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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샛별이입니다, 카드 좀 던지지 마세요

손님에 치이고, 점장에 치이고... 편의점 알바생은 오늘도 '무례'를 버텨냅니다

등록 2020.08.21 08:39수정 2020.08.2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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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가 종영했다. 이제 TV 속 샛별이의 편의점 알바 이야기는 끝났다. 그러나 현실 속 샛별이, 나의 편의점 알바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물론 드라마 속 샛별이와 내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에선 잘생긴 점장은커녕 샛별이처럼 보람차고 즐겁게 일하기도 어렵다. 물론 편의점 점주나 점장들은 이런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들지 모른다. 그러나 최저시급을 받는 편의점 알바 2년차인 나의 감상이 그런데 어쩌겠는가.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다.


#1.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
 

샛별이와 친구들이 편의점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현실 속 샛별이의 기피 대상 1호다. ⓒ SBS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현실 속 샛별이의 기피 대상 1호다. 밤 9시가 넘어갈 무렵 일부 손님들은 '술판'을 벌이기 위해 편의점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몇 사람들은 이미 만취 상태다. 개중 어떤 사람은 편의점으로 들어와 다짜고짜 반말을 내뱉는다. "오징어 한 마리 가져와!"

그들의 첫마디는 대게 '야'나 '어이' 정도. 계산할 때 카운터에 돈이나 카드를 던지는 행동은 덤이다. 이런 손님을 응대하는 건 저녁-야간 시간대에 일하다 보면 너무 흔히 겪는 일이다. 아무렇지도 않다. 웃는 얼굴로 상품을 가져오고 떨어진 카드를 줍는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비틀거리는 뒷모습에 대고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간혹 더한 손님은 상품 가격에 트집을 잡으며 제값을 치르려 하지 않거나 구입하지 않은 상품을 훼손한다. 좋은 말로 손님을 달래보지만 대부분은 손님의 생떼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마땅할 해결책도 없을뿐더러 야밤에 샛별이 혼자 술 취한 상대를 마주하는 상황 자체가 일단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누르면 경찰이 달려온다는 SOS 버튼은 혹여 손님들 사이에 위험한 가게로 소문날까봐 쉽사리 건드리지도 못한다. 어찌어찌 손님을 보낸 뒤엔 모자란 돈이나 훼손된 상품 값을 내 지갑에서 메운다.

손님이 벌이는 술판의 가장 큰 문제는 민원이다. 술에 취해 음량이 높아진 이들의 목소리가 근처 아파트로 넘어가면 편의점으로 주민 민원이 들어온다. 최대한 에둘러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어디 술 취한 사람들 목소리를 낮추는 게 가능한가. 그저 민원이 들어왔다고 점장에게 한소리 듣는 수밖에 없다.

손님들이 나가면 또 다른 일이 생긴다. 바로 먹다 남은 음식이나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가버린 사람들의 '뒷정리'다. 맨손으로 음식물이 묻은 쓰레기를 줍고, 술병을 치우다 보면 내가 편의점 알바생인지 청소부인지 헷갈린다. 테라스 밑이나 의자에 손님이 남긴 토사물이 있는 날엔 일명 '현타'가 찾아온다. 그러나 생리적 혐오감에 망설일 시간 따윈 없다. 본사로부터 그 무섭다는 경고조치를 받지 않으려면 즉시 토사물 치우기에 나서야 한다. 아, 물론 흔한 일이다.


#2. 미성년자한테 담배를 팔면 벌어지는 일
 

미성년자가 나이를 속이고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 점주 최대현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신분증을 요구했다가 손님이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얼굴 보면 성인인지 몰라?'라고 빈정거리기라도 하면 대번에 점주로부터 '딱 봐도 성인인데 뭐 `하러 검사해!' 하는 타박이 날아온다. ⓒ SBS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면 안 된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선 담배를 구입하려는 이들의 신분증을 검사하면 된다. 그런데 현실 속 샛별이는 이 방법을 쓸 수가 없다. 왜냐? 편의점 매출의 일등공신인 담배 손님을 신분증 검사 따위로 '귀찮게' 할 수 없으니까. 신분증을 요구했다가 손님이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얼굴 보면 성인인지 몰라?'라고 빈정거리기라도 하면 대번에 점주로부터 '딱 봐도 성인인데 뭐 하러 검사해!' 하는 타박이 날아온다.

