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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조할머니와 할머니 운천(지금의 동두천)장에서 증조할머니와 할머니의 사돈, 할머니가 함께하셨다. ⓒ 박진희
내 증조할머니께서는 병석에서조차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던 분이란다. 꼬장꼬장하셨던 그분이 첫 증손주를 얻고는 곧잘 어부바를 하고 마실을 다니셨을 때의 일이다. 좀처럼 없던 일에 동네 아낙들이 몰려와 "증손녀가 참! 이쁘네요" 인사치레를 건네면 그리도 기꺼워하셨단다. 허나 자칫 볼이라도 쓰다듬었다가는 "경우 없는 여편네가 남의 집 귀한 증손녀 몸에 손을 댔다"라며 석 달 열흘을 노여워하셨다고 한다.
증조할머니께서 증손주들을 얼마나 예뻐했는지 기억에 없는 옛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할머니 또한 손주 사랑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분이다. 할머니께서는 살아생전 긴 흥정 끝에 사 온 사과를 손주들 입가심용으로 내곤 하셨다. 그때마다 꼭 반으로 갈라 씨를 발라내고는 숟가락으로 독독 긁어 주셨다.
▲ 수 많은 과일 중에서도 사과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 박진희
목을 길게 빼고 제 차례를 기다리던 손주들은 긁기가 무섭게 곱게 갈린 사과를 낼름 입 안에 넣어댔다. 어른들이 따로 가르쳐 준 적은 없는데, 재미있게 먹는 법은 어찌 또 알았을까? '앙' 다문 이빨 사이로 사과즙을 짜서 삼키고는 탈수된 과육을 꼭꼭 씹으면, 사각사각 소리까지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코로나19로 등교가 미뤄지면서 맞벌이 하는 여동생네 아들, 딸을 돌보게 되었다. 그 옛날 할머니에게 받았던 사랑을 어린 조카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어서 계절 과일인 참외를 같은 방법으로 먹여보고 싶었다.
반으로 잘라 속을 차게 하는 참외씨는 발라내고, 원을 그리듯 속살을 긁어내 입 안에 넣어 주었다. 엄지를 여러 차례 치켜세우며 칼로 숭덩숭덩 잘라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단다. 그럼 그렇지! 손목이 시큰하도록 참외를 긁은 보람이 샘솟는다.
▲ 참외를 반으로 잘라 속을 파내고 과육을 긁는다. ⓒ 박진희
▲ 참외는 껍질이 찢어질 때까지 긁는다. ⓒ 박진희
어느 날, 설거지를 하다 보니 비닐봉지에 붙어 참외 싹이 살포시 올라와 있다. 참외를 얼마나 많이 먹었으면 어디서 튀어 들어갔는지도 모를 참외씨가 싹을 틔웠을까. '피식' 웃음이 나왔다.
▲ 재활용하려고 씻어놓은 비닐봉지 안에서 참외 씨가 싹을 틔웠다. ⓒ 박진희
▲ 참외 씨가 싹 틔운 게 신기하여 화분에 옮겨 심어 보았다. ⓒ 박진희
나 역시 참외씨가 싹 튼 건 처음 보는지라 신기하여 화분에 옮겨 심어 보았다. 제대로 자라 줄 리 만무하지만, 혹여 떡잎이라도 보게 될 즈음엔 참외 킬러 조카들과 추억 하나를 더 만들 작정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장맛비가 드디어 꼬랑지를 내렸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공주 오일장에 장 보러 오는 사람들이 몰리는 때와 맞물렸다. 고사리손 양옆으로 잡고 그 옛날 할머니 손잡고 구경 다니던 싸전이며 국수골목에 동행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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