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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점에선 책 많이 파는 것보다 '이걸' 더 바랍니다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를 읽고 역곡동 동네서점 '용서점'에 대해 알게 된 것

등록 2020.08.24 09:06수정 2020.08.2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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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점'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이다. '뜰안에 작은 나무'라는 가끔 이용하던 작은 도서관에서였다. 문화 행사를 열기도 하고 다양한 모임도 있다고 해서 오며가며 눈여겨 보던 참이었다.

그때는 나도 시간이 자유롭지 못하던 터라 보기만 할 뿐 선뜻 참여는 못했다. 줄여서 '뜰작'이라 불리는 도서관에서는 이웃해 있는 용서점을 소개하며 협력 행사도 한다고 했다. 위치는 자주 가는 시장 근처에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지나는 길쪽이 아니라서 보지 못했고 어떤 곳일지 궁금했다.


어느 날은 용서점에 글쓰기 모임이 있다는 말을 듣고 용기 내어 찾아가 보았다. 사장님은 자리에 안 계셨다. 알바인 듯한 분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장님이 계셨으면 글쓰기 모임에 대해 문의라도 해 봤을텐데, 그냥 서점만 둘러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독교 서적이 많아 보여서 거리감을 느꼈달까. 그 뒤론 참여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작년 어느 땐가 TV 채널을 돌리다가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마침 역곡동에 있는 '용서점'이 소개되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 있지만 가끔 옆길로 지나면서 굳이 고개 돌려 한번 보고 지나왔을 뿐인데, TV에서 구석구석 보여주고 소개하니 반갑고 신기했다. 사장님과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용서점에서 책을 한 번 산 것도 아닌데 한 동네 사람으로 괜히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다.

한두 달 전에는 오마이뉴스에서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라는 친근한 제목의 책을 소개하는 글을 읽고 그게 우리 동네 용서점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용서점의 박용희 사장님이 전하는 동네 책방 이야기였다. 코로나19로 운영 중지되었던 뜰작 도서관에 오랫만에 들렀다가 예쁘게 일러스트가 그려진 노란색 표지의 책을 발견했다. 용서점 이야기? 냉큼 집어와 단숨에 읽었다.
       

낮12시, 책방 문을 엽니다 동네책방 용서점 이야기 ⓒ 조혜영

       
책은 용서점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역곡동으로 이사한 뒤 사람들에 의해 달라져 온 이야기까지 담고 있었다. 사람들 속에 있는 작은 이야기 보따리 뿐 아니라 몇 년 전 내가 낮시간에 찾아갔다가 사장님을 만나지 못한 이유도 나와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 되고 싶어하는 서점 주인이나 카페 주인을 나도 막연히 꿈꾸었다. 무식하고 미련하게 아무것도 모른 채 카페 주인이 되려고 뛰어들었다가 쓰라린 경험을 했지만 여전히 서점 주인에 대한 로망은 남아 있다. 그런 내게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꿈 깨고 정신 차리라는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서점 경영이라는 게 니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누차 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꿈꾸던 공간을 너무나 잘 꾸려가는 저자의 모습에 존경심마저 일었다. 그곳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쉼을 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최근 유유출판사에서 나온 '미래의 서점'은 이제는 서점도 과거와는 달라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고한다. 거대 체인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 밀리는 독립서점과 중고서점의 살 길에 대해 사람 속에 '있는' 경험을 활용하라고 말한다.

용서점이 그런 전문적인 보고를 따른 것은 아니겠지만 책에서 소개한 서점들과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중고서점이지만 새 책을 함께 팔기 시작했고, 작가와의 만남 같은 이벤트도 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지속적인 서점 경영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러한 노력이 이제는 동네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용서점 스스로 '미래의 서점'이 될 조건을 갖추며 진화하고 있던 것이다. 저자는 그것이 진심으로 바라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서점으로 돌아오면서 용서점의 모임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모임에 참석하는 이들의 상황과 사연은 다 다르고, 나는 그것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 마음으로 왔든 용서점에서 쉬고 웃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일이다. 책을 많이 파는 것보다 더, 용서점이 유명해지는 것보다 더.

하지만 무엇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는, 무언의 허락을 줌으로써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는 편안한 모임이 될 수 있었다. 그것 또한 마을 공동체로서의 힘일 것이다.
 
모임에는 힘이 있다. 함께일 때만 얻을 수 있는 위로와 재미와 깨달음이 있다. 그저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때, 모임의 힘은 우리 삶 안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목적이 이끄는 모임을 경험했다. 그러니 이제는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부담 같은 것 없는 모임이 필요하다. 그게 용서점 모임이다.

나는 용서점에서 하고 있다는 모임에 가보지 못했다. 우리 동네라고 말하면서도 아직 용기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책에서도 잠깐 소개하고 있는 '뜰안에 작은 나무' 도서관, 이제는 주로 '뜰작'이라 불리는 문화 공동체 안에 한 발을 딛고 있다. 

책읽기 모임에 참여하면서 뜰작의 여러 모임 중 하나에 한 걸음 들어갔다. 작년에는 부천 시민미디어 센터의 공모 사업을 통해 '뜰작 마을미디어'의 시작도 함께 하게 되었다.

마을에 있는 공동체, 동네 서점에서 하는 모임이든, 도서관에서 하는 모임이든 용서점 박용희 사장님의 말대로 '사람들이 있는 곳의 따뜻한 기운, 운김'을 가진 모임이 많아짐으로써 지역에 더 많은 따뜻함을 주는 공동체로 자리매김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

그것은 역시 '모이는 사람'들의 힘이며 '함께 나눔'의 힘일 것이다. 그런 모임이 늘어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참여할 용기를 내기 어렵겠지만, 언젠가 불쑥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 실릴 예정입니다.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 - 동네책방 역곡동 용서점 이야기

박용희 (지은이),
꿈꾸는인생, 2020


#마을공동체 #용서점 #뜰안에작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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