에 대한 현지 '수색'을 말하고 있지, 전면적인 '재조사'를 얘기하고 있지 않다. 수색은 항공 사고 및 사건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하겠다.

현지 조사가 중요한 이유

한편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동체 '추정' 물체가 KAL 858기의 것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최종교신 지점 문제와 연결된다고 알고 있다(Tolis-Urdis-Tavoy 순서). 이번에 발견된 물체는 당시 교신 지점을 기준으로, 버마쪽 바다에 있는 Urdis와 땅에 있는 Tavoy(현 Dawei) 사이에 있다. 이는 공식 수사 발표 등에 바탕을 둔 것이고, 이에 따르면 최종교신 지점은 Urdis이다. 그런데 최종교신 지점이 인도와 버마가 같이 관할했던 곳으로  Urdis에 앞선, Tolis였다는 진술과 정황도 있다(서현우, <KAL 858기 폭파사건 종합 분석 보고서>). 이에 따르면 이번 수색 지점은 KAL 858기 실종 추정지와 굉장히 떨어져 있고, 따라서 그 물체들은  KAL기의 것이 아닐 수 있다.
  

KAL858기는 사건이 있기 얼마 전인 1987년 9월 기체 고장으로 동체착륙을 한 적이 있다. 사진은 당시 KAL기의 실제 오른쪽 모습. 1987년 9월 2일 'KBS 9시 뉴스' 다시보기 화면 갈무리. ⓒ KBS

 
해석의 차이가 있겠지만, 바꿔 말하면 물체를 검증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 수 있다. KAL 858기는 수직 꼬리 날개 밑, 가운데, 윗부분에 각각 비행기 고유번호(HL7406), 대형 태극 문양, 소형 태극기 표식을 달았다고 아는데, 식별이 가능했으면 한다. 왼쪽 날개에 부착된 엔진의 경우 1번이라면 P644017, 2번이라면 P644022 등록번호가 있을 것이다(비행기 엔진은 보통 맨 왼쪽 것부터 번호를 매긴다). 아울러 꼬리 아래 근처에 있었을 비행자료기록장치와 조종실음성기록장치, 곧 블랙박스를 찾아낼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이러한 과정 등을 거쳐 물체들이 KAL기의 것으로 '확인'되면, 가장 먼저 뒤따라야 할 조치들 가운데 하나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할 수 있는) 실종자들 몸과 물품 수습이라 생각한다.

국제규범에 따른 재조사 가능성
 

그리고 물체들이 KAL기 동체로 확인되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협약에 따라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진행될 수 있겠다. 김성전 항공전문가도 지적했지만, 협약 부속서 13의 5장 13항은 조사가 끝난 사건에 대한 "새롭고 중대한 증거(new and significant evidence)"와 재조사 문제를 규정하고 있다. 당시 항공기구에 보고서를 냈던 버마가 재조사를 하게 되는데, 한국이 버마의 동의를 얻어 대신 할 수도 있다. 이 재조사는,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한국 정당과 언론의 반대와는 상관없이 진행될 수 있다. 원칙적으로 국제규범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설훈 민주당 의원 관련해 구체적으로 짧게 덧붙이고자 한다. 설 의원은 노무현 정부의 국정원 조사 관련해 당시 국정원 안에서 재조사를 방해한 세력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반드시 있었다고 보고, 그리고 그것이 작용했다고 보죠"(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2020년 5월 25일). 그랬을 듯싶다. 국정원 위원회 활동을 중간에 그만뒀던 관계자에 따르면 "국정원 측이 드라이브[제동]를 거는 사건은 정해져 있었"고, 여기에는 KAL기 사건도 포함됐다(장윤선, <오마이뉴스>, 2006년 11월 21일).

국정원이 제동을 걸었던 KAL기 재조사

또한 국정원이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설문조사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선정이 부적절한 과거사 조사대상 사건" 1위는 KAL 858기 사건으로, 50%를 차지했다. 2위 정수장학회 사건 19%와는 압도적 차이가 난다(흥미롭게도 "반드시 규명해야 할" 사건 1위도 KAL기 사건이었다.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I>, 53~54쪽).


설 의원의 말대로 이 사건은 실종자 가족 입장에서 유품도 없고 유해도 없는, "너무나 아무런 내용이 없는" 사건일 수 있다. 지금이 그 내용을 채울 수 있는 순간이길,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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