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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내려 할수록 더 악착같이 파고드는 '그놈'

[예비신자의 교리수업 이야기] 세례 받기 전 마지막 단계, 찰고에 임하며

등록 2020.06.24 17:03수정 2020.06.2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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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븐>(Seven). 문제적 감독 데이비드 핀처(Fincher)의 1995년 작이다. 한창 때의 브래드 피트와 모건 프리먼이 주연했다. 제목은 성서에 등장하는 인간의 일곱 가지 원죄를 의미한다. '식탐', '탐욕', '나태', '분노', '교만', '욕정', '시기'다. 영화는 그 각각의 죄를 저지른 죄인들을 잔인하게 처단(?)하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이야기다.


희생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악대로 죽음을 맞는다. '식탐'에 빠진 남자에게는 죽을 만큼 스파게티를 먹이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한껏 '교만'해 있던 여인의 얼굴을 흉측하게 망가뜨려 자살을 유도하는 식이다. 막판에 범인은 밀스(브래드 피트 분) 형사의 아내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평범하지만 행복한 그들의 삶을 '시기'해서 였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자수를 한다.
 

영화 <세븐>(Seven). 문제적 감독 데이비드 핀처(Fincher)의 1995년 작.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범인은 두 형사에게 태연하게 그 사실을 자백한다. 임신까지 한 아내를 죽였다는 말에 밀스는 격분한다. 그 자리에서 범인을 쏘아 죽인다. 출동한 경찰들은 현행범으로 그를 체포한다. 범인은 스스로 6번째 희생자가 됐다. 악을 심판하는 형사를 마지막 희생자로 만들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와 회색빛 배경만큼이나 어둡고 우울하며 뒤끝이 남는 이야기다.

핀처 감독은 아마 '분노'를 가장 나쁜 죄악으로 여기는 듯하다. 선한 자들을 대변했던 밀스 형사를 마지막 희생양으로 삼은 걸 보면 그렇다. 분노는 순식간에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폭력이나 살인 같은 2차 범죄를 유발한다. 다른 것과 달리 자기 자신은 물론 남의 생명까지 위해한다. 밀스 형사처럼 한 순간의 분노로 인생을 망친 사람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가장 악질적인 죄악은 '나태'가 아닌가 싶다. 악질적이라기보다는 근원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할까, 게으름이 다른 죄악들의 원인이 된다는 말이다.

식탐이나 탐욕, 욕정은 분명 그렇다. 그건 게으른 자들의 전형이다. 별다른 노력도 없이 달콤한 쾌락만 추구한다. 일도 하지 않으면서 분에 넘치는 욕심만 부린다. 감당하지도 못한다. 손에 쥐고 있으면서 또 다른 걸 탐한다. 그러면서도 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시기도 그의 연장선상에 있다. 탐욕, 욕정 따위와 근본이 같다. 남의 것이 부럽지만 그걸 얻기 위해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남 탓만 한다. 불평불만이 가득하다. 게을러서 그렇다.


교만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최고로 여긴다. 신마저 하찮게 본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떠받들어야 하고 그들이 제물을 갖다 바치는 건 당연하다. 땀 흘리는 건 그들의 몫이다. 자신은 그런 걸 할 이유가 없다. 그저 거울보고 치장하는 게 전부다.

분노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상태다.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게 잘못된 행위이며 자칫 엄청난 비극을 부를 것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다. 감정의 무책임한 방기다. '무책임'과 '방기', 게으름의 다른 이름이다.

밀스 형사는 조금 더 참았어야 했다. 범인이 더 오래도록 제 죄를 반성하고 후회하게 했어야 옳았다. 어떻게든 빨리 단죄하려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참을 수 없는 지경이었겠지만 책임감까지 잃지는 말았어야 했다. 넓게 보면 게으른 거였다.

게으름을 떨쳐 버리는 방법

지난 토요일(6월 20일) 찰고를 했다. 찰고는 천주교 예비신자들이 그동안 교리공부는 잘 해 왔는지, 이제 '예비' 꼬리표를 떼고 하느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있는지 등을 따져보는 일종의 통과의례다.

예전에는 신부님과 1대 1로 했다고 한다. 신부님 앞에서 기도문을 외워야 했고, 심지어 필기시험을 보기도 했단다. 그런데 우린 예비자 전원이 한 자리에 모여 신부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대신했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세례성사 연습도 했다. 새로운 거듭남이다. 매우 뜻깊은 의식이다. 연습이라고는 했지만 분위기는 자못 엄숙하고 진지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분들도 긴장하는 듯했다. 성유를 바르고 이마에 성수를 부었다.

시늉만 했는데도 목덜미와 이마가 서늘했다. 그건 죄를 씻어내는 상징적 행위였다. 그래야 비로소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사도 2, 38). 그 대목에서 생각했다. 나는 진정 세례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내게 용서를 구할 자격은 있는가. 베드로는 나처럼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하게 모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 14~15)."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셨느냐는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준비를 해 두라는 말씀이었다. 우리 예비신자들에게, 아니 나에게 하신 말씀 같았다. 나는 그런 준비가 됐는가. 다시 물었다.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뭔가 크게 부족한 것 같았다. 찜찜했다. 마음이 무지근했다. 느닷없이 영화 <세븐>이 생각난 건 그때였다.

게으름이었다. 녀석은 여전히 내 안 곳곳에 들러붙어 있다. 참 질기다. 아무리 쫓아내려 해도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잠시 없어진 듯 능청을 떨다가도 어느 틈에 다시 나타나선 나를 자빠뜨린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걸 일부러 싸고 도는지도 모르겠다. 부지런해 봐야 몸만 고달프고 얻는 건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다. 참 한심한 자기합리화다. 게으름은 그 자체로 힘든 게 아니다. 그렇게 거짓을 낳고 패배감과 후회를 부르기 때문에 괴로운 거다.

지금 내 모습은 평생 게으름이나 부린 결과물이다. 불면으로 벌겋게 충혈된 눈 하며 늘어진 뱃살까지 모두 그렇다. 일찌감치 포기한 어릴 적 꿈이나, 얼마 전 허무하게 깨진 프로젝트도 다 그 때문이다. 사람을 챙기지 않으니 그들이 곁에 머무를 리 없다. 여기 있어도 마음은 늘 콩밭에 가 있다. 항상 마음이 신산하고 복잡하다. 게을러서 그런 거다. 그런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아무 짓도 않는다. 참 심각하고 고약한 병이다.

무엇보다 먼저 그것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건 그 다음이다. 내게 남은 나머지 인생을 그나마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라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모든 죄의 근원 덩어리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걸 내 안에 그대로 품고 사는 건 엄청난 모순이다. 하물며 주님의 사람, 하느님의 상속자가 되겠다는 자가 그러는 건 가당치 않다. 버려야 한다. 깨끗하게 그 흔적까지 지워야 한다. 다 비우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당신께 다가가야 한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그 가공할 유혹은 시간이 흐를수록 위력이 커진다. 떼내려 할수록 더 악착같이 파고 든다. 그동안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나 그 때와 지금은 다르다. 하느님 앞에서 서려면 적어도 그건 기본이다. 예의다. 그 정도의 각오나 의지도 없이 뭘 어쩌자는 건 도둑 심보다. 늦지 않았다, 그럴 자신이 없거들랑 여기서 포기하는 게 맞다. 적어도 그러면 거짓말 하지 않아도 된다. 자 어쩔 텐가, 해 볼 텐가 포기할 텐가.
#영화 세븐 #7가지 죄악 #게으름 #찰고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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