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교육에 주는 시사점 : 철학교육

등록 2020.08.31 11:02수정 2020.08.3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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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던 우리의 방역능력도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교육적으로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학생들의 학력격차가 더 커지면서 교육불평등 문제가 심화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간 입시환경 때문에 실종되었던 환경교육을 되살리면서 팬데믹의 원인을 찾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이는 인간성과 자연성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문제까지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 욕망의 연장선에서 경쟁교육의 문제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주제들을 근본적이고 비판적으로 검토, 이해하려면 우선 깊이있는 소양교육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철학교육이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어야 하는 이유

환경의 중요성도 생각하는 힘을 바탕으로 학습할 때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즉 개념의 풍부한 밭을 갈아야 어떤 교과내용이든지 그 지식이 깊이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개념은 고전을 포함한 양서를 읽고 독서토론이 늘 이어질 때 잘 습득된다. 우리교육은 이러한 상식을 너무도 오랫동안 외면하고 있다.

한국에서 교과서의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한 채 단편지식 위주로 나열된 설명자료를 접하는 학습환경은 학생들로 하여금 고차적 개념과 문장의 이해력을 심하게 떨어뜨린다. 게다가 교과서가 담고있는 내용이 너무 많아 공부시간이 더욱 쪼들리는 것도 독서시간을 뺏는 원인이 된다. 결국 독서과제는 인터넷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온다. 미국도 흔히 인터넷에서 베껴오면 0점 처리된다.

한 고교 교사는 한 때 논술전형을 준비하는 고3 학생들 8명에게 플라톤의 <국가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등을 읽기과제로 냈으나 학생들이 거의 읽지 못했다고 한다. 어렵기도 하거니와 읽을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이 교사는 스스로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만을 복사하여 학생들에게 읽혔다고 한다.


생각하는 힘을 강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인문학에서 나온다는데 이견이 없을 듯하다. 이에 대해 잠시 독일의 사례를 본다. 19세기에 일군의 독일 대학생들이 당시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사상에 고무되어 단체를 조직한 적이 있었는데 그 조직의 이름이 부어쉔샤프트(Burschenschaft)였다. 이에 대해 니체가 이렇게 말한다.
 
부어쉔샤프트 단체는 진정한 교육기관을 건설하려는 문제의식을 표현했으며, 진실, 용기, 엄숙함 그리고 대담한 독일정신을 추구하는 이념으로 정했다. 이는 바로 종교개혁 이래로 계속 이어진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정신이었다(On the future of our educational institutions, 2014, 61쪽).

이 단체는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순수하고 도덕적인 능력이 재생되고 영감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또 이들은 배움에는 위대한 지도자(스승)가 필요하다는 것과 모든 교육은 (합리적인 의미의) 복종에서 시작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위대한 로마의 역사가요 정치가인 타키투스, 철학자  칸트의 정언명령, 칼 마리아 폰 베버의 노래 '수금과 검(竪琴과 劍)의 감흥에 젖기도 했다. (수금과 검 : 테오도르 쾨르너에 의해 씌어진 애국적인 시모음집. 후에 베버가 이 제목과 내용의 일부를 가져다 남성 코러스 4악장으로 만든 것으로 유명함)' 이 학생들에게는 철학의 문(門), 예술의 문, 고대(역사)의 문이 활짝 열렸다(위 책, 62쪽).

곧 철학, 예술 그리고 고전으로서 문학 및 역사과목이 어떤 교육적 주제도 깊이있게 소화시킬 수 있는 토양이 된다. 현재 이탈리아의 고교 5학년생은 9월 학기에는 철학시간에 칸트를 배울 예정이라고 한다. 이것이 가족과 이웃의 만남의 대화 소재로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프랑스는 인문계 고교의 문과계열, 상경계열, 이과계열에 각기 철학과목이 주당 무려 7~8시간, 4시간, 3시간씩 배당된다. 철학은 바칼로레아를 치르는 모든 학생들의 필수교양 과목이다. 독일은 고교에서 종교과목과 철학과목 중에서 선택하도록 되어 있으나 철학과목이 선호된다.

최근 국내에서 충남 삼성고가 정규 학교 중에서 두번째로 국제바칼로레아(IB) 인증학교로 지정되었다. 지자체 혹은 국가단위로 IB를 도입할 필요성이야 없겠지만 평준화 체제에서 교과성적 우수생들에게  심도있는 배움의 과정을 안내하는 수업 프로그램의 도입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IB도 니체가 강조했던 위 과목들을 중심으로 독서와 글쓰기, 토론을 함께 하면서 과학실험, 체험 및 탐방학습을 더하는 교육과정에 근접하려고 노력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공교육이 정상화되는 것도 다름아닌 위의 과목들을 심도있게 배우는 것과 성격이 같지 않은가?

공교육에서 개혁을 서두르지 않으면  IB에 대한 요구가 더욱 확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철학교육은 독서와 논술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수능을 전면 논술로 전환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합당하다.

철학이 결핍된 사례 : 특정 극우 종교 및 정치인들의 맹목 & 의사들의 파업

우리가 철학 곧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독서, 토론, 발표를 잊고 암기위주의 공부와 객관식 시험위주의 평가만 해온 결과는 어떤가? 지금 우리는 코로나 재확산에 따라 질병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 전선의 최일선에서 생명을 살려야 할 전공의들이 파업을 일삼고 있다. 이는 가히 충격적이다.  

설령 의사들의 주장에 타당성이 있다고 해도 파업의 시기는 지금이 아니다. 필자의 아내는 의사들이 의학기술만 터득했을 뿐 이들에게 인간애와 철학이 결핍되어 있다고 한다. 설득력있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또 이번 코로나 재확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사랑제일교회를 중심으로 해당 목사와 일부 신도들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보수야당의 궤변은 어떠한가? 우리는 이들에게서 예수의 사랑이 지닌 참 의미와 공공성에 대한 맹목을 읽을 수 있다. 이는 곧 종교철학과 정치철학의 부재를 의미한다. 철학교육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이유로서 이보다 더한 사례를 찾을 수 있을까?

역시 니체가 철학을 정의함에 있어 '궤변과 그럴듯한 수사로 장식된 언어의 연막을 뚫고 들어가 진실을 캐내는 작업'이라고 했다. 이 때 진실은 정의를 향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시민들의 심리가 공허하고 불안해지는 틈에 자신들의 생존욕망에 집착함으로써 상대를 근거없이 그리고 자극적인 말로 공격하는 행위는 정의, 공정, 상생, 공존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편 미국의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대학(UCDAVIS)에서는 철학을 배우는 이유로 데카르트의 언명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을 인용하면서 역시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철학은 학생들의 비판적 분석, 사고력과 문제해결에 있어서 전문성을 높혀줌으로서 윤리의 한계 안에서 명확하고 논리적이며 설득력있게 생각을 교환하고 소통하게 만든다(출처: UC데이비스 관련 홈)
 

철학과목 홍보 사진 미국 UC 데이비스 대학의 철학과목 홍보 사진.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언명을 인용하고 있다. 출처: UCDAVIS. ⓒ 신남호

 
법이 사후에 많은 희생을 치른 후에 사회악을 바로잡는 것이라면 철학은 사전에 사회악을 피하면서도 그 효과가 지속적이라는 점에서 철학교육은 경제성도 갖추고 있다. 이제 우리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교육선진국에서 교양필수로 자리잡아 온 철학과목의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덧붙이는 글 프레시안에도 송고하였습니다.
#코로나19 #철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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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에 교육평론 45편 정도 기고했으며, 현재 인천교육청 공립 대안교육 자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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