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와 나무꾼' 속 선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설화와 현대문학의 이야기로 들여다 본 사랑, 오홍진 지음 '연인들 사랑을 묻다'

등록 2020.09.11 11:28수정 2020.09.1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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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통보한 여자 친구에게 칼을 휘둘렀다든지, 둘의 은밀한 사진을 협박거리로 이용했다는 등의 뉴스를 심심찮게 접하게 됩니다. 사랑이 어쩌다가 폭력으로 둔갑되는 지경에 이른 것일까요? 사랑이 상투어가 될 정도로 '사랑'이라는 말이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정작 사랑에 사랑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껍데기만 남은 사랑에는 성찰이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오홍진 지음, <연인들사랑을묻다>,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도서 ⓒ 피서산장

 
<연인들 사랑을 묻다>의 저자 오홍진은 '연인'을 테마로 멀리는 신화, 민담과 같은 옛 설화로부터 가까이는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사랑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을 시도합니다. 환웅과 웅녀에서부터 이상의 '날개'에 이르는 다채로운 스펙트럼 안에는 사랑의 기쁨과 아픔뿐만이 아니라 이야기 행간에 숨겨진 지배 담론과 은밀한 욕망을 고찰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사회철학자 푸코(M. Foucault)는 시대마다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지배적인 이야기가 그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에게 내면화되고 진실로 받아들여진다고 주장합니다.


승자와 패자의 도식으로 이기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쟁취한다고 선전하는 무한경쟁 사회에서는 사랑도 이긴 자만이 할 수 있는 전리품이라고 호도합니다. 취업을 포기하고, 사랑을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게 겹쳐집니다.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사고방식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살펴보는 것은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살펴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놀랐던 점은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접해왔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나무꾼의 입장에서만 해석하여 왔다는 점입니다. 왜 선녀의 마음은 한 번도 헤아려보지 못했던 걸까요?
 
"옛이야기인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나무꾼은 선녀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옷을 숨겼습니다. 사냥꾼에게 쫒기는 노루 목숨을 살려줄 정도로 나무꾼은 착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 여자의 옷을 숨겼습니다. 옷을 잃어버린 선녀는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나무꾼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나무꾼은 생판 처음 보는 남자의 아내가 되어야 했을 여인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저는 나무꾼의 마음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 속에는 저도 포함됩니다. 제 마음이 진정이면 상대 마음이야 어떻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긋난 사랑에 마음이 아플 때도 저는 이루지 못한 제 사랑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날개옷을 입고 떠날 수밖에 없는 선녀의 마음에는 눈을 감아버린 것이지요.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눈멀고 귀먹은 사랑은 어찌 보면 자기를 중심에 세운 자가 내뱉는 넋두리 일지도 모릅니다." - 256p

저자는 눈멀고 귀먹은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사랑은 지독한 욕망일 뿐이라고요. 인연(因緣)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뜻한다면 연인(戀人)은 그 사이에 '사랑'이 소통되고 있는 관계를 말합니다. 선녀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관계의 '사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소통이 아닌 일방통행은 사랑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이 곧 관계라고 할 때, 이 관계에는 자기와의 관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밖으로 향하는 마음이면서 동시에 안으로 향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집착이 아닙니다. 연인에 집착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를 중심에 세우고 연인을 바라봅니다. 사랑은 자기를 중심에 세우는 일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중심이란 말 자체가 사랑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누군가를 중심에 세우는 사랑이란 결국에는 집착으로 귀결될 테니까요. …사랑은 지배하고 싶다고 지배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포기하고 싶다고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랑은 그저 본성일 뿐입니다." - 프롤로그

우리 각자는 인생이라는 한 권의 책을 쓰고 있습니다. 기억은 현재의 관점으로 재해석되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과거를 재조명하고 미래를 다시 쓰곤 합니다. 삶의 이야기 속에 '사랑'이 부재하다면 나의 이야기는 아무런 감동도 없는 공허한 넋두리가 될 것입니다. 삶은 사람이 사랑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에게 울림을 주는 단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오늘도 사랑을 마주하는 이들에게 <연인들 사랑을 묻다>를 추천합니다.

연인들 사랑을 묻다

오홍진 (지은이),
피서산장, 2020


#연인들사랑을묻다 #오홍진 #피서산장 #사랑 #이야기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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