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철폐를 주장하는 김누리 교수를 지지하며

등록 2020.08.24 11:21수정 2020.08.2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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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서 이전보다 더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초중등 교육의 학습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도 한국과 일부 아시아 국가들의 입시위주의 학습환경이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는 것에 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입시위주의 교육풍토를 벗어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 학생들의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니체는 1872년 3월 23일자 교육 강연록에서 고전읽기와 에세이 글쓰기가 실종된 당시 독일 중등교육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학생들이 독일어 에세이를 쓰는 것은 독립성을 갖기 위한 훈련이다. 학생들이 독립적이고 자립적으로 자신의 관점에 따라 삶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학생들이 목발을 짚지 않고 삶의 여정을 즐거이 여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학생들이 말할 때, 볼 때, 동료들 속에 있을 때, 작품활동을 할 때 다시 말해서 그가 진정 살아있음을 느낄 때 비로소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 교육기관에 의존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영문판 책 제목: on the future of our educational institution. 2014, 55쪽).


우리의 입시환경은 바로 이러한 독립적인 사고를 배양하는 것과 너무 거리가 멀다. 교육당국, 학부모, 학생들이 모두 적응이 되어 입시환경이 지닌 문제의 심각성과 대안을 내려는 강력하고도 결집된 의지를 보이기 보다는 이 환경에서 살아남을 방법만을 찾는 형국이 되었다. 이는 사실상 체념상태다.

해외 학생 및 교사들이 한국의 수능시험 문제를 보고 하나 같이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을 표한다. 수능이 학생들에 대해 사고력과 판단력을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줄세워 선발하려는 의도를 갖고 단순 문제풀이 기계로 훈련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능의 존폐 문제를 논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고 단지 난이도 조절, 코로나사태로 인한 수능 날짜 조정, 반영비율만을 고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잠재의식 속에서 늘 우리교육이 정상궤도를 벗어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것이 김누리 신드롬이라 할 정도로 전국적인 반향과 찬사를 받고 있는 이유다. 물론 일부에서는 김누리 교수의 발언이 유럽 특히 독일교육에 대한 피상적 인식의 결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교육의 명백한 문제 즉 듣고 암기하고 기억에만 의존하는 학습방법을 취하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자아발견'이 아니라 '자아상실'에 이르게 하는 환경에 주목하면 김누리 교수의 입시철폐 주장이 갖는 상징성을 근본적으로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마디로 입시교육의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귀로만 듣는 즉 강의식 수업형태인데 지금 독일 및 유럽교육은 이러한 방식을 상당부분 벗어났지만 한국은 한창 진행중이다. 아래 인용문은 1800년대 독일 중등교육(짐나지움)의 특징이었으며 현대 한국교육의 특징인 말과 귀에만 의존하는 '구두강의법'의 문제에 대해 역시 니체가 말한 것이다.

"중등학교(public school)가 잘못되면 다른 교육기관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학생들이 어떻게 대학에 연결되는가? 듣는 것으로서 즉 귀에만 의존해서 대학진학을 한다. 이것이 구두강의법(acroamatic method)이다. 이때는 사실상 학생과 교사간에 큰 단절이 생겨 교사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인지될 수가 없다. 이 점이 외국인들이 독일교육에 대해 놀라는 것이다."

"이런 수업방식이 변함없이 이어지면 대학은 단순히 짐나지움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학생들은 듣고 싶은 것은 듣고 그러고 싶지 않으면 안들으면 돼. 믿고 싶지 않을 때 믿지 않으면 돼. 입의 소유자는 많은 귀의 소유자들과 동떨어져 있다"(위 책 56쪽).


독일과 유럽은 적어도 68혁명을 계기로 교육도 혁명적 변화를 겪어 지금 한국과 같은 입시환경은 벗어났다. 입시철폐는 입시의 거부가 아니라 입시를 참다운 배움의 뒷전으로 배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왜? 바로 입시환경은 귀로만 듣고, 듣고 싶지 않으면 안들으면서 정작 나, 사회, 세계, 자연, 환경을 찾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예멘 난민을 푸대접할 때 독일이 100만 명을 수용하는 것, 18세 소녀 환경운동가 툰베리가 스웨덴 출신이라는 것도 모두 적어도 선언적 의미의 입시철폐 곧 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와 세계를 발견할 때 가능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 외국인들은 독일교육에 놀랐던 안타까운 심경 그대로 150년 가까이 지난 현대의 한국교육에 놀라고 있다.
덧붙이는 글 프레시안에도 송고하였습니다.
#입시철폐 #김누리 신드롬 #김누리의 교육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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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에 교육평론 45편 정도 기고했으며, 현재 인천교육청 공립 대안교육 자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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