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아저씨와 전단지 알바, 쫓고 쫓기는 추격전

[나의 전단지 알바노동기] 전단지 알바 5년 차의 이야기 1-3

등록 2020.05.29 10:53수정 2020.05.2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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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요즘 아파트 보면 다 외부인 못 들어오게 공동현관문에 번호키 있어서 비밀번호 입력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전단지 알바들은 어떻게 들어오냐고.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지하 주차장을 통해 들어가거나 아니면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 누가 들어가면 재빨리 따라 들어가거나.

처음 전단지 알바를 시작했을 때 나는 첫 번째 방법을 몰라서 두 번째 방법을 사용했다. 내가 전단지를 부착하러 다녔던 전주 인후동에는 오래된 아파트와 신축 아파트가 공존해 있었는데, 공동현관문에 번호키가 없는 낡은 아파트를 갈 때면 그냥  들어가면 되니 매우 편리했다.

하지만 번호키가 있는 아파트가 걸리면 현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가 누가 들어가면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그 찰나의 순간에 뛰어 들어갔는데 그때의 관건은 무조건 빨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못 들어가니까. 어쩌면 근력과 빠르기는 어느 정도 타고난 내 신체조건이 도움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후 나는 소리 없이 움직인다고 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너 전직 암살자였니?" 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 어쩌면 그건 눈에 띄지 않고 있다가 재빨리 뛰어 들어가야 했던 그때의 버릇이 남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경비아저씨를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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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파트의 경비원(기사 내용과 무관함) ⓒ 연합뉴스

  
사실 전단지 알바에게는 중요한 '제1원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경비아저씨를 조심하라'이다. 경비아저씨에게 걸리면 그 아파트는 그날 못한다고 보면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가져간 전단지를 뺏기는 수가 있다.

경비아저씨도 고용된 입장이다 보니 주민들이나 관리사무소에서 시키는 대로 외부인 출입을 막고 전단지 붙어 있으면 일일이 떼야 하다 보니 그러는 건 알겠지만, 돈 벌러 갔다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야단맞고 전단지까지 뺏기면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당장 나에게 화를 낸 경비아저씨에게 그 원망이 향할 수밖에.

머리로는 이 사람도 시켜서 그런다는 걸,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마음은 원망이  앞선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사람들끼리의, 돈을 벌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끼리의, 약자끼리의 다툼이 이토록 극명히 드러나는 현장이 전단지 알바 현장이건만 여태 가시화된 것이 없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처음 경비아저씨를 마주쳤을 때는 전단지 알바를 시작하고 며칠이나 일주일쯤 지난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공동현관문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 들어가는 주민을 따라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여느 때처럼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1층까지 현관문마다 전단지를 붙이고 내려왔다. 그리고 현관문을 나오는 순간, 경비아저씨와 맞닥뜨렸는데 한동안 서로 보고만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망했다' 하는 심정이었고, 경비아저씨는 '아이고' 하는 표정 그 자체였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하고 묻는데 아니, 나를 잡으러 기다리고 있을 정도면 폐쇄회로(CC)TV로 다 봤을 텐데 또 왜 묻는단 말인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자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죠?"라는 말이 이어온다. 여기에 대고 뭐라고 더 말하겠는가. "죄송합니다" 하고 아파트를 나갈 수밖에. 여기서 참 타이밍이 절묘했던 게 내가 그렇게 경비아저씨와 마주칠 때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나는 어떻게 된 인간인지 모르겠는 게 죄송하다고 나갔으면서 또 아파트로 들어갔다. 내리는 빗방울을 맞으면서 빵을 우물거리고 있다가 '이제 들어가도 되겠지?' 하고 들어갔으니 말이다. 이후 나는 태연하게 그 아파트 단지를 모두 돌며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내가 처음 겪은 경비아저씨와의 추격전은 나의 승리로 끝났지만, 요가학원 사무실까지 가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세상이 하도 흉흉해서 외부인 들어오는 거 무섭다는 것도 알고, 전단지 붙여놓으면 짜증 나는 것도 아는데요. 전단지를 붙여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돈이 궁해서 당장 이 일이라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당장 돈 한 푼이 없고 아쉬워서 전단지라도 붙여야 하는, 대체 나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살란 건데?'

[나의 전단지 알바노동기]
1-1. "알바비 45만원, 30회 이상 일해야 줍니다" http://omn.kr/1no5d
1-2. 아파트 꼭대기층부터 1층까지... 욕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http://omn.kr/1nopj
덧붙이는 글 기자가 직접 겪은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이러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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