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읽어 본 글이 실린 책을 샀다

[나도 이번 생은 글렀다고 생각했다]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를 구매한 이유

등록 2020.07.27 10:36수정 2020.07.2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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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한 중년_웃긴데 왜 찡하지? 문하연 지음 ⓒ 남희한

평소 좋아하던 글이 책으로 엮여 나왔다.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 오마이뉴스를 통해 연재됐던 글들을 묶어 놓은 책. 이미 다 읽어 본 글이 실린 이 책을 나는 망설이지 않고 구매했다.


작년 브런치북 응모 기간에 올라왔던 연재 중에 중년 여성의 웃픈 추억이 담긴 글을 마주했다. 잠자리에 눕기 전 잠시 들렀던 브런치에서, 나는 목과 손목이 뻐근해질 때까지 글을 읽었다. 울림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말이 전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울리다가도 웃기고 웃기다가도 가슴 속에 무거운 무언가를 남겨 버리는 글들에 심히 매료되었다.

지극히 '내 생각'이지만, 언제나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그래서 소비도 검소한 편이고, 웬만하면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선택을 한다. 게다가 소유욕도 별로 없어 간소한 것을 좋아하고 중복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런 내가 이미 다 읽은 글을 돈을 주고 샀다. 공간도 차지하고 언제라도 스마트폰만 켜면 볼 수 있는 글이 실린 책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나의 합리적인 사고와 냉철함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한 처사임이 분명하다. 주변에선 나이가 들면 총기가 사라진다느니 이제 좀 먹고살만 한가 보다느니 얘기하곤 하는데, 전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고 후자는 사실이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다. 아주 가끔.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이러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도 작년 어머니 생일날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어머니 데이트해요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지나는 말로 내뱉었던 말이다.


"어머니, 내일 영화 보러 갈까요?"

서울에서 생활할 땐, 집에 들를 때면 가끔씩 데이트하곤 했는데, 어쩌다 가까이 살게 되니 오히려 그런 이벤트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생일을 맞이해 집으로 모셨던 어머니께 데이트 신청을 했다. 소녀처럼 부끄러워하는 모습. 설레는 표정으로 그러자고 하셨다. 호빵맨을 닮은 볼에 색이 입혀졌다.

당일 아침 배앓이로 화장실에서 사투를 벌이다 모자를 눌러쓰고 급하게 어머니 집으로 향했다. 치장은 못 했지만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 아파트 입구를 나서 그냥 지나치려는 어머니께 창문을 열며 밝게 인사했다. 그런데 어째 주춤하신다. 모자 쓴 모습에 아들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셨단다. 설마 데이트하는데 저러고 왔을까 생각하신 듯했다. 데이트 신청한 남자의 추레한 모습에 어머니의 얼굴에선 부푼 마음이 쪼그라드는 게 보였고, 그와 반대로 예쁘게 단장하신 모습에 내 마음엔 죄송함이 부풀어 올랐다.

만남부터 삐걱거렸던 데이트는 영화관으로 가는 길에 덜컹거렸다. 어머니는 내 눈에 끼인 눈곱과 깎지 않은 수염까지 발견했다. 아. 지적을 피하기 위해 지각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나의 패착이다. 그래도 영화관만 도착하면 이 모든 걸 만회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예매한 영화 <알라딘>의 상영관은 바다가 보이는 영화관. 나는 나의 부족함을 메꿀 수 있길 간절히 빌었다. 

다행히 결과는 성공적. 상영관은 멋진 조망을 자랑했고 리클라이너 좌석은 고급스러움과 편안함을 선사했다. 예매를 하며 고민했던 가격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모습에 마음은 꽉 채워졌다. 

정말 오랜만에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영화를 봤다. 지니의 요술에 즐거워하고 웅장한 음악과 배우들의 노래에 감탄했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 하지만 화려한 영상과 신나는 음악에 영화관만 들어서면 조시던 어머님도 끝날 때까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영화를 보셨다. 
  

당시의 감흥을 담았던 '시답잖은 시' 어머니와 '뻔한'영화를 보며 '무척'행복했다. ⓒ 남희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알라딘은 볼 영화가 아니었다. 이야기도 다 알고 이 지역에선 차로 상당히 멀리 이동해야만 극장에 갈 수 있는 데다 팝콘과 음료는 시중가의 몇 배나 된다. '탕진잼'을 즐길 것이 아니라면 그건 분명 낭비였다. 하지만 카펫을 타고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을 어머니와 뿌듯하고 즐거웠던 나의 기분은 그 가치 이상이었다.

흔히들 더 큰 행복을 위해 참고 기다리라고 말한다. 한 때 책 <마시멜로 이야기>를 읽으며 담배를 끊은 나는, 이 이야기에 적극 공감하고 많은 실천을 했었다. 그래서 삶에 좋은 영향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어머니와 함께 했던 그날, 행복은 기다리거나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계산기를 먼저 드는 순간, 눈 앞에 있는 행복은 집을 수가 없으니까. 

그냥 곁에 두고 싶었다

다시 책 <명랑한 중년>으로 돌아와서, 그냥 곁에 두고 싶었다. 이런 따뜻한 책 한 권은 집안에 두고 가끔씩 눈인사를 나누며 작가가 나누려고 했던 인생의 희로애락을 되뇌고 싶었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따뜻함과 넌저시 던지는 위로도 함께. 진솔한 이야기가 켜켜이 채워진 페이지마다 기억하고 싶은 그런 뭉클함이 있었다. 
 
다만 나는 매일 결심한다. 행여 아들이 대학을 가지 않거나, 혹은 못 가게 되더라도... <중략>... 인생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보다 넘어지면 일어나는 것이 백백 중요한 일임을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기를. 이 시간은 이 시간대로 의미가 있었음을 '내가 꼭' 기억 하기를. (70쪽)

아무리 깨어 있으려고 노력해도 현실을 온전히 산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구나. 바보같이 나는 매시간, 매분, 이별이 오기도 전에 이별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또 나를 마주한다. 살아도 살아도 이별은 늘 뜻밖의 일이 되는 나약한 나를. (126쪽)

 

작가가 여성분이기에 여자들의 일상과 시선이 주를 이루지만, 어찌 된 일인지 여자들만이 알법한 일상과 에피소드에 남자인 나까지도 격하게 공감해 버렸다. 거기다 아내에게 있을지 모를 고충과 고민,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중년 여성의 여러 감정들도 엿볼 수 있었다. 안 보던 드라마를 보는 남편의 뒤통수를 보면 마음이 짠해진다니... 나중을 위해 콘셉트 저장.

말이 길었다. 어떻게든 소비의 합리화를 이루려 참 길게도 썼다. '투 머치'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데 글은 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길어지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나는 나를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무슨 감흥을 이렇게 심하게 받나 싶었는데, 부제가 "흔들리고 아픈 중년을 위한 위로와 처방"이다. 아. 중년이란 단어가 있었구나. 스스로 중년임을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니. 어쩌나. 덕분에 또 흔들려 버렸다. 별 수 없다. 또다시 처방을 받으려 다시 책을 들 수밖에. 아마도 이 처방이 긴 시간 함께 할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서평 #명랑한중년 #문하연 #책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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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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