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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때야 할까?

책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를 통해 생각해 본 우리 삶

등록 2020.06.05 09:31수정 2020.06.0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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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 고운이가 떠난 지 벌써 이렇게 지났구나.' 막내 시누이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아직도 그의 부재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희고 고운 얼굴에 항상 따스한 미소를 띠고 있던 사람.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현명하고 착했던 이.

나는 종종 "내가 나이는 더 많지만, 아가씨가 언니 같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그렇게 모든 이에게 친절하다 보니 본인의 마음이 고단했던 걸까? 암이라는 병으로 어린 두 아이를 두고 젊은 나이에 서둘러 이 세상을 떠나갔다. 너무 아깝고 안타깝다.

나를 포함한 가족들은 이 황망한 이별 앞에 어떤 이유라도 찾고 싶어 했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너무 착해서, 너무 참아서 등등.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던 아가씨의 삶을 안타까워 하는 말들이지만 결국은 왜 그렇게 착하고 성실하게 살던 사람에게 이런 불행이 닥쳤을까 하는 마음 아픈 질문이었다.
 

ⓒ 이경희

 
흔히들 우리는 불행을 마주하면 하늘의 섭리나 하느님의 깊은 뜻을 운운하며, 새옹지마라거나 너에겐 이 고난을 극복할 힘이 있다거나 아니면 하느님이 너무 사랑하셔 그를 먼저 데려갔다는 등등의 위로를 하거나 듣는다.

하지만, 건강을 잃어 회복 불구 상태가 되거나 배우자나 자식의 변고를 지켜봐야 하는 경우나, 평생을 일궈온 지위나 재산을 믿었던 이의 배신으로 하루아침에 잃어야 하는 경우 등등. 세상이 공평하다면 겪지 말아야 할 일들이 정말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을 위한 하늘의 섭리일까?

답답한 마음에 오래 전 읽었던 책을 다시 찾아 들었다.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라는 제목의 책이다. 지금은 절판된 책이지만, 제목이 그렇게 내 마음에 와 닿을 수가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유대교 랍비인 종교인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그것도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조로증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부터 질문과 탐구가 시작된다. 저자는 우리가 겪는 불행이 하나님의 섭리일까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우리가 당하는 갑작스러운 불행에 대해 "왜 그럴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하는 원인에 천착하지 말라고 한다. ⓒ Pixabay

 
종교인이 쓴 불행에 대한 탐구이지만 나는 이 책의 내용이 하나님이나 종교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교가 없는 나는 이 책을 우리가 생활 속에서 흔히 던지는 질문, 아니 질문이라기보다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던지는 절규에 대해 해답을 찾고자 하는 우리 삶에 대한 성찰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책에도 '하느님을 변호하거나 하느님에 관해 설명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삶으로부터 상처받은 한 종교인으로서 병마와 죽음, 부상이나 소외, 절망 등으로 상처받은 사람들과 이 세상에 정의가 있다면 이보다는 좀 더 나은 취급을 받아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을 뿐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면서 이 책은 우리가 당하는 갑작스러운 불행에 대해 "왜 그럴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하는 원인에 천착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불행은 누구의 뜻도 심지어 하느님이나 하늘의 뜻도 아닌 불가항력적인 현상이라는 거다.

그러기에 누군가의 행동들을 연말 정산하듯이 이런저런 공식에 의해 계산해서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찌질한 하느님을 떠올리지도 말고, "내가 좀 더 잘 해야 했다. 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라는 자기 파괴적인 죄책감도 갖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보다는 불행이 발생한 이후에도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들과 그를 지켜보아야 하는 주변인들이 어떠한 자세여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함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당신의 친구들과 친지들이 기도했다. 유대교인, 가톨릭교인, 그리고 개신교인 등 모두 기도했다. 당신이 너무나도 처절하게 외롭다고 느낄 때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위해 슬퍼하고 당신과 함께 비통해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물론 너무 힘들 때는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으로도 위로가 안 될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은 누군가와의 정서적 연대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게 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서로 위로를 주고받으며 상처를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상처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극복할 힘을 얻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또 삶을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비극을 뒤집어 놓을 만한 기적은 얻지 못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 주위에서 사람들과 하느님을 발견했고 이 비극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 힘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그것이 기도가 응답을 받은 한 예라고 말하겠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슬픔에 빠져있는 이에게, 엄마를 잃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 조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조용히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내가 어린 시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나의 애도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고이 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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