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일 선고된 대구지법 형사 12부는 학교 후배 선수를 대상으로 강제추행과 공동폭행을 저지른 사이클 선수들에게 각각 2500만 원, 2000만 원 벌금형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내렸다.
픽사베이
사건을 들여다봤다.
피해자 G가 선수 생활을 포기하기까지 가해자 A와 B로부터 당한 고통은 2015년 1학기 내내 이어졌다. 주로 404호, 402호, 103호 등 호실로 이름 붙여진 학교 기숙사 방이 범행 장소였다. 특히 피해자 G는 밤마다 가해자 A의 전담 마사지사가 돼야 했다. 그해 6월 1일부터 오후 10시마다 1시간 이상 등과 허벅지 전신을 총 16회 마사지하도록 강요받았다.
운동 후 상처를 치료하는 파스는 폭행 도구가 됐다. 끔찍한 성추행을 위한 목적으로도 사용됐다. 가해자 A는 또 다른 피해자 F가 가위바위보에서 졌다는 이유로 항문에 스프레이 파스를 뿌렸고, 피해자 G의 성기엔 스프레이 알코올 소독약을 분사했다. 또 다른 가해자 B는 청소기로 피해자 G의 성기를 빨아들여 강제 추행했다.
폭행은 일상처럼 이뤄졌다. 그 방식도 기괴했다. 약과 식재료는 고문의 재료로 둔갑했다. 가해자 A는 "그냥 한 번 맛 봐라"며 피해자 G의 입을 벌려 지사제를 억지로 먹게 했고, 얼굴에 난 여드름을 짜 식초를 강제로 발랐다.
함께 폭행을 당한 F는 초시계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머리채를 잡힌 채 왼쪽 뺨을 맞아 달팽이관이 터져 난청이 왔다. 밥도 편히 먹지 못했다. 가해자들은 대회 참가를 위해 방문한 지역의 한 식당에서 상추에 청양고추, 마늘, 쌈장, 소금 등을 넣어 쌈을 싸 피해자 F와 G의 입에 밀어 넣었다.
"과연 피고인들에게 벌금형과 같은 가벼운 처벌이 합당한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항소심 재판부(재판장 이범균)는 이듬해 판결에서 이들의 1심 양형에 물음표를 띄웠다. "피고인들은 장난 또는 가벼운 제재의 명목이었다고 항변하지만, 수단과 방법이 잔인하고 가학적일 뿐 아니라, 지속적, 반복적이었다"는 해설도 달아뒀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도 1심 재판부처럼 가해자들의 장래를 걱정했다. 결국 기각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더 나아가 "피해자들이 별다른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 없이 생활하고 있고 일반 고등학교로 전학 간 피해자 G 역시 잘 적응해 원만히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고도 판시했다. '정신적 후유증 없이 원만히' 생활한다는 근거는 따로 제시되지 않았다.
항소심 판결문에선 피고인들의 근황도 함께 드러났다. "피고인들은 퇴학 처분을 받았는데, 이후 제기된 행정 소송에서 퇴학 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이 확정됐다"는 것. 그들은 스포츠계로 돌아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가해자들 각각이 대학에 다니며 여전히 사이클 훈련생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참작해야 한다고 봤다. 2심 재판부 역시 아래와 같이 가해자들의 '사이클 인생'을 걱정한다.
"피고인들에게는 사이클이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삶의 일부인데, 집행유예 이상의 처벌을 받을 경우 향후 선수 생활을 함에 있어 큰 지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가해자의 기량을 판결문에 언급한 사례는 또 있었다. 2018년 수원지법 평택지원 1심 재판부(재판장 정도성)는 중학교 야구부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서 3학년 선배였던 가해자를 언급하며 "중학교 내 우수한 야구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사정은 인정된다"고 했다.
다만, 성폭력의 정도가 심해 소년부 송치 대신 장기 징역 2년, 단기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 선고를 내렸다. 이 판단엔 "운동부 내 위계질서에 익숙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가해자의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도 고려됐다.
성적만 좋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