이전에 신분증 확인을 한 손님에게 다시 신분증 확인을 요구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그랬다간 '저번에 했는데 왜 또 하냐'고 손님에게 한 번, 점주에게 한 번 도합 두 번의 꾸중을 듣는다.

그래서 나는 손님의 얼굴만 보고 나이대를 맞추는 일종의 관심법을 연마한다. 성인처럼 보이는 손님은 지나가고, 미성년자처럼 보이는 손님만 쏙쏙 골라내 신분증 검사를 하는 것이다. 물론 관심법은 100% 적중하지 않는다. 관심법에 실패해 미성년자가 담배를 샀다면 그건 다 알바생의 잘못이다. 잘못에는 처벌이 따르는 법. 지난해 편의점에서 나와 함께 근무했던 수많은 샛별이 중 한 명이 관심법 실력이 모자라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한편, 드라마에선 담배를 구입한 고등학생이 신분증 검사 당시 위조한 신분증을 내밀었다는 게 밝혀져 사건이 해결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해피엔딩은 흔치 않다. 위조 신분증이 얼마나 감쪽같았는지 아무리 말해도 영업정지의 위협을 받고 있는 점주 앞에선 공허한 외침일 뿐. 결국 이 경우에도 샛별이는 잘린다. 나는 잘리지 않기 위해 신촌 클럽에는 다 있다는 위조 신분증 검사 기계의 기능을 눈과 손에 탑재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문제 때문인지, 지난 7월 1일부터 '담배사업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편의점 근무자가 위조 신분증에 속은 경우 영업정지 등의 처벌을 면제해 선량한 담배 소매인이 피해를 받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처벌을 면제 받으려면 위조 신분증에 속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영업정지를 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점주가 과연 샛별이를 곱게 봐줄까? 샛별이의 처우는 여전히 점주의 손에 달려있는데. 결국 이 법이 보호하는 '선량한 담배 소매인'에 샛별이는 없다.

#3. 매출 낮은 편의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
 

점주 최대현이 편의점 매출을 보고 근심에 차 있다. 편의점 영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매출이다. ⓒ SBS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


현실이든 드라마든 편의점 영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매출이다.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편의점도 매출 압박이 심한 편이다. 근처에 편의점이 4개나 더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경쟁 매장과의 거리는 해당 지역의 편의점(담배 판매점) 거리 제한을 겨우 맞춘 수준이다. 심지어 그것도 횡단보도를 통해 거리를 늘리는 꼼수를 쓴 결과다.

옆 가게보다 조금 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 점주는 내게 친절, 친절, 그리고 친절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 친절이라는 게 나에겐 곤욕일 때가 많다. "바지가 왜 이렇게 짧아! 여자들은 옷차림을 조심해야 해. 그러니까 나쁜 짓을 당하지." 얼마 전 손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지만 '알겠습니다' 하고 웃으며 대답해야 했다. 이게 바로 편의점 알바생의 친절이다.

편의점에서 무나 상추 따위를 찾으며 '여긴 그런 것도 없어?' 하고 따지는 손님에게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죄송합니다' 뿐이다. 편의점에 신선채소가 없는 게 내 책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손님더러 잘못 찾아왔다 할 수 없으니 그냥 내가 죄인이 된다.

손님이 직접 물건을 골라 계산대 가져오는 편의점 시스템도 이 친절 앞에선 없던 것이 된다. 분명 계산대 앞에 서서 물건값을 계산하는 '캐셔'로 채용됐는데도 손님의 '가져와' 한마디면 나는 어느새 담당한 업무 범위를 훌쩍 넘어 손님의 주문을 받아서 물건을 가져와 계산까지 하고 있다.

이처럼 알바생의 친절은 손님이 무엇을 사든, 설령 아무것도 안 사 가든 간에 무조건 주는 '사은품'이다. 사은품의 구성은 내 감정. 무료로 배포하는 것이니 당연히 내게 돌아오는 수당은 없다.

알바생은 손님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게 일이니까. 그런데 이 서비스가 내 마음을 할퀼 권리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나는 다만 내 임금 선에서만 적절한 노동력만 제공하고 싶다, 과도한 감정노동이 아니라. 내 근로계약서에 적힌 고용주는 편의점 사업주, 고용형태는 아르바이트, 급여는 최저시급, 업무는 매장 청소 및 물건 계산이다. 그 어디에도 무례한 이들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아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편의점 #샛별이 #알바생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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