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뻥 뚫린 양반집 흙돌담, 무엇에 쓰는 구멍인고

고즈넉한 광주 이씨 집성촌, 드넓은 득량벌... 보성 강골마을 구경 가볼까

등록 2020.07.19 19:40수정 2020.07.19 19:40
0
원고료로 응원

보성 강골마을 이진래 고택 풍경. 옛 마을과 옛집은 사람과의 접촉을 최대한 자제할 수 있는 언택트 여행지로 제격이다. ⓒ 이돈삼


코로나19가 다시 퍼지고 있다.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는 안전 문화가 절실한 요즘이다. 여행에서도 언택트(Untact), 비접촉이 필요한 때이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할 수 있는 언택트 여행지로 간다.

맑은 날은 물론이고, 비가 내리는 날도 운치가 있는 옛 마을과 옛집이다. 옛집의 마루에 앉아서 비 내리는 풍경을 보면 더욱 호젓한 느낌을 주는 전통마을, 강골마을이다. '차밭'으로 널리 알려진 전라남도 보성에 있다. 지난 8일, 직접 이 곳을 방문했다.


강골은 전통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식량을 많이 얻었다고 해서 이름 붙은, 보성군 득량(得糧)면에 속한다.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서 '강골'이다. 광주 이씨 집성촌이다. 지금은 30여 가구 40여 명이 구순히 살고 있다.

연못을 앞에 두고 나란히 자리잡은 세 집
  

보성 강골마을 이진래 고택의 대문간채와 흙돌담. 이진래 고택은 국가민속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돼 있다. ⓒ 이돈삼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이진래 고택의 안채. 단아한 옛집에서 옛 양반집의 기품이 전해진다. ⓒ 이돈삼


마을에 옛집이 많다. 이식래 고택, 이진래 고택, 이정래 고택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옛집의 이름은 다르지만, 뿌리는 하나다. 광주 이씨 집안의 첫째, 둘째, 셋째 집이었다. 집 앞에 연못을 두고, 세 집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집이 이진래 고택(민속문화재 제159호)이다. 둘째의 집이었지만, 형이 먼저 다른 세상으로 가 종가가 됐다. 대문간채로 지어진 솟을대문이 압권이다. 집안의 사랑마당과 안마당도 넓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단아한 안채와 사랑채가 있고 행랑채, 중문채, 곳간채, 사당채를 갖추고 있다. 곳간채가 사랑채보다도 더 넓은 게 색다르다. 사랑마당도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전형적인 양반집이고 부잣집이다. 1835년 이진만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진래 고택 담장 밖에 있는 공동우물. 흙돌담과 어우러진 풍경이 옛 마을의 정취를 안겨준다. ⓒ 이돈삼

이진래 고택의 흙돌담에 난 구멍. A4 용지 크기쯤 되는데, 옛날에 마을주민과 부잣집의 소통창구로 쓰였다. ⓒ 이돈삼


건물도 건물이지만, 담장과 연결된 우물이 별나다. 이 집에서 파준 공동우물이다. 물이 귀하고, 마실 물이 부족하던 시절에 마을주민들을 위해 파줬다. 고택의 마당과 바깥의 우물 사이에 놓인 흙돌담에 네모난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A4 용지 크기쯤 된다.

구멍의 쓰임새가 안팎에서 달랐다. 집안에서는, 우물가에서 나누는 아낙네들의 수다를 엿듣는 창구로 활용하며 마을의 여론을 들었다. 해결해 줄 일이 있으면 해주며 덕을 쌓았다. 마을사람들은 이 구멍을 통해 대감집을 엿봤다. 마을주민과 부잣집의 소통창구로 쓰였다. 이름도 '소리샘'으로 불리고 있다.
  

이식래 고택의 초가와 장독대 풍경. 장독대 문간에 기와를 올리고 담장을 따로 뒀다. ⓒ 이돈삼


이식래 가옥(민속문화재 제160호)도 있다. 연못에서 봤을 때, 이진래 고택의 왼편이다. 대숲으로 둘러싸여서, 집안에 정원수가 없는데도 아늑한 느낌을 준다. 사람이 사는 집은 초가인데, 농기구와 곡식을 보관하는 곳간채에 기와를 올린 게 별스럽다. 장독대 문간에도 기와를 올리고 담장을 별도로 뒀다. 곡식과 농자재, 음식을 중요하게 여긴 집임을 짐작할 수 있다. 1891년에 지어졌다.


연못에서 봤을 때 오른편, 이정래 고택(민속문화재 제157호)은 1900년 즈음에 지어졌다. 뒤뜰과 뒷마당을 따로 뒀다. 여인들의 생활을 보호하려는 세심한 배려가 묻어나는 집이다.

건물의 색깔은 저마다 다른데, 전망은 하나같이 좋다. 마을 앞이 1930년대에 간척돼 지금은 바다가 아스라이 있다. 간척되기 전에는 바로 앞까지 득량만 바다였다. 집안에서, 일렁이는 바닷물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뭍으로 변한 드넓은 득량벌을 안마당으로 삼고 있다.
  

강골마을에 있는 열화정. 누정과 연못이 흡사 테트리스 게임처럼, ㄱ자와 ㄴ자로 맞춰져 있다. ⓒ 이돈삼

자연석의 높은 축대 위에 지어진 열화정. 득량만과 오봉산 풍경을 그대로 받아들여 아름답다. ⓒ 이돈삼


마을 뒤에 또 하나의 민속문화재(제162호)인 열화정(悅話亭)도 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데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석의 높은 축대 위에 누정이 지어졌고, 연못도 있다. 득량만과 오봉산 풍경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차경(借景)이 돋보이는 누정이다.

누정의 뒤편은 대나무와 동백나무 고목이 둘러싸고 있다. 숲이 우거지지 않은 옛적엔 누정에서 득량만이 내려다보였다고 한다. 출렁이는 바닷물을 상상해보는 것도, 열화정을 제대로 느끼는 방법이다.

열화정은 이진만이 1845년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후진을 양성하려고 공부방으로 지었다. 마을의 사랑방 역할도 했다. 한말 의병장 이관회, 이양래, 이웅래가 여기서 공부했다.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도 한때 여기서 숨어 지냈다는 말도 있다.

역전이발소와 추억의 다방도 구경해볼까
  

보성 초암정원의 여름 한낮 풍경. 초암정원은 전라남도 민간정원으로 지정돼 있다. ⓒ 이돈삼

보성군 득량면 해평리에 있는 석장승. 바닷가의 조세 창고인 해창과 마을을 지키라고 세워놓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장승이다. ⓒ 이돈삼


지척에 다른 가볼 데도 많다. 전라남도 민간정원인 초암정원이 가까이에 있다. 여름날 정원이 멋스럽다. 바닷가의 조세 창고인 해창(海倉)과 마을을 지키라고 세워놓은 해평리 석장승도 있다. 인자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형상을 한 돌장승이다. 이 돌장승은 민간신앙의 일환으로 세워진 것이다.

학창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의 득량역도 멀지 않다. 우리의 70∼80년대와 만나는 역이다. 당시 젊은이들의 놀이공간이자 데이트 장소였던 역전롤러장이 있고, 오락실도 있다. 50년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전이발관과 추억의 다방도 있다.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아이들에겐 재미난 체험을 선사해준다.
 

득량역 앞 거리 풍경. 이발관도 있고, 다방도 있다. 우리의 70∼80년대 거리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이돈삼

#강골마을 #소리샘 #이진래고택 #열화정 #초암정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