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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무급휴직에 가정파탄" STX조선 노동자들의 절망

8일부터 '생존권 사수' 단식 시작한 이장섭 지회장... "고용유지 지원금이라도 받을 수 있게"

등록 2020.07.18 17:53수정 2020.07.1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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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권 사수'를 내걸고 경남도청 정문 앞 천막에서 18일로 11일째 단식농성하고 있는 이장섭 전국금속노동조합 STX조선지회장이 팔에 '통풍'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류조환 민주노총 경남본부장도 연대 단식하고 있다. ⓒ 윤성효


"2년간 무급휴직을 했는데 또 하고 있으니 너무 힘들다. 가정 파탄 난 집이 한둘이 아니다. 이혼한 사례도 있다. 그렇다고 다른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다."

창원진해 STX조선해양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단식농성하고 있는 이장섭 금속노조 STX조선지회장이 18일 한 말이다.

그는 지난 8일부터 곡기를 끊고 천막에서 지내며 물과 소금만 마시며 버티고 있다. 18일로 열 하루째다. 팔에 '통풍'이 생겨 아프다. 류조환 민주노총 경남본부장은 이날까지 사흘째 '연대 단식'하고 있다.

STX조선해양은 2010년대 들어 어려움에 처했다. 노동자와 가족들은 "7년간 고통과 암흑의 시간을 보냈다"고 할 정도다.

이 회사는 2013년 자율협약, 2017년 법정관리에 이어 2018년부터 2년간 6개월씩 무급휴직을 했다. 그런데 회사와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복귀하던 지난 6월부터 추가 무급휴직을 한 것이다. 회사는 지난 13일까지 희망퇴직을 실시했는데, 사무직 38명과 생산직 46명이 신청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STX조선지회는 파업, 집회, 삼보일배에 이어 이장섭 지회장이 단식농성을 하며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경남에 일자리가 없으니 멀리까지 간다"
 
 
이장섭 지회장을 만나 조합원들의 어려운 처지를 들었다.


"500여 명의 조합원은 투쟁도 못 할 정도다. 왜냐하면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무 일이나 해야 하고, 경남에 일자리가 없으니 멀리까지 간다."

조합원들은 심지어 경기도, 제주도, 충청도까지 일하러 다닌다. 그렇다 보니 장기간 집을 떠나 있는 조합원들이 많다. 조합원들이 외지에 가서 하는 일은 주로 용접과 주물공장, 시멘트와 배관 작업, 목재 작업 등 다양하다.

부부싸움도 잦고 결국 가정 파탄까지 난다는 것. 이 지회장은 "가정 살림이 궁핍하다 보니 자꾸만 살림살이가 빠듯해지고, 그렇다 보니 부부싸움이 자주 일어나면서 가정파탄이 오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누가 결국에는 이혼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이 지회장이다.

"이혼한 조합원들이 있다. 남편은 돈을 벌겠다며 외지에 나가 있고, 그렇다고 해서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부싸움이 잦아지게 되고, 결국 이혼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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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섭 전국금속노동조합 STX조선지회장은 '생존권 사수'를 내걸고 경남도청 정문 앞 천막에서 18일로 11일째 단식농성하고 있다 류조환 민주노총 경남본부장도 연대 단식하고 있다. ⓒ 윤성효

   
일하러 갔다가 사기를 당하는 사례도 있다. 건설 현장 등에서 일을 했지만, 임금을 받지 못하는 조합원이 있다는 것이다. 일을 시킨 사람이 '이중취업'이라며 차일피일 임금 지급을 미루기도 하고, 결국 임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어떤 조합원은 경기도에 일하러 갔는데, 일을 시킨 사람이 조선소 사정을 아니까 나중에 '이중취업으로 고발하겠다'고 하면서 임금을 주지 않더라고 하더라. 그래도 우리는 강하게 말을 못 하는 처지다.

심지어 타지에 일하러 가서 이주노동자의 지시를 받는 사례도 있다. 특정 분야에서 일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 거기서 일을 오래 해온 이주노동자한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작업지시를 받는 것이다."


이장섭 지회장도 무급휴직 기간에 인력사무소에 나가 일용직으로 잠시 일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조선소 정규직으로 있다가 일용직으로 나가서 일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이 지회장은 "특히 50살 안팎인 사람들이 나가서 구할 일자리도 없다"고 했다.

