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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에세이 같지만 내용은 '동물들의 지옥계'

'아무튼, 비건'을 읽고

등록 2020.06.02 17:03수정 2020.06.0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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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늘 소화가 안 되고 어깨는 누가 올라가 있나 의심이 들 만큼 무겁고 얼굴은 흙빛이 되어 한의원을 찾았다. 8체질을 분석해 내게 맞는 체질을 알려주고 그 체질에 맞는 식습관으로 치료하는 곳이었는데, 나는 8체질 중 금음 체질이라고 했다. 이어 한의사가 설명해 주는 금음 체질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은 가히 절망적이었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설명하는 게 빠르겠다. 내 체질에 맞지 않아 절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으로는 '모든 육류, 모든 유제품'이었는데 이 두 카테고리를 빼면 내 식습관에서 남는 건 10%가 될까 말까였다. 육류와 유제품으로 식단 대부분이 채워졌던 나는 내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거의 매일 입으로 넣고 있던 거였다.

물론 지금도 모든 육류와 유제품을 끊지는 못했다. 그 와중에 덜 알레르기가 올라오는 제품을 찾아 기어코 먹는 식으로. 예를 들어 우유는 먹으면 알레르기가 바로 올라오지만 치즈는 괜찮아서 '아 나는 유제품 알레르기가 아니라 유지방 알레르기인가 보다'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유제품 소화를 돕는 영양제를 알아보기도 한다.

어쨌거나 나는 육류를 소화시키기 어려운 내장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채식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혼자 식단과의 싸움을 하던 중 그러려면 차라리 비건식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친구의 추천으로 <아무튼, 비건> 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비건은 금음 체질이라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거나 단순히 채식주의자 정도의 범주가 아니라 보다 넓은 사회적 활동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튼, 비건 @위고 ⓒ 김지영

 
저자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공장식 축산'을 비판하며 비건을 하나의 시민 소비자운동으로 본다. 지구에 사는 인간이라면 환경과 건강 문제를 무시할 수 없고 사회 구성원이라면 이를 무시할 권리도 없다는 것. 그리고 비건 운동의 전략도 보편적이고 단순하게 공장식 축산에 대한 수요를 없애거나 대폭 축소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구매력을 결집하는 것이다.

나는 공장식 축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계란 파동이 일어났을 때 뉴스에 비치는 닭장을 한 번 봤거나, 돼지 인플루엔자가 일어났을 때 미디어가 담은 돼지 우리를 스쳐 본 정도가 전부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대량 소비를 맞추기 위해서 대량 생산을 해야 하니까 그에 맞는 일련의 작업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 '일련의 작업'들, 예를 들어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암소를 가둬 강제 임신을 시키고 살아있는 동안 내내 젓을 짜내어 20년을 살 수 있는 소를 혹사시켜 5년 만에 죽게 한다거나, 병아리가 태어나면 암컷은 계란 낳는 곳으로 보내 가둬버리고, 수컷은 필요가 없으니 기계에 갈아 바로 죽여버린다거나 하는 것들, 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몰랐다기보다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마트에 달걀과 우유가 끊임없이 공급될 수 있는 시스템이구나 했다.

더 나아가 저자는 과연 인간의 편의를 위해 동물을 식용, 반려, 관광, 의류용 등으로 범주화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묻는다.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진 않지만 개,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들이 많은데 그들은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식용 동물을 먹고 밍크를 입는다. 나는 이 점도 이상하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인간끼리 소유하는 제도가 노예제였다. 이 부적절한 소유관계는 철폐되었다. 이제 그 어떤 근로자도 사용자의 소유가 아니라 상호 계약관계에 있을 뿐이다. 왜 동물은 여전히 사유재산이 될 수 있을까. 동물을 아직도 노예, 또는 노예보다도 못한 물건이다. 농장의 소는 식품, 펫숍의 강아지는 반려 상품, 보신탕의 개는 보양 상품, 아쿠아리움의 돌고래는 관광상품이다."
- 아무튼, 비건 p68

생명을 가진 데다가 고통을 지각하는 동물을 우리가 이처럼 노예화하거나 상품화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하므로 동물 착취는 정당화된다는 인간 우월주의가 팽배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도 이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인간 우월주의 본능 때문이라고 해도 정당화될 수 없어 보인다. 
 
인간의 윤리를 동물의 행동 생태에 기초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은 오히려 자연의 원리로 흔히 통용되는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벗어난 문명인으로서 높은 수준의 윤리, 상호 배려와 인간성을 이뤘다. 동물 착취를 정당화 할 때는 인간의 우월함과 특별함을 들먹이다가 야만적이고 비윤리적으로 행동하고 싶을 때는 "우리 역시 어쩔 수 없는 동물일 뿐"이라며 책임을 내팽개치는 편의주의적이고 비겁하며 앞뒤가 안 맞는 태도이다.
- 아무튼, 비건 p109

'얼굴 있는 건 먹지 않는다'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얼굴이 있다는 건 표정이 있고 표정은 감정이 있다는 뜻이다.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에게 공장식 축산이라는 시스템이 가하는, 홀로코스트의 몇 백 배나 잔인한 행위들에 일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스트레스 받아 가며 살육된 동물을 먹으면서 인간의 건강이 좋을 리 만무하다.

동물들의 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사료로 쓰이는 농작물로 인한 산림파괴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지구 온난화 주범인 탄소 배출의 18%를 축산업으로 추산하는데 이는 비행기, 자동차, 선박 등모든 교통수단을 합친 13% 보다 높다. 또한 가축 사료 재배를 위한 경작지 확보를 위해 해마다 이탈리아만한 크기의 산림이 사라진다고.

이 책을 읽고 내가 비건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 받는다며 치맥을 찾지만 마음이 불편한 정도의 인간이 될까. 시간이 지나면 육식에 대한 경각심은 잊은 채 단백질이 부족해 힘이 없다며 고기과 계란을 찾게 될까.

일단 해산물은 먹는 페스토 베지테리언으로 시작해 볼까. 과연 나의 뇌는 수십 년간 세뇌된 단백질 영양소를 채식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표지는 발랄한 비건 에세이 같지만 내용은 동물들의 지옥계를 보여준다.

아무튼, 비건 - 당신도 연결되었나요?

김한민 (지은이),
위고,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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