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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는 영끌해서 부동산 사고, 10대는 '이것' 사고

[명품과 10대] 차비 아끼고, 밥 굶고... 10대는 어쩌다 고가의 브랜드 제품에 꽂혔을까

등록 2020.08.27 10:41수정 2020.08.2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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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가 전면에 박힌 티셔츠, 패턴만 봐도 브랜드를 알 수 있는 클러치... '등골브레이커' 패딩이 가고, 명품이 온 걸까요? 요즘 10대들 사이에서 알바비를 꼬박 모아 명품을 사는 게 유행이라고 합니다. 부유함의 상징이었던 명품이 어떻게 10대들의 마음을 파고든 것일까요. 학교 현장과 가정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딸이 원하는 고가품, 어디까지 사줄 수 있을까? ⓒ Unsplash


슬슬 기운이 달리고 다리가 아파온다. 벌써 2시간이 넘도록 딸을 따라 백화점 신발 매장들을 순회하는 중이다. 딸 마음에 쏙 들어오는 '어글리 슈즈'라는 운동화를 찾아 말이다.

딸이 즐겨보는 웹툰 <여신강림>의 여주인공 '주경'이 그런 걸 신는다는데, 굽이 6cm나 되어 다리가 늘씬해 보인대나 뭐래나... 여하튼, 굽이 그렇게 높아서야 잘못 삐끗하면 접질려서 발목만 다치는 게 아닌지,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데 신고 뛸 수나 있는지 아무리 걱정을 늘어놓아봤자 소용이 없다. 신던 운동화가 조금 작아져서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는 딸의 결정적 한 마디에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같은 반 여자 아이들은 요즘 하나같이 모두들 어글리 슈즈를 신는다'는, 엄마 마음 약하게 만드는 한 마디도 당연히 덧붙여 말이다. 엄마 마음을 꿰뚫고 있는 딸이 얄미울 지경이다. 그나마 고르고 고른 신발값이 사줄 만해서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아 본다.

8일간의 냉전

딸의 난데없는 물건 구매 욕구를 감당키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돌아보면, 매사 자신이 원하는 걸 정확하게 알고, 그걸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불태우는 딸에게 번번이 설득당하며 살아온 나날이다.

뭔가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사방팔방 졸졸 따라다니며 어찌나 구구절절 사야 할 이유를 읊어 대는지, 거의 고문 수준이다. 처음에야 단호하게 거절을 해보지만 이틀을 못 넘기고 허용하기 일쑤다. 녀석의 끈질긴 보챔과 갖은 논리적 항변에 나를 향한 원망스러운 눈길까지, 결국 그 공세에 지치거나 마음이 약해져서 항복하고 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좀 어렸을 때야 졸라봤자 터치폰이었고, 천 한 겹으로 막 만든 공주 코스튬이었고, 귀여운 캐릭터 스티커북이었다. 그러던 것이 녀석이 점점 커가며 고급 문구류들이 되고, 아무 데서나 구하기 힘든 가방이 되고, 시즌별 신발들과 화려한 블라우스, 원피스 같은 고가품들이 되어갔다. 이제 어디까지 녀석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지, 나의 말 못 할 걱정도 은근히 커가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중 딸과 내가 이제껏 해왔던 행태를 돌이켜 볼 중요한 사건 하나가 우연히 발생했다. 딸이 실수로 쓰던 핸드폰을 변기에 빠뜨렸던 것이다. 미국에 온 가족이 잠시 머무르던 2년 전이었다. 아빠가 예전에 쓰던 핸드폰을 딸이 재사용하던 중이었는데, 꽤 멀쩡한 핸드폰이었다.

한국이었으면 '네 잘못이니 난 모른다' 하며 끝까지 못 본 척할 수도 있으련만, 치안이 썩 좋지 않은 타국살이다 보니 걱정스러운 마음에 새 핸드폰을 구입하기로 했다. 일시불로 목돈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딸이 원하는 제품은 거의 최신으로 몇 십만 원이 넘었다.

한국 가면 제대로 된 폰을 사 줄 테니, 당장은 저렴하게 사자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딸은 꿈쩍 하지 않았다. 말이 안 통하는 녀석에게 화가 난 나도, 지출 가능한 일정 금액을 통보하고 절대로 물러서지 않기로 작정했다.
 

딸이 원하는 최신 핸드폰 구매는 명백하게 과도한 지출이라고 생각했다. ⓒ Unsplash

 
딸이 원하는 폰은 명백히 과도한 지출임을 나는 반복적으로 설명했다. 딸은 그때까지(중학교 2학년) 중고폰을 사용해 왔으니 이젠 자신이 갖고 싶은 새 핸드폰을 가질 충분한 권리가 있다고 열을 올렸다.

