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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와인만 6개월 먹고 알게 된 것들

[아츄의 와인앤라이프] 와인 다큐멘터리를 보다

등록 2020.09.04 13:42수정 2020.09.0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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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삼총사는 와인을 본격적으로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우리는 모두 미혼이었고 이성 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항상 같이 몰려 다니며 취미 생활을 즐겼다.

우리는 주말에도 딱히 할 게 없었기 때문에 와인을 사기 위해 인천의 대형 마트 뿐만 아니라 서울의 백화점도 들르고, 김포의 떼루아(와인 아울렛)도 방문하며 와인을 부지런히 사 날랐다.

혼자하면 어려운 일도 여럿이 하면 어렵지 않다고 했던가? 같이 동일한 취미를 가지게 되니 뭉쳐 다니기도 편했고 또 재미있었다. 그렇다! 그때 우리는 와인에 미쳐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영훈이형의 긴급 소집이 있었고, 퇴근 후 형의 집으로 곧장 향했다. 형은 우리를 모아 놓고 비장하게 말했다. 

"기다려봐, 내가 유튜브에서 좋은 영상을 찾았어."
"그래? 새로 나온 가수 영상이야?"
"흐흐... 기대 해도 좋아."


형은 눈을 반짝이며 동영상을 틀었다. 순간 우리 세 남자의 눈이 반짝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화면에는 진중한 클래식 음악이 펼쳐지며 다음과 같은 제목이 튀어 나왔다. <EBS 다큐멘터리 - 프랑스 와인기행>. 난 형을 보며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다큐멘터리 극장? 시방 이게 뭐시랑께?"

그러자 형은 이상하게 날 쳐다보며 반문했다. 

"뭐긴 뭐야. EBS 다큐멘터리지, 프랑스 샤또를 여행하며 와인 마시는 동영상"
"뭐?! 좋은 영상이라며!!"


이 형은 정말 뼈 속까지 와인에 미쳐있구나. 와인 다큐멘터리라니. 우리는 잠시 설렜던 마음을 추스리고 다큐멘터리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형은 와인을 오픈하며 말했다. 

"프랑스 기행이라 프랑스 와인을 준비했어."
"뭐?! 매번 프랑스 와인만 마시면서?"
"그냥 멘트 한번 해봤어."


한 지역의 와인을 계속해서 마시면 좋은 점 
 

와인은 나눌수록 맛있다 ⓒ ⓒ Pixabay

 
사실 우리는 6개월째 프랑스 와인만 마시고 있었다. 계속 한 지역의 와인만 사는 형이 이상해서, 그 이유에 대해 물어 본 적 있다. 형이 대답하길 한 지역 와인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동안 한 우물만 파야 조금이나마 그 지역의 와인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가치관을 가진 형 덕분에 짧은 시간 동안 프랑스 내 다양한 산지의 와인을 마실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한 나라에도 정말 다양한 와인의 맛이 존재하고 같은 포도원이라도 포도나무에 따라 그리고 빈티지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것도 이때 알게 되었다. 이날 형이 준비한 와인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프랑스산 와인이었고, 프랑스 와인 동영상과 함께 즐기게 된 터였다. 

진한 진홍색 와인이 꿀럭꿀럭 하며 와인잔에 따라졌다. 잔에 가득히 와인 향이 흘러 넘쳤고, 코 끝 가득히 들어찬 향기에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취해 버렸다. 와인의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향에 취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이날의 와인 향은 우리 삼총사를 설레게 하기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향이 진하고 터프한 만큼 와인은 아직 깨지 않은 상태였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시니 역시 진한 타닌감이 느껴져 스월링을 시작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실 필요가 있는 와인이였다. 그렇게 와인이 열리길 기다리며 우리는 다시 TV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TV 에서는 소유진님이 프랑스 와인 산지를 여행하며 다양한 와인을 마시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마치 고성과도 같은 샤또도 방문해서 마시기 힘들다는 빈티지 와인을 음미하는 것을 보며 비록 그 장소에 있지는 않지만 마치 그곳에서 와인을 마시는 것처럼 우리의 모습을 오버랩 시켰다. 영훈이 형은 TV를 보며 부럽다는 듯이 나직히 말했다. 

"야! 우리도 여행 한번 가자."
"여행?"
"그래! 와인 들고 미국이든 프랑스든 와인투어를 떠나는 거야!"
"영화처럼 햄버거에 와인 마시면서 혹은 자연풍광을 안주삼아 와인을 마시는 그런 여행 말하는거지?"
"그렇지! 정말 멋있지 않냐? 현지 음식과 와인의 마리아쥬도 느껴보면서, 정말 신선한 와인을 마주하는 거야. 농익은 향과 현지의 떼루아도 느껴 보면서 말이야."


