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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 구르는 소리 들으며 회 먹을 수 있는 곳

한적하고 운치있는 거제 망치해변... 여행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밥집

등록 2020.07.17 08:03수정 2020.07.17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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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딱히 일이 정해져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내의 수행을 돕는 정도가 전부이고 그 일도 대기하는 시간이 많아서 항상 손이 비어 있다. 즉 백수다. '노니 이 잡고 노니 염불한다'고 짬짬이 거제 경기의 부활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 거제도에서 영업하는 곳 중, 추천할 만한 곳을 찾아 소개하려고 한다. [기자말]
지금도 거제시를 배를 타고 들어가는 고립된 섬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만난 적도 있다. 그분들은 대체로 먹고살기 바빠서 다른 동네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분들이다.

그분들을 뺀, 거제를 아는 사람들은 조선소와 몽돌해변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몽돌해변은 학동몽동해변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거제도의 구석구석에는 크고 작은 몽돌해변이 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망치해변도 그 중의 하나다. 한적하고 운치가 있는 해변으로 날씨가 맑은 날에는 대마도가 보이는 곳이다.
 

몽돌구르는 소리가 나는 망치해변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 선정된 몽돌구르는 소리는 안방에 누워서도 들을 수 있다. ⓒ 이승열

 
망치마을은 행정적으로 일운면에 속한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시작되는 지역인데, 왼쪽의 외도와 내도, 오른쪽의 해금강을 수평선이 잇는 기막힌 풍광은 거제도 내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망치는 한자어로 '望峙'이다. 조선 숙종 14년에 파직된 현령이 뒷산 고개에서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다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각종 문헌에 실려있다. 외지인들은 연장인 망치를 상상하며 웃기도 하지만 선대의 외로움과 그리움이 녹아 있는 지명임을 알고는 고개를 끄떡인다.

그 시절의 몽돌은 공기와 같았다

도시근대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던 60년대, 망치 해변에서 부산까지 건설용 자재용으로 장부상 배 800척 분량의 망치 해변 몽돌을 실어갔는데, 실제로는 1,000척 넘게 갔는지도 알 길이 없다며 그 해변에서 수십 년간 몽돌 지킴이 역할을 해 오고 있는 모 현지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신음처럼 말했다.

동네의 시멘트 공사에 예사로 몽돌이 쓰였고 정원의 경계석에도 몽돌이 박혔다. 몽돌은 공기와 같아서 무한정한 공공재였을 뿐 소중한 자산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였으니 옛사람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망치해변의 몽돌 아무리 거친 돌이라도 한 두번의 태풍이 지나면 저절로 몽돌이 된다, ⓒ 이승열

 
몽돌이란 파도나 해류의 영향으로 돌들이 닳아서 동글동글해진 돌을 일컫는다. 외지인들은 몽돌 하면 학동을 연상하지만 망치나 농소 등의 몽돌들도 각기 나름의 풍취를 지니고 있다. 까맣고 주먹보다 조금 큰 크기의 매끄러운 돌을 으뜸으로 치지만 곱게 보면 다 예쁘고 그냥 보면 돌일 뿐이다. 꽃 보기나 돌 보기나 매한가지인 것이다.

나는 왜 거제해변에 몽돌이 유독 많은지에 대한 과학적인 식견이 없다. 지질 구조와 해류의 특성, 그리고 기후 등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만 할 뿐이다. 학동, 망치, 농소, 해금강의 몽돌해변은 모래라고는 한 톨도 없다. 해수욕을 즐기고 난 후 모래 씻어내느라 수고를 안 해도 된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이지만 몇 걸음 안 들어가도 갑자기 깊어져서 아이들 데리고 놀기에는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그 가파른 바닥 경사와 몽돌이 만들어지는 과정과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나는 그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파도가 몽돌을 만들어 내는 데는 태풍 한두 개면 족하다

얼마나 바닷물에 시달렸기에 저렇게 닳고 닳았을까 싶어 망치에서 대대로 낚싯배를 모는 어부에게 물어보았더니 단 태풍 한두 번의 시간이란다. 놀라운 일이다.