모녀 사이의 팽팽한 의견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 당시 딸과 같은 방을 썼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서로 말을 안 하고, 밤이 되면 벽 쪽으로 고개 돌리고 훌쩍거리는 딸을 외면하는 게 나도 마음 쓰렸지만, 이번만큼은 독하게 마음먹었다.

처음이었다. 자랄 만큼 자랐는데도 여전히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히 여기는 딸의 태도에 나 역시 이만저만 서운한 것이 아니었다. 그간 웬만하면 딸의 욕구를 쉽게 허용해왔던 나의 불찰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 불찰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두 모녀가 내뿜는 한기에 숨쉬기조차 편치 않을 정도로 방이 꽁꽁 얼어가던 냉전 8일차 즈음, 드디어 딸이 마지못해 백기를 들었다. 오랫동안 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걸리면서도 결국엔 고집을 꺾어준 딸이 고마웠다.

그 일을 겪은 뒤로는 좀 더 엄마의 사정을 살펴준달까, 무턱대고 제 욕구 충족만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게 된 것 같다. 원하는 게 생기면 용돈을 모아 스스로 마련하기도 하고 말이다. 여전히 화려하고 눈에 띄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니 앞으로 언제 또 엄청난 요구를 들이밀지 모를 일이지만, 이제는 사고 싶은 게 있어도 조금 조심스럽게 따져보게 된 것만도 긍정적인 변화라고 여긴다.

영끌해서 모은 용돈으로 고가 브랜드 제품 구입

그런데 유행하는 제품 또는 고가품을 구매하길 원하는 것은 비단 우리 딸만의 이야기가 아닌가 보다. 이미 많은 청소년들이 원하는 걸 구매하기 위해 용돈을 모으고, 몇 달간의 고생스러운 알바도 무릅쓴다는 기사를 종종 보게 되니 말이다. 딸보다 세 살 위인 아들에게 듣자 하니, 같은 반 아이 한 명은 용돈 모으기를 너무 과하게 해서 자기가 봐도 걱정될 정도란다.

공부시간이 부족해 알바는 못하지만, 버스값을 아끼느라 등하교를 뛰어서 하고, 학원 끝나고 독서실에 가기 전에 밖에서 해결해야 할 저녁식사도 굳이 굶어가며 용돈을 모은단다. 역시나 이유는 바로 고가의 운동화와 T셔츠, 바지 등을 사기 위해서라고 하니, 참 들으면서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게 안쓰러웠다.

그렇게 모은 용돈으로 두어 달에 한 번씩 학교 친구들에게 산 옷을 자랑한다고 한다. 그 돈으로 차라리 밥을 사 먹으라는 아들의 조언은 하나마나란다. 듣는 나도 그 아이의 건강과 과한 용돈 모으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염려가 되었더랬다.

자식들이 뭔가 필요하다고, 갖고 싶다고 하는 욕구를 부모로서 못 들은 척 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원하는 걸 그때그때 손에 넣어 주는 것이 그들에게 꼭 이로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자제력을 기를 기회를 빼앗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자제력이 제대로 길러지지 않으면,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타인을 괴롭히거나 이용하는 데에까지 나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전히 심심찮게 들리는 ○○셔틀이나 집단폭행 같은 청소년 관련 기사들을 봐도 그렇다.

아이들이 이렇게 되어가는 건 어쩌면 나를 비롯한 부모들 탓인지도 모른다. 비자발적으로 학교와 학원, 독서실에만 매여 살게 된 이 청춘들이 잠시 잠깐 틈 날 때마다 마음 쉬일 곳은, 그저 즉각적으로 접속해 즐길 수 있는 온라인 세계뿐이니 말이다. 결국 웹툰과 페이스북, 동영상 같은, 눈으로 훔쳐보는 그 세계가 전해주는 이미지와 상품들만을 선망하게 되고 탐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딸과의 물건 구매를 둔 밀당이 언제나 끝이 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딸이 꼭 하나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은, 물건이 주는 기쁨도 살아가는 데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물건을 사지 않고도 기쁘고 즐거운 일들이 찾아보면 늘 주변에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점이다.

그러자면 우선 나부터 딸이 그런 일들을 찾을 수 있도록 시간부터 제 맘대로 쓸 수 있게 해 줘야겠다. 핸드폰 냉전 못지않게 모녀간에 티격태격할게 불 보듯 뻔하지만, 그래도 나는 딸을 믿어보련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지애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청소년 #고가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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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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