STX조선지회는 500여 명의 조합원 가운데 20% 정도는 빚을 내서 집에서 지내고, 5~10% 정도는 창원진해 인근에서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을 하며, 70~75% 정도는 타지에 나가 아무 일이나 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STX조선해양은 2018년에 2개 조로 나눠 2년간 6개월씩 무급휴직에 들어가면서 노사합의로 임금 40%를 삭감했다. 그렇다 보니 2년간 6개월씩 두 차례(총 1년) 일해서 받는 임금도 이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노동자들은 의료보험을 포함한 4대 보험금은 무급휴직 기간에만 50%를 면제해 주었지만, 유급일 때 절반인 50%를 포함해서 냈다. 그러니 현장에 복귀해봤자 실제 받는 임금은 많지 않았다.

나이 많은 직원들이 명예퇴직 등으로 회사는 떠난 상황에서 현재 조합원 평균 나이는 40세 안팎이다. 자녀 양육비가 많이 들어갈 시기인 것이다.

이장섭 지회장은 "두 차례 출근해서 일한 뒤 받아 간 실질임금이라 해봤자 얼마 되지 않았다.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조합원이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회사가 당초 약속했던 2년간 순환 무급휴직이 끝난 뒤 지난 6월부터 복귀할 것으로 보고 은행 대출을 냈던 조합원이 많았다.

"자녀들 학자금이며 양육비가 많이 들어가다 보니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사용해 온 조합원이 많다. 다들 6월 1일 복귀할 것이라 보고 대출을 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6월이 오자 복귀가 아니라 추가 무급휴직을 하라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은행으로부터 빚을 갚으라는 독촉을 심하게 받는 조합원도 많아지고 있다."

회사는 지난 7월 13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이 지회장은 "은행 대출금을 갚기 위해 하는 수 없이 희망퇴직 신청한 조합원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지에 나가서 일하던 조합원들이 연락이 와서 하는 말을 들어 보면 기가 찬다. 조합원들의 아픔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장섭 지회장은 "일자리 차지도 힘들고 외지에 나가서 고생하고 사기도 당하다 보니 회사에 대한 애착을 더 갖는 것 같다. 조합원들은 역시 '우리 회사가 최고다'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소한 고용유지지원금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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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무 창원시장은 7월 18일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며 11일째 단식농성하고 있는 이장섭 금속노조 STX조선지회장을 찾아 위로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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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우 창원시의회 의장이 7월 17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 천막에서 '생존권 사수'를 내걸고 단식 농성하고 있는 이장섭 금속노조 STX조선지회장과 류조환 민주노총 경남본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윤성효

    
이장섭 지회장과 류조환 본부장의 단식농성장에는 격려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하원오 노동자생존권보장조선소살리기 경남대책위 대표와 김정광 집행위원장, 김재명 민주노총 경남본부 지도위원, 전희영 전교조 경남지부장 등이 농성장을 찾고 있다.

또 조합원들이 찾아와 "함께 싸우자"며 결의하기도 한다. STX조선지회 가족대책위는 "노동자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라는 것은 지난 무급휴직 과정에서 처절하게 느꼈다"며 "하루가 열흘 같은 힘든 나날들이지만 투쟁을 함께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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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경남지사가 7월 17일 오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STX조선해양 노동자의 생존권 사수를 내걸고 단식농성하고 있는 류조환 민주노총 경남본부장과 이장섭 STX조선지회장을 만났다. ⓒ 윤성효


김경수 경남지사는 17일 오전 농성장을 찾아 "경남도 입장에서도 도민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단식을 풀고 기운을 차려 함께 해법을 찾아가자"고 했다.

이치우 창원시의회 의장은 17일 오후, 허성무 창원시장은 18일 농성장을 찾아 '단식 해제'를 요청했다.
  
창원시와 창원시의회는 지난 16일 청와대와 산업은행 등에 각각 "STX조선해양 경영 정상화를 위한 건의문"을 내기도 했다.

경남도와 창원시는 "무급휴직의 유급휴직 전환을 위한 고용유지지원금 제도 활용 방안"을 제시했지만, 산업은행이 거부했다.

류조환 본부장은 "이대로는 단식을 풀 수 없다. 경남도와 창원시, 창원시의회가 노력하고 있는 점은 알고 고맙다"며 "산업은행은 고용유지지원금을 못 받게 하고 있는데, 임시방편으로 할 게 아니라, 쉽지 않겠지만 최소한 고용유지지원금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STX조선해양 #산업은행 #단식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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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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