파도와 파도 사이를 마루라 부르는데, 바람과 해류에 따라 그 크기와 파장은 달라진다. 육지에 가까이 올수록 파도의 바닥 저항력이 증가함에 따라 파도는 부서진다. 그때 파도에너지가 방출되어 자갈이나 모래를 앞뒤로 나르는데 파도의 안쪽에서는 물 입자들이 위아래와 앞뒤로 원운동을 하게 되며 경사가 급할수록 운동에너지는 많아진다고 책에 써 있다. 이것은 망치에서 몽돌을 지키는 현지인이 한 말과 다를 바가 없다.

뾰족하고 불규칙한 잡석은 이런 원리에 따라 태풍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 물밑에서 서로 비비고 뭉개고 갈며 몽돌이 되어간다. 태풍이 끝나고 잔잔해진 후에는 저절로 원래 그 자리에 몽돌이 되어 자리 잡는다.

그러나 유실된 몽돌을 채우는 일은 지난한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몽돌해변에서 퍼 오는 것은 젖은 발에 오줌 누는 격이고, 돌을 기계로 연마하여 몽돌로 만들어 채우는 일은 더 난감한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을 바다에 맡기면 식은 죽 먹기라고 현지인들은 말했다.

발파석이든 잡석이든 해변에 깔아 두고 태풍 한두 개와 수십 번의 폭풍의 시간만 보내면 파도가 그렇게 만들어 준다고 했다. 그러니까 2~3년 만에 몽돌로 만들어 준다는 주장이다.

과학적인 입증을 요구한다면 돌에 인식표를 붙이거나 인식 칩을 넣어서 확인해봐야겠지만 그 실험은 무용하다. 이런 자연 현상은 대대로 이어서 바다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들의 말이 대체로 맞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거기다 파도의 운동에너지에 대한 해양학자의 이론을 더하면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된다.

한편 1999년 7월, 환경부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몽돌 구르는 소리도 이 속에 포함되었다. 파랑주의보가 내려서 파도가 높은 날에는 방에 누워서도 구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동글동글한 돌끼리 부대끼며 내는 소리는 날카롭지도 위태롭지도 않다. 파도의 파장에 따라 규칙적으로 들려 오는 몽돌 구르는 소리는 편안하고 포근하여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한다.

답답할 정도로 정직하고 우직한 사람이 운영하는 횟집
 

식당의 테이블에서 바라보는 외도와 해금강 풍경 거제도의 수없이 많은 식당 중에서 이만한 정경을 가진 곳도 드물다. 생선회를 먹으며 거제도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 이승열

 
이 몽돌해변에 바짝 붙어서 낚시점을 겸한 횟집이 있다. 앞에서 인용한 몽돌 지킴이 현지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큰 창문가의 테이블에 앉으면 외도와 해금강이 눈 앞에 펼쳐진다. 파도가 높은 날에는 몽돌 구르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리는 것은 물론 구르는 모습까지 눈 앞에 펼쳐진다.

살아가면서 믿고 먹는 단골 식당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행복일 것이나 그것 또한 쉽지만은 않다. 음식 맛이나 생선회의 맛은 사람의 기호와 식욕,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지만, 주인장의 정직함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가격이나 부담 없는 메뉴에서도 그 성정을 볼 수 있다. 너무 정직하고 원칙적이어서 때로는 답답할 때도 있는 몽돌 지킴이 주인장이 내는 음식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정갈하고 신선하며 위생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탓에 평생 동안 갯가에서 고기를 잡고 그 고기를 썰어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운 실정이다. 행여 거제도를 방문하여 망치마을을 지나 해금강으로 가는 길에 밥 때가 되면 망설이지 말고 이 식당을 찾아가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행지에서의 밥과 잠자리는 여행의 만족도를 좌우한다. 망치 몽돌 해변가에는 오늘도 몽돌 구르는 소리가 난다.
 

몽돌지킴이가 운영하는 횟집 낚싯점과 횟집을 같이 운영하는 주인장은 순박하고 정직한 음식만을 낸다. 믿고 먹을 수 있는 곳이다. ⓒ 이승열

#망치 몽돌 해변 #망치낚시횟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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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월에 퇴직한 후 백수이나, 아내의 무급보좌관역을 자청하여 껌딱지처럼 붙어 다님. 가끔 밴드나 페이스북에 일상적인 글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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