형의 눈빛을 보니 형은 이미 여행을 가 있는것 같았다. 

"재미있을 것 같긴한데, 우리 갈 수 있을까?"
"사람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 간다는 건 좋은 거야. 얼마나 재미 있겠냐?"


와인 다큐멘터리 때문이었을까? 흙 향이 진하게 나는 샤또의 포도주 때문이었을까? 영훈이형은 조금 들뜬 것 같았다. 맛있는 와인은 이미 우리를 산지로 안내했고 그 향에 잠시 취해 나도 모르게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일반적인 여행도 좋지만 와인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니. 생각만 해도 멋있게 느껴졌다. 

"와인이라는 건 정말 신기한 것 같아. 물론 소주나 위스키 등 다른 술들도 좋아하지만 와인은 그 매력을 특정할 수 없는 게 그 매력인 것 같아. 빈티지에 따라, 떼루아에 따라, 품종에 따라, 블랜딩에 따라 그 변수가 너무나도 많잖아? 그 많은 변수들 중 하나가 나에게 오늘 온 거야. 그리고 이런 복합적인 느낌을 내 안에서 폭발시키지."

형은 감동에 벅차 말했다. 상민이 형은 그런 영훈이 형을 보며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와인을 마시니 시인이 다 되셨네."

그런 말에 굴하지 않고 영훈이 형은 와인잔을 흰 벽지 쪽에 비추며 말했다.

"이 색을 봐! 검보라 색의 이 와인.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낸 이 보석같은 색을 말이야."
"색만 봐도 매혹적이지, 난 특히 와인을 스월링 할 때 흘러내리는 이 눈물 자국이 좋더라. 물과는 다르게 점성이 느껴져. 날 마시라고 유혹하는 것 같단 말야."


난 형에게 호응하며 대답했다. 

"맞아! 그것도 와인을 평가하는 척도지!! 그걸 보고 신의 눈물이라고 하던가?"

형은 스월링을 잠시 멈추며 와인을 한모금 홀짝 마셨다. 

"음..... 와인이 적당히 풀린 것 같다. 마시기에 산도도 적당하고, 타닌감이 줄어 들어 부드러워졌어."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스월링을 멈추고 와인을 마셔 보았다.

"오! 확실히 맛이 변했는데? 마치 우유처럼 부드러워졌어. 이게 시간을 두고 와인을 마시는 이유인가?"
"그렇지! 미치겠다 이 매력. 와인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흔히 와인이 급하게 마시며 맛없다, 텁텁하다 그러시는데 와인마다 마시는 방법이 다르다는 걸 알아야 맛있게 마실 수 있어. 특히 오늘 마시는 프랑스 와인 같은 경우는 시간을 두고 마셔야 하는데 말이야."

"특히 빈티지가 중요한 와인들이 그렇겠지?"

상민이 형이 대답했다. 

"음...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빈티지가 중요한 와인들. 특히 구세계 와인들이 그런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예를 들면 오늘 마시는 이런 프랑스 와인은 따고 바로 마시면 타닌감이 상당해서 마시기가 쉽지 않지. 충분히 산화 시켜서 맛이 부드러워지고 풍부해질 때 마셔야 하니까." 
"예전 같았으면 오픈하고 바로 마셔 버려서 그 맛을 잘 몰랐는데 정말 시간에 따라 변하는 와인들이 있어. 그걸 알아가는 것도 와인의 매력인 것 같아."
"그치! 아! 그러고 보니까 저번에 니네들이 맛없다고 다 못 마시고 남기고 간 와인 있잖아" 
"그렇지! 다 못 마셨잖아 너무 무겁고 어려워서, 맛없다고는 안 했어."


형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내가 하루 지나고 마셔봤는데 진짜 맛있어졌어. 아무래도 충분히 열리지 않아서 그랬던것 같아."
"오!? 그래서? 그걸 혼자서 다 마셨단 말이야? 우리도 안 주고?"
"반 병 남았었는데 어떻게 불러... 그런데 맛있더라."


형은 그때의 감동이 그대로 남았는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이 좋았다. 서로의 와인에 대한 경험담을 이야기 하며 풀어나가는 편한 자리라니. 다른 사람들과 쉽게 나눌 수 없는 우리들만의 경험이자 감정이였다. 형은 와인 한 모금을 다시 입 안에 털어넣으며 말했다.

"소유진님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니까..."
"응."
"세상에는 수많은 와인들이 있고, 또 그 와인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을 찾는게 쉽진 않다는 생각이 들어."
"와인이 그런 재미가 있지. 수만가지 중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와인을 찾는다는 게 쉽지 않잖아."


난 고개를 끄덕이며 형의 말에 동조하였다. 

"그렇지! 그 와인 중에서 한번에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을 찾는다는 건 불법이지. 다양한 와인을 마셔 봐야 하고."
"또 같은 와인이라도 한번만 마셔보면 그 진면목을 잘 알 수 없고 여러 번 마시고 표현하고 느껴봐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거니까."
"어쩐지... 결혼이랑 똑같은 것 같은데?"
"뭐가?!"
"수많은 인연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찾는다는 게 말이야."
"하긴 어찌 보면 닮은 구석이 있네."


와인을 마시는 좋은 이유 

우리는 웃으며 다시 와인을 홀짝였다. 사실 와인을 마실 때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술을 마시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다. 편견일지는 모르겠지만 소주를 마시게 되면 뭔가 이야기를 나눈다는 느낌이 아닌 서로 '한탄'을 말하게 되는 것 같다.

현실의 고뇌 등을 말이다. 마치 '내가 너보다 더 힘들어, 그러니 소주 한 잔 하고 털어 버려!'라고 서로 한탄배틀을 펼치는 것 같다. 허세가 아니라 와인과 소주를 마시는 자리에서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와인을 마시면 한탄이 아닌 이야기를 나눈다는 느낌이 더 크다. 고뇌가 아닌 서로를 이해해 주는 이야기를 하며 공감이 펼쳐진다. 한탄이 아닌 서로 소통을 하게 되는 게 바로 와인이 가진 '마력'이 아닐까? 정말 와인을 좋아하게 되면 어떤 뉘앙스인지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소통하고 있는 와중에 영훈이 형은 갑자기 컴퓨터를 켜더니 엑셀파일을 열었다. 엑셀파일명이 인상깊었는데 '영훈's 와인일기'였다. 그러면서 형은 우리들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열심히 엑셀파일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곰곰히 보니 자신만의 와인 노트를 작성하고 있던 것이었다. 난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하며 또 한편으로는 정신없이 엑셀파일에 자신의 느낌을 적고 있는 형에게 물었다. 

"형! 와인을 마시기도 바쁜데 그건 왜 쓰는 거야?"
"왜라니? 그냥 와인을 마시는 것 하고 이렇게 자신이 기록을 남기는 것 하고 엄청 달라."
"어느 부분이?"
"일단 가격을 기입해 놓을 수 있어서 기억하기 쉽고, 이 세상 오만 가지 와인을 접하다 보면 이날 마신 와인의 특성을 잊어버리기 쉬운데 나중에 기억하기도 용이하고 또 이 리스트를 읽기만 해도 나중에 이 와인을 마시지 않아도 그 느낌을 어렴풋이 느낄 수도 있거든."
"오! 나도 형이랑 와인을 마시며 항상 적어야지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 귀찮기도 하고 말야."
"그럼! 하지만 한번 해두면 두고두고 네 자산이 될 거야. 와인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고 싶으면 자신만의 테이스팅 노트를 만들어 놓는 게 좋아."
"그렇게 까지 해서 와인을 마셔야 해?"
"필수는 아니지. 그건 네 선택이야. 하지만 나중에 와인 테이스팅 노트를 적다 보면 알게 될 거야. 그 유용성을 말이야."


형의 와인테이스팅 노트를 보고 있자니 리스트가 꽤 많아 보였다. 그 숫자가 적지 않아 난 문득 형이 마신 와인 수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제까지 마신 와인이 몇 병이나 돼?"
"어디 보자. 근 일년간 마신 와인이... 대략 400병쯤?"
"뭐여? 1년에 400병이면 하루에 한 병씩은 마신 거잖아?"


생각보다 이 형 대단했다. 계산해 보니 이 형이랑 마신 와인만 해도 대략 100병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아, 와인 동호회도 나가고 모임도 하더니 대단하긴 하네. 짦은 순간에 이정도의 와인을 마시다니. 전문가도 아니면서도 말이다. 

"그럼... 이제까지 마신 와인의 전체 가격은 얼마나 돼?"

형은 엑셀파일로 금액을 계산하더니 말했다. 

"대략 천만원이 넘네."

그랬다. 형과 와인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미친듯이 몰두하더니 짧은 기간 동안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마셨구나! 한편으로는 대단하기도 한편으로는 한 취미에 열정을 부을 수 있는 형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였다.

형들과 함께 영상에 나오는 소유진님처럼 프랑스 샤또에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간 형들과 함께 와인 투어를 하며 와인에 대해 느낌을 표현하고 즐기고 싶다. 그렇게 오늘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와